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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와서 숙소에 머물다보면 관광객들의 '스태미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매일같이 날 밝기 무섭게 호텔을 나가 자정 가까운 시각에 들어오거나, 아예 밤 새워 쇼핑하는 이들을 보면 본인의 경우 하루 건너 하루 여정이 필수인 만큼 지켜만 보는 데도 숨이 차다.

오사카에 머문 건 지난 5일 도착 후 9일간. 그 중에서도 사흘은 주변의 시장과 골목길, 산책하기 좋은 공원과 동물원 등을 찾아다녔고 나머지 날 동안에 가이드북에 소개된 명소를 포함해 몇몇 관심가는 곳을 둘러봤다.

이곳 날씨는 하루 종일 맑거나 비오거나, 반나절 맑고 반나절 흐리거나 혹은 그 반대 네 가지 유형으로 외출할 땐 반드시 우비나 우산을 지참해야 한다. 오사카성에 간 건 일본에 온 지 나흘째, 처음으로 하루 종일 맑은 날이었다.

오사카성 가는 길. 강을 끼고 있는 도시의 풍광이 아름답다.
 오사카성 가는 길. 강을 끼고 있는 도시의 풍광이 아름답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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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

자전거를 타고 오사카성으로 가는 길. 큰 강을 끼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지금은 도시 풍광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집권하던 시절에는 농업과 상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물자를 운송하는 주요 수로 역할을 했을 것이다. 

NHK 오사카방송국(오른쪽)과 오사카 역사박물관
 NHK 오사카방송국(오른쪽)과 오사카 역사박물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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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오사카성 바로 길 건너편에 그 유명한 NHK방송국과 오사카역사박물관이 나란히 서 있다.

오사카성 입구 옆 화장실에 붙은 재미있는 안내 사진
 오사카성 입구 옆 화장실에 붙은 재미있는 안내 사진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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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먹었던 일본라면이 원인인지, 도착 수 분 전부터 아랫배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화장실부터 뛰어 들어갔다. '근심'을 해소하고 나니 그제야 벽에 붙은 재미있는 안내 사진이 눈에 띄었다. 우리와는 변기의 앞뒤 위치가 달라 볼 일을 보는 동안 문이 아닌 벽과 마주하게 되는데 연배 높은 어르신이나 동양식 좌변기가 낯선 서양인들은 가벼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겠다. 이러나 저러나 명중은 하겠지만 말이다.

최대 100톤이 넘는 거석들로 이뤄진 오사카 성벽과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파놓은 해자
 최대 100톤이 넘는 거석들로 이뤄진 오사카 성벽과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파놓은 해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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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에 들어가기 전 보게 되는 강처럼 보이는 해자와 견고한 성벽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통일의 근거지로서 이곳에 1583년부터 15년간 성을 축조하게 했는데, 성을 에둘러 파놓은 우치보리와 소토보리 두 해자와 최대 100톤이 넘는 거석으로 이뤄진 성벽은 적군의 침입을 막는 철옹성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 거석들을 쌓은 방식은 아직까지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데 그 시절에 기계로 옮겼을 리 만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람 참, 여럿 잡았구나' 싶었다.

오사카성 천수각
 오사카성 천수각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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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오사카성 천수각이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오사카성은 나고야성과 구마모토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히며, 도요토미 사망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과의 첫 번째 전쟁 후 맺은 잠깐의 강화조약 당시 도쿠가와 측에서 해자를 메꿔버린 탓에 두 번째 전투에서 결국 함락되었다 한다. 그 결과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와 아내 요도기미가 자결했다. 

오사카성공원
 오사카성공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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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 바로 옆에는 매화나무 1250그루와 벚나무 4500그루로 조성된 오사카성공원이 있다. 3월 초, 초겨울 못지 않은 매서운 날씨에도 꽃봉우리가 열려 부지런한 상춘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이곳에선 가을에는 국화제전이 열리고, 야간에 오면 화려한 황금빛 조명에 휩싸인 천수각을 볼 수 있다 하니 원하는 때에 관람시기를 정하면 되겠다.

연습이 한창인 어린 치어리더들
 연습이 한창인 어린 치어리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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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운동장에서 중학생쯤 돼 보이는 여학생들의 치어리더 연습이 한창이었다. 매서운 눈빛의 선배들과 군기가 꽉 잡힌 후배들 모습이 보는 이에겐 그저 귀여울 따름이었다.   

돌아오는 길, 잠깐 긴장을 늦춘 사이 길을 잘못 들어 뜻하지 않게 오사카의 대표 쇼핑가인 난바와 도톤보리까지 가게 됐는데 차갑고 휘황찬란한 빌딩숲,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가 보기만 해도 지치는 터라 서둘러 빠져나왔다.

<잇신지절>

다음 날(10일) 간 곳은 잇신지절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오사카의 텐노지 지역에 포함되는데, 지도에서 보면 이 근방에만 8개 절이 있다. 이날은 반나절 맑다 반나절 흐려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절에 도착할 때쯤 시작된 비가 밤까지 계속됐다.

기도하는 주부의 모습이 진지하다
 기도하는 주부의 모습이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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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나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비슷한걸까. 주부로 보이는 한 여인이 오랫동안 향 연기를 손으로 모아 자신을 향하게 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무언가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나 또한 종무소에서 산 향 두 묶음을 피우고 가족건강과 지구평화를 기원했다.

경내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고양이들
 경내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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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한쪽에선 고양이 예닐곱 마리가 나무를 타오르기도 하고 볕을 쬐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는데 내집에 사는 고양이 두 놈이 생각나 한참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절 내부에 자리한 납골묘
 절 내부에 자리한 납골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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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안에 자리한 납골묘다. 일본에 와 일반 주택가 가운데서도 자주 보게 되는 것이 납골묘인데,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집값 떨어뜨리는 달갑지 않은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다. 도를 깨쳐서 하는 말이 아니고, 삶과 같이 죽음도 우리 생의 일부인데 살아서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을 가까이 두고 오며가며 보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물론 아주아주 오랜 후의 일이길 바라지만 말이다.

사찰 내 휴게소
 사찰 내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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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다 둘러볼 때쯤 빗방울이 거세져 절마당 한쪽에 있는 휴게소에 들어와 앉았다. 마침 배낭 안에 집에서 가져온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있어 꺼내 읽는데, 그 중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74세의 나이로 자살한 이 작가의 고향이 오사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사카의 한 절에서 이곳에서 태어난 비운의 저자가 쓴 책을 읽게 될 줄이야. 이런 '인연'을 경험할 때마다 매번 신기하단 생각이 든다. 30여 분쯤 지나 빗방울이 다소 잦아들었을 때 얼른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부키 관람>

오사카를 떠나기 하루 전날(12일), 이틀 전 잇신지절 가는 길에 보았던 잇신지극장에서 가부키를 관람했다.

가부키는 음악과 무용을 접목시킨 대중적인 일본의 전통극을 말하는데, 내가 본 이날 공연은 아마도 가장 낮은 수준에 어린시절 희미한 기억 속에 남은 작은 유랑극단쯤 될 듯싶었다.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그 완고한 촌스러움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잇신지극장 외부 모습
 잇신지극장 외부 모습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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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엔 짜리 입장권을 사서 검표원을 주고 들어가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시멘트 맨바닥 에 오래돼 삐걱거리는 키작은 나무의자와 아예 퍼질러 앉을 수 있는 다다미식 마루 객석이 양쪽으로 나눠져 있고, 주로 50~60대 이상되는 관람객들은 대부분 이 동네 사람인 듯 떠들썩하게 아는 척을 하기도 하고 집에서 싸온 음식을 꺼내 먹기도 했다.

잠시후 객석을 진정시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암전. 숨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갑작스레 요란한 '뽕짝' 풍의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뒤에서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남자 배우가 홀연히 나타났다. 

캬아! 이 배우의 눈빛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처음엔 환호하는 노인들과 그 틈에 샛노란 패딩 점퍼를 입고 끼어 앉은 본인 모습에 실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무대 앞에서 획 돌아서는 남자 배우의 눈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에 엷은 빗금이 쳐졌다.

순정만화에 나오는, 정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관객을 찌를 듯 바라보며 온 몸으로 교태를 부리면서도 단 한순간 절도를 잃지 않는, 섹시함과 카시르마가 동시에 느껴지는 엄청난 포스였다.

특히 여성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든 남자 배우
 특히 여성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든 남자 배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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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비현실적으로 묘사하자면 겨울밤 차디찬 창가에 앉아 밤을 지샌 뒤, 깊은 숲속 맑은 샘에서 목욕 재개를 하고, 등장 직전 동공에 올리브 기름 두어 방울을 쭉 짜넣은 듯했다.

특이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열연을 펼칠 때 공연 중에도 직접 무대 앞으로 나가 준비해온 돈을 배우의 옷깃에 집게로 고정해 달아주거나 이바지 음식이 든 쇼핑백과 보따리 등을 살짝 올려놓고 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브래지어에 구져진 종잇장을 꽂아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줍음과 존경의 표시로 보였다. 

공연은 3막에 걸쳐 무려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고, 1시간마다 10여 분씩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직원들이 "아이스께끼 하겐다즈"를 외치며 간식거리를 팔고 딱 한 번 조금전까지 열열은 펼쳤던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자신들의 포스터나 기념품 등을 직접 홍보하며 판매에 나섰다. 참, 처음 들어왔을 때 직원이 따라와 원하는 자리에 부채를 놓아주면 팁으로 100엔을 줘야한다.

역시 최다 선물 세례를 받은 건 위의 사진 속 주인공. 진정 혼자 보기 아까워 동영상 촬영을 하다 직원에게 발각돼 삭제를 한 바, 오사카 신이마미역에 온다면 반드시 이 극장에 들러 싸구려 가부키를 감상해보길 바란다.

연극이 끝나면 전 배우들이 건물 밖까지 나와 관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할머니나 아줌마 팬들이 열광했던 배우들 곁에 가 사인이나 기념촬영을 청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주연배우의 사진을 한 장 찍어왔다.

오! 이날 오사카의 밤 하늘엔 느끼하게 이글거리던 그 배우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남자 주연배우 다음으로 큰 호응을 받았던 아역 배우들.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남자 주연배우 다음으로 큰 호응을 받았던 아역 배우들.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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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앞서 게재된 <맘대로 떠나 무작정 살다오기> 글에서 '오스카'로 표기한 모든 부분을 '오사카'로 바로 잡습니다. 또한 신카이수지 시장 내 한국음식 가게 주인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임을 19일 확인하였습니다.



태그:#일본여행, #여행, #배여행 , #일본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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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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