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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서는 자전거 세계여행 중 가슴 뻐근하도록 인상 깊었던 만남들과 그들의 희망을 함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작은 마을 도착. 해는 어느새 퇴근을 했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적당한(?)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려야만 한다.

그리고 말을 해야 한다.

"오늘 밤 당신 집에서 묵어도 될까요?"

텍사스 이전까지는 회사 앞 잔디, 가드레일 안쪽 부지, 국도상, 하행선 사이의 부지, 공사장, 도로 아래 수로, 우체국, 초등학교 앞, 교회 계단 앞, 여행자센터 장거리 전화하는 곳 구석, 화장실, 레스토랑 카운터 뒤, 교회, RV카, 카센터 창고, 가정집 창고, 가정집, 모텔, 호텔 등에서 잠을 잤다.

회사 앞 잔디에서 자다가 새벽에 스프링 쿨러에 물벼락 받은 모습입니다. 슬리핑 백이며 텐트며 물 세례를 피해서 밖으로 내던지기 바빴습니다.
▲ 회사 앞 잔디에서 자다가 새벽에 스프링 쿨러에 물벼락 받은 모습 회사 앞 잔디에서 자다가 새벽에 스프링 쿨러에 물벼락 받은 모습입니다. 슬리핑 백이며 텐트며 물 세례를 피해서 밖으로 내던지기 바빴습니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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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를 지난 이후로는 '캠핑을 하는 것도 좋지만, 미국에 온 이상 그들 가정 속에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그들의 삶을 느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해질 무렵이 되면 민가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직 세상에는 지친 나그네를 받아 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 한번 도전해보자!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똑! 똑! 똑!"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정규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자전거 세계 일주를 하고 있습니다. 텍사스 이전까지는 밖에서 잤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은 추울 것 같아서, 절 도와줄 집을 찾고 있습니다. '하-하-(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웃다가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의 '믿음'과는 무관하게, 참 다양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한국 사람들을 찾아가봐요!, 저기 가면 집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기관이 있으니 그리로 가봐요! 밥도 공짜로 잠도 공짜로 해결할 수가 있어요!"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들과 "집에 아이들이 많아서 침대가 없어요. 이웃집에는 침대가 있을 거니까 그리로 가보세요"라 하는 사람들. 추천 받은 집으로 가면 또 다른 집을 추천해 주고……. 그 집은 또 다른 집을 추천해 주고, 그렇게 '추천 문화'가 발달한 동네도 있었다.

일반 국도를 달리다가 마땅히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다가..아하! 여기다! 바람도,비도,보온까지!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가능했습니다. 입구 쪽은 자전거로 가려주는 센스~^^:
▲ 국도의 배수로에 텐트를 일반 국도를 달리다가 마땅히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다가..아하! 여기다! 바람도,비도,보온까지!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가능했습니다. 입구 쪽은 자전거로 가려주는 센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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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집에 아이들이 많으니까 불편할 거에요. 모텔로 가요. 제가 계산할게요"라고 한 분들.(이런 분들 덕분에 약 1주일 동안 매일 모텔에서만 잔 경우도 있었다.) "아는 교회로 모셔다 드릴게요" "방이 불편하지만 우리 아이 방에서 주무세요" "저희 부부 방을 쓰세요"라는 등 자기 상황에서 최대한 나그네를 마음으로 대접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길 위의 천사들 덕분에 미국횡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다시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똑! 똑! 똑!"

그러나 한 시간 동안의 결과는…….
'No! Sorry!' 다행히 마지막 집에서 '좋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마을 입구 쪽 주유소 편의점에 가면 이 마을 시장님이 있다는 것! '주유소에 시장님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가보자!

작은 마을이라 10분도 가지 않아서 주유소 발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빵! 35센트! 50센트!" 오! 감사합니다! 일단 먹고 보자! 구석에 자리를 잡고 '착한 가격'의
빵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치킨 3조각이 담긴 접시가 스르르 빵 옆자리로 들어왔다.

편의점에서 팔고 있던 개당 30,50센트의 빵들. 1달러면 허기를 달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간식이 어디 있던가? ^^:
▲ 착한 가격의 빵 편의점에서 팔고 있던 개당 30,50센트의 빵들. 1달러면 허기를 달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간식이 어디 있던가? ^^: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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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렇게 훌륭한 경우가! 빵을 허겁지겁먹고 있는데, 치킨 3조각이 접시째 굴러들어왔다! ^^:
▲ 치킨 3조각 오! 이렇게 훌륭한 경우가! 빵을 허겁지겁먹고 있는데, 치킨 3조각이 접시째 굴러들어왔다! ^^: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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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건 뭐지?', 고개를 들어보니, USC라고 적힌 검은 티셔츠와 빨간 모자를 쓴, 이목구비가 뚜렷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손주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흐뭇해 하는 것처럼 밝게 웃으며 필자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 이 분이 바로 '시장님?' 지친 나그네에게 '치킨'을 건네는 이분은 분명히 훌륭한 '시장'님일 거란 강한 확신이 들었지만, 왜? 시장님이 편의점에 계실까 의문이 들어 질문을 했다. "혹시, 당신이 '시장님'인가요?"

"네? 이 마을은 3000명밖에 살지 않아서요~ 제가 28년째 시장 일을 하고 있어요."

편의점에 시장님이? 진짜로 편의점에 시장님이 계셨다!
▲ 28년째 작은 마을을 섬기고 있는 시장님 편의점에 시장님이? 진짜로 편의점에 시장님이 계셨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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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째 시장을? 이야…… 놀라운 일이다. 지친 나그네를 따뜻하게 대하는 시장님이라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푸근하게 대하실 거야. 그래, 이 마을 사람들은 참 좋겠다~ 아차! 이런 시장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희망질문(당신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3가지만 알려주세요)'을 해야지! '희망노트'를 꺼내자, 어린아이처럼 정성스럽게 한자한자 적어주신다.

기다렸다가 내용을 확인하는데, '뜻'은 모르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싶어서 밖에 주차해둔 자전거에 부착된 전자사전으로 찾아보니……. cancer(암)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심스럽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며
내가 잘못 본건 아닌지 다시 여쭤봤더니…….

저렇게 밝게 웃고 계셨는데...
아들의 '암'으로 투병 중일줄이야...
▲ 천진난만한 표정의 시장님 저렇게 밝게 웃고 계셨는데... 아들의 '암'으로 투병 중일줄이야...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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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 살인 아들이 얼마 전에 암에 걸렸다고 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만난 멕시코친구에게 받은, 행운을 상징하는 작은 십자 모양의 기념품과 한국 돈 1000원을 드리면서…. '이것은 행운을 상징하는 물건과 돈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르신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하고 포옹을 해드렸다.' 그리고 '잠자리'에 대한 질문을 할 겨를도 없이, 조용히 편의점을 나왔다.

얼마전에 멕시코 친구(인디오아내의것)가 선물해준 행운을 상징하는 '십자'모양의 기념품을 시장님께 선물했다.
▲ 행운을 상징하는 십자가 얼마전에 멕시코 친구(인디오아내의것)가 선물해준 행운을 상징하는 '십자'모양의 기념품을 시장님께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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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날밤은 초등학교 건물 구석진 곳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시장님 아드님의 쾌유를 바랐다. 크리스마스 1주일 전 치고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밤이다.

* 시장님의 희망
35세인 아들의 암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 1055일, 16개국, 27000km 자전거 세계여행 그 후

지금은 꿈꾸는 일을 멈췄거나 꿈을 잊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마음속에, 두 바퀴 자전거로 희망의 기억을 다시금 찾아주기 위하여 '자전거 희망여행 프로젝트' 를 준비 중입니다.

쿠바에서 앵무새와 함께`^^:
▲ 쿠바에서(2007년 여름) 쿠바에서 앵무새와 함께`^^: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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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히 '자전거 희망여행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자전거 희망여행 프로젝트로! 이동합니다. 링크를 눌러주세요^^:

==> 자전거 희망여행프로젝트로 이동!

덧붙이는 글 | 자전거 세계여행 기간은 2006년5월16일~2009년4월7일까지 입니다.
이 기사는 미국여행 중(2006년 12월 크리스마스 일주일전)에 있었던 에피소드 입니다.



태그:#미국횡단여행, #미국자전거횡단, #미국대륙횡단, #미국자전거일주, #미국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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