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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대웅전 앞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에서 합장을 드리고 있는 신도의 모습
 봉은사 대웅전 앞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에서 합장을 드리고 있는 신도의 모습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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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에 봄이 왔다. 일주문을 지난 왼편 화단엔 흰색 꽃 잔디가 피어 있고 법회가 열리는 법왕루 앞에는 보랏빛 작은 꽃들이 가득하다.

꽃봉오리를 머금은 나무로 가득한 봉은사는 강남의 높은 빌딩 사이에서 평온하고 고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신도들의 마음은 따뜻한 봄 날씨 같지만은 않았다.

경내에서 마주친 이들은 복잡하고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봉은사 외압설'에 대한 김영국씨의 기자회견이 하루 지난 24일, 봉은사를 찾아 신도들을 만나봤다.

"용산에 1억 낸 건 당연한 일... 스님의 진실한 마음 받아들여야"

오전 10시 30분, 봉은사는 아침부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연꽃등으로 천장이 장식된 대웅전과 법왕루에는 각각 60~70여 명에서 100여 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절당 밖으로는 "관세음보살" 기도 소리가 흘러나왔고,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대웅전 앞 탑에는 신도들이 피워두고 간 연꽃모양의 초와 향이 가득했다.

탑을 향해 합장하고 돌아서던 최옥자(58, 삼성동)씨는 "내가 누구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종교를 떠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인간적'으로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시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안 원내대표가 한소리를 했으니까 얘기가 불거져 나온 것 아니겠냐"며 "(자신이 했으면 했다고) 시인을 해야지, 옛날 식으로 해놓고 잡아떼서야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사월초파일에 스님과 식사까지 해놓고 '본 일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며 명진 스님을 모른다고 한 안 원내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아침 불공을 마치고 대웅전을 나서던 이아무개(60, 분당구)씨 역시 안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이씨는 "안 원내대표가 얘기한 게 사실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명진스님이 용산에 1억을 낸 건 당연히 할 일인데, 그걸 가지고 '부자절이 어떠네' 할게 아니라 스님의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전 예불, 박수와 함께 "명진 스님 힘내세요"

24일 오전 대웅전에 모여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는 신도들
 24일 오전 대웅전에 모여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는 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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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예불에서는 명진 스님을 향한 신자들의 응원 목소리가 전달되기도 했다.

오전 11시경, 법당 정면과 오른편에 크고 작은 수천 개의 금빛 불상이 모셔진 법왕루에는 100여 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모였다. 어떤 신자들은 등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오랜 시간 불공을 드린 모습이었다.

6개씩 두 줄로 배열된 나무기둥에는 연꽃 모양의 등이 4개씩 달려 법왕루 안을 비췄다. 법당 왼편으로는 위패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소원종이가 4000개 넘게 달려 있었다.

법당 앞줄에는 명진 스님이 두 분의 스님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가운데에 선 명진 스님은 기도를 올릴 때마다 금색 방석 위로 몸을 낮추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1일 '봉은사 외압' 폭로 직후 강원도 지역 사찰을 돌아본 뒤, 23일 밤 봉은사로 돌아왔다.

신자들이 한목소리로 반야심경을 같이 읊고 명진 스님의 축원으로 예불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모든 신자들은 "명진 스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며 큰 박수를 보냈다. 법당 앞쪽에 있던 명진 스님은 신자들을 향해 돌아서서 "걱정을 끼쳐 드려 미안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테니 기도에 정진하시라"는 말을 남기고는 법왕루를 떠났다.

법왕루 앞에 설치된 '희망의 메시지' 게시판에도 "명진 스님! 당신을 믿습니다", "명진 스님 힘내세요", "봉은사는 명진스님과 신도분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도량이 탐나시면 총무원도 만들어 보세요!" 등의 글이 남겨 있었다.

법왕루 앞에 설치된 게시판에 적혀진 '희망의 메세지' 게시판에 적힌 글 귀를 보고 있는 한 신도
 법왕루 앞에 설치된 게시판에 적혀진 '희망의 메세지' 게시판에 적힌 글 귀를 보고 있는 한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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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회 사무총장 "안 대표 발언 불교 전체 무시한 것... 좌파 기준이 뭐냐?"

법성행이란 법명을 가진 봉은사 신도회 사무총장은 안 원내대표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무총장은 "일개의 당 대표가 불교를 대표하는 자승스님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한 건 불교 전체를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사무총장은 "좌파·운동권 스님 발언은 명진 스님 1인에 대한 모욕을 넘어 자승스님과 불교 전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불교를 무시했으니 그런 발언을 쉽게 할 수 있었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명진 스님이 좌파 스님이라 표현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사무총장은 한참을 생각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좌파·운동권의 기준이 뭐냐? 용산 참사에 용채를 드리고 통일 문제에 신경을 쓰면 다 좌파라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기준이 있는 건지, 왜 명진 스님을 좌파·운동권 스님이라 했는지 안 원내대표에게 묻고 싶다."

사무총장은 "왜 명진 스님이 좌파 운동권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이어 "범불교대회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일이 마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것 같아 가장 맘이 아프다"는 말을 덧붙였다.

신도회는 25일 오후 2시 이번 일에 대한 신도회의 기본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성행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불교 전체에 대한 내분·분열로 비칠까 하는 염려와 주지스님 말씀이 있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신도회 입장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국씨가 23일 정치적 외압 사실을 증명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24일 오후 모여 의견을 나눈 봉은사 신도회는 25일 오전 논의 과정을 한 번 더 거친 뒤, '봉은사 외압' 파문에 대한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신도회 곤혹스러울 정도로 전화 빗발쳐"

이번 일을 지켜본 불교 신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강민수 봉은사 포교사회팀장은 "신도회가 곤혹스러울 지경으로 신도들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명진스님이 성명서 발표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신도들이 전화를 걸어 '왜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하냐', '총무원 쳐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더 심한 분들은 '왜 행동하는 걸 막냐, 주지 스님하고도 뒷거래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하시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불교신자들이 이번 사안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일부 신도들은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봉은사에 다니며 11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여련화(법명, 59) 신도는 "(일단 사태를) 지켜보는 게 도리"라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 법문 법상에서 하신 말씀이기에 명진 스님의 말씀이 다 사실일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우리가 성명서를 내거나 의사표현 하는 게 총무원에 맞닥뜨리는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이다)…"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말을 무척 아꼈던 그였지만 안 원내대표가 명진 스님을 두고 좌파 운운한 것에 대해서는 "그분(안 원내대표)이 얼마나 명진 스님을 잘 아시고 말씀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안 원내대표가 자기가 말 한 것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오후 6시 20분, 저녁예불을 앞두고 '중생들이 모두 듣고 깨우치라'는 의미의 북소리가 봉은사 안에 울려 퍼졌다. 여전히 여러 신도들이 사리가 모셔진 대웅전 앞 탑에서 합장하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 주변은 오후 내내 신도들이 피워 올린 향 냄새가 가득했다. 스님의 북소리를 따라 어느덧 해도 봉은사 뒤편으로 지고 있었다.


태그:#봉은사, #명진 스님, #안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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