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늘 3월 2일, 강정마을에 다녀왔다. 제주도에선 큰 이슈인지라 이리듣고 저리 들어 알게 되는 곳이다. 그런데, 들은 것을 제대로 기억하기도 어렵고 그 들은 것이 온전히 수긍할 만한 것인가하는 물음도 갖게 된다. 첫째는 내 일이 아니고, 둘째는 귀가 얇고 심지가 굳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은 정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리를 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오늘은 다녀 온 감상을 먼저 적어 나가려 한다. 그게 순서일 것만 같다.

 

가끔 여행에 동행하곤 하는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일단 서귀포에 있는 탐라대학교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갈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서귀포에 가까운 '강정'에 가자고 했다.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였던 것이며, 친구는 그 이유가 '붉은발말똥게'라고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인데 곧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습지만, 지도를 보고 익혀두었던 내 머리속 지리정보는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기억 속의 강정마을은 '서쪽에서 봤을 때 '위미'까지는 가지 않은 서귀포 부근 어디쯤'이었다. '대포'옆 아닌가?'고 친구가 묻지만 '거긴 또 어디냐?'고 빤하게 쳐다볼 뿐이다. 그래서 일단은 서귀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갔다. 구르고 굴러 어느덧 '위미'가 몇 킬로쯤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일 즈음, 낭패감에 빠졌다.

 

내친 김에 찾아가고픈 마음이 굴뚝 같으나, 홀로 나선 게 아니니 "뭐, 어딘들 어떠리?"하고 만다. 돌아가는 길이다. 바다쪽으로 빠져 포구로 들었다. 보목동에 있으니 보목포구다.

 

남쪽인 제주시보다 더 남쪽에 있으니 기온이 더 따뜻하다. 포구의 정경은 너무도 평화로와 나른해지기까지 한다.

 

보목 포구 포근한 인상.

어제 밤 1시쯤에 큰 맘먹고 짜맞춘 지 1년 밖에 안되는 '메이커'표 씽크대의 상부장이 제 풀에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 속을 채우고 있던 그릇들이 와장창 부서져 버렸기 때문에, 그 파편도 화산 폭발한 것처럼 부엌 바닥에 퍼져 나갔기 때문에, 그걸 수습하느라 거의 밤을 꼴딱 샜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라산을 기준으로 산북과 산남을 갈라 부르기도 하는 습관도 조금 갖고 있는 제주도 사람들. 그리고, 산북에서 대부분을 보낸 내가 본 산남의 바다는 무언가 다르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다. 자주 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포구 옆 바닷가의 돌들에는 해조류들이 매우 많이 붙어 있다. 물기를 머금은 덕에 신선해 보인다. 그 돌틈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바릇잡이 '보마기'를 잡는 아낙.

"양~~~, 뭐 잡암수과?"

"보마기 마씀"

"예?"

"보마기! 보말!"

"아~ 보말"

 

보말을 이 곳에선 그렇게 부르는 거다. 보말은 바닷고둥의 하나로 삶아서 속을 꺼내 간장에 넣어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곤 한다.

 

포구 방파제 위로 서니 육지서 온 것이 분명한 젊은 총각이 친구에게 묻는다. 총각은 낚시를 하는 중이다.

 

"이게 광어 맞지요?"

"어허허헛. 광어 맞네?"

 

광어는 넙치이고 양식장에서 주로 양식하는 고급 어종이다. 어쩌다 상처가 났는지 껍질이 벗겨져 뒤쪽이 허옇다. 낚시는 친구의 권유로 게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미끼로 물게 하는 것이 낚시이나 그것을 포기하고 바늘로 몸에 걸리게 하여 들어올리는... 이를테면 100원 집어 넣고 인형을 잡아 끌어올리면 되는 그런 게임 같은 일을 이제 하고 있다.

 

이곳 저곳 사진을 찍다 보니 젊은 총각은 친구의 훈수를 벗삼아 아직도 게임에 몰두해 넙치 따라 이리 저리 방파제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좀 있다 다시 보니 결국 포기했는지 담배 하나 빼물고 가만히 맨처음 자리에 서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1미터 앞에서 귀찮은 듯 날아오른 갈매기가 찌이익 떨어뜨린 허연 똥줄기가 수면을 깨웠다.

 

포구를 나오며 상점에 들러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아주머니, 할아버지, 아저씨가 보인다.

 

"양~, 강정마을 가젠허민 얼로 가마씨?"

"강정? 서귀포 넘엉 이시난 일로 갑서"

 

그 답은 역시 서귀포 쪽으로 되돌아가 그곳을 지나치되 중문까지는 가지 않는 것. 길을 걷는 젊은 이들이 몇 보인다. 여기도 올레 코스 표식이 있다. 혼자 다니는 사람도 있고 두엇이 함께 다니기도 한다.

 

다시 굴러간다. 포구가 보이니 멈추어 바라본다. 법환 포구이다. 이 곳도 올레 코스 표식이 있고 여행자들이 보인다. 동네 할망인 듯한 여인 둘이 따로따로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꿈적하지 않는다. 순박한 웃음을 실없이 짓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 그리고 역시 올레 코스를 걷는 사람들이 오고 간다.

 

포구 초입에 알림판이 있다. '동카름물/서카름물' 둘로 나뉜 샘물의 이름이다.

 

샘물 동카름물, 서카름물.

'막숙'도 있다. 고려 때, 즉 원명 교체기에 '목호의 난'을 일으킨 '목호'들을 명월포(한림 부근)로 들어온 최영 장군 군사들이 제압하는데 물러난 나머지 세력들이 요 앞 범섬에 있어서 이 법환포구주변에 군사를 주둔시켰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 접안시설 아랫도리는 죄다 흙탕물 투성이었다. 그 까닭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자리를 떠서 굴러간다. 결국 강정까지 오기는 하였다. 그런데 이미 해는 뉘엿뉘엿 이울어 가고, 바람 잔 날의 노란 깃발들도 피곤한 듯 그저 세모꼴로 누워 가끔 살랑거릴 뿐이었다.

 

현장 입구 높은 곳에 성처럼 놓여 있다.

문제의 그 곳 '착공식 현장' 에 막바로 닿은 우리, 아니 나는 다가 갔다. 먼저 폐비닐 따위의 농업용 쓰레기를 야적해놓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높은 언덕이니 현장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높지 않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 내려 와 벌써부터 이 이방인을 주시하고 있던 '민간인 막사' 앞 불턱에 모인 사람들에게 갔다.

 

"저기로 들어가져 마씸?"

"저길 어떵 들어가. 쯩이 이서사주."

"저, 알러래 난 길 따랑 들어가 봅써"

"예, 고맙수다 예~"

 

길따라 걷는다. 길의 왼쪽은 강정천, 오른쪽은 착공식 기념 행사를 치르려고 평평하게 다지던 문제의 현장이다. '다지던?' 그렇다. 착공식 행사 날짜를 잡아 놓고 어떤 이유에선지 돌연 무기한 연기해 버렸다. 길에서는 언덕이라 내부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언덕 위는 가시달린 장미 넝쿨에서 착안했다는 철가시망이 이미 둘러쳐 사람을 막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길을 따라 걸었다. 올레 코스는 여기로도 이어지는 건지 건너편에서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난생 처음 본 강정천! 맑고 풍부한 양의 물이 우레같은 소리를 내며 바다로 밀려 들고 있는 것은 제주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대부분이 비가 많이 올 떄나 홍수 때에만 불었다가 이내 물은 사라지고 마는 그런 마른 하천(건천)이라 그렇다.

 

강정천 하류 귀한 종류의 암석 위로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른다.

물과 교감하는 돌들도 빛깔과 모양이 남다르게 빼어나다. 산북사람, 또는 내가 이런 돌을 본 적이 있던가 싶은 종류이다. 이런 신기한 또다른 암석이 시야가 트여오는 바다 접경 지대에서 또 빛을 발한다.

 

갯바위, 암석 바다와 인접한 곳의 바위들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흔히 보던 거무튀튀한 갯바위가 아니다. 이런 암석들이 너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위에 서서 천천히 한바퀴 빙글 돌아본다. 반쯤 돌았을 때 착공식 현장이 눈에 보였다.

 

바위 너머 평평하게 다져놓은 착공식 현장을 철책으로 막았다.

별다른 것은 없다. 다만 군인 신분일 사람들이 너댓 명이 어느쯤에 가만히 서 있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선다. 나는 누구인 걸까? 나는 누구 편인 것일까? 나는 지금 있어서는 안될 곳에 와 있는 건가? 저들은 왜 저기 서 있는 건가? 또 다른 이들은 왜 거기 불턱 가에 앉고 서 있는 것인가?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폭풍 전야와 같은 대치 상황의 긴장감.

 

가시철망과 깃발 그리고 전깃줄이 어지러운 상황을 대변하는 듯.

나는 누구 편이고, 누구 편이어야 하는가? 순간, 아니, 드디어 짜증이 확  일었다.

 

'왜, 여기에 이런 일이 생겨서 사람 힘들게 하느냐 말이다.'

 

화순일 뻔도,  위미일 뻔도 했던 해군기지는 강정으로 결론지어졌다.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이마저도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돌아가야 한다. 빈 공터에 덩그마니 놓인 농구 골대.그 너머로 또 보이는 기공식현장. 물소리, 참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깃발들과 사람들이 타고 달려왔을 오토바이들. 그리고 사람들은 천막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몇몇에게 안녕히 계시라 하고 총총히 사라져갔다.

 

천막과 항의 현수막 무엇을 위해 이 자리를 지키는가.

강정 포구에 들렀다. 곁에 있는 바닷가로 걸어들어갔다. 물이 빠진 갯바위가 갯벌마냥 멀게,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넓은 곳은 역시 난생 처음으로 기억된다. 오른쪽에는 아담한 규모의 갈대밭이 있다. 부근에 민물이 있다는 증거이다. 역시나 작은 하천이 뭍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갈대밭이 있는 '뻘'땅은 '붉은발말똥게'일지 모르지만, 몇 종의 게가 살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된다. 이곳은 바닷가 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지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너른 갯바위 지대 끝없을 것 같다

 

넘어가는 길은 넘어올 때보다 안개가 더욱 심했다. 산을 타고 넘는 길. 피로가 엄습한다. 머리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강정, 내 속의 강정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제대로운 정리를 하려면 아마 몇 번이고 다시 와봐야 할 미완의 숙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