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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개발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폐허
▲ 책표지 <내가 살던 용산> 개발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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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오늘, 지상최대의 가치인 개발과 성장을 위해 희생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희생은 고귀한 것이니 스스로 받아 들여야 한다. 억울하면 돈을 벌던가 힘을 키우던가 하면 되는 것이 지금 시대를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 더 크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오늘, 욕심은 상처를 남긴다. 어느 때인들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된 과거 역사적 건축·토목물들은 당대의 엄청난 피와 땀을 희생시켜 이루어낸 것이다. 과거에서 전혀 나아진 것이 없이 오늘날에도 사회적 약자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고, 63빌딩이 올라가고, 수많은 아파트들과 신도시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시류의 흐름과 자본주의의 성격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큰 돈을 벌고 이들 밑에서 일하는 이들은 다소 돈을 벌고 그들의 부하들은 먹고 살만큼은 되고 그렇지 못한 그 지역의 주민들은 손해를 보거나 막심한 손해를 보거나, 집을 잃거나, 직장을 잃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의 남일당 건물, 집을 잃거나 일터를 잃거나 잃어본 경험이 있거나 잃을 위기에 닥친 이들이 모여서 건물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있다가 경찰들이 진압을 시도하자 맞서 싸우다가 불이 붙어 건물이 몽땅 타버리면서 죽고 말았다. 그들은 가족의 아버지이거나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이거나 손주들을 예뻐하는 할아버지이거나 자식을 기르고 부모를 공양하는 평범한 가장이거나 그의 동생, 또는 형이었다. 다섯. 그리고 하나.

지키고자 했던 이들 중 5명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파괴하고자 진압하고자 했던 (사실은 자신의 의도라기보다는 명령에 충실할 뿐이었던) 경찰특공대의 1명이 죽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지지 않았다. 1명을 죽여도 평생을 감옥에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6이나 죽었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것도 삶을 위해서 자리를 지키다가 불에 타죽거나 떨어져서 다치거나 한 이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보상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

그 합의는 이사회가 앞으로 요만큼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그 합의로 인해 더 억울하고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분통해할 사람들만 가득 낳았다. 우리는 그날 어떤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막거나 조사자료 3000페이지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국민을 법으로 지켜준다는 검찰의 행위이다.

윤용헌, 한대성, 양회성, 이상림, 이성수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경찰특공대 1명 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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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내가 살던 용산/ 김성희,김수박,김홍모,신성식,앙꼬,유승하 글,그림/ 보리/ 11000원



내가 살던 용산

김성희 외 지음, 보리(2010)


태그:#용산참사, #남일당, #철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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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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