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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7월 10일 이탈리아의 라퀼라에서 열린 G8(선진8개국) 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국무총리(오른쪽)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09년 7월 10일 이탈리아의 라퀼라에서 열린 G8(선진8개국) 확대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국무총리(오른쪽)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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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국무총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흡사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다.

두 사람 모두 ▲ 건설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 그러나 기업인 시절의 크고 작은 부정행위로 인해 수차례 법정에 나가야 했다 ▲ 그럼에도 "무능한 좌파정권을 몰아내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으로 손쉽게 집권했다 ▲ 정권을 잡은 뒤 방송사 이사회를 장악해 기자들까지 통제하려고 한다(자칭 우파들은 '좌파기자들만 때려잡는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르겠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집권당은 여론시장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는 내용의 미디어법을 개정하면서 "언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언론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는데, 한나라당도 '베를루스코니 모델'을 철저히 따라가며 미디어법 개정을 관철시켰다.

국제사회에서 베를루스코니 이미지가 워낙 안 좋다보니 당사자와 청와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비교가 불쾌할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평이 워낙 안 좋기 때문에 '같은 편'이면서도 그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17일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가 강해서 선거 때부터 '칠레판 베를루스코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이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비교"라고 일축했다.

최근 베를루스코니는 섹스 스캔들로 구설에 오르고 성난 시민이 던진 조각상에 맞는 봉변까지 당했으니 이 대통령은 더더욱 이런 분과 거리를 두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러나 연초부터 계속되는 여당과 검찰, 일부 신문의 사법부 공격은 이명박 정부의 베를루스코니화(化)로 비쳐 대단히 우려스럽다.

베를루스코니는 사법부에 이념 공세, 총리 소유 방송사는 판사 '몰카'

작년 10월 27일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의 토크쇼는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전화 연결했다.

당시 사법부가 탈세·뇌물 공여 등의 혐의를 받은 베를루스코니에게 불리한 판결들을 잇달아 내놓은 터라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세인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발언의 도가 너무 지나쳤다.

베를루스코니는 흥분한 목소리로 "이탈리아의 진짜 '변태'는 내가 아니라 내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계속 나를 공격해온 밀라노의 공산주의 성향 판·검사들"이라고 사법부를 정면 공격했다. 방청객들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고, 토크쇼 사회자가 이들을 진정시킨 후에야 쇼를 진행할 수 있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왜 분통을 터뜨렸을까?

같은 달 5일 밀라노 법원은 그가 소유했던 회사 피닌베스트가 1991년 판사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인정해 무려 7억5000만 유로(약 1조3000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피닌베스트의 시장가치(8억7800만 유로)를 감안하면, 재산몰수나 다름없는 선고였다.

이틀 뒤에는 헌법재판소가 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4명의 면책특권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탈세·뇌물 공여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베를루스코니는 총리가 된 후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유리한 면책특권을 신설한 터였다.

사법부의 분위기가 총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민영방송사 미디어셋이 10월 15일 시내 이발소에 들른 밀라노 법원 판사의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찍어서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그는 베를루스코니에게 거액의 벌금을 물린 바로 그 판사였다.

미디어셋은 국영방송 RAI와 함께 이탈리아 방송시장을 양분하는 거대그룹인데, 방송사 리포터는 판사를 몰래 촬영한 필름을 내보내며 "참을성이 없어 보인다", "이상한 색깔의 양말을 신었다"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다.

미디어셋은 "국제적으로 '악명'을 얻은 인물에 대한 보도였다"며 '알 권리'를 주장했지만, 방송사 오너를 '해코지'한 판사에게 종업원들이 치졸한 복수를 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베를루스코니의 발언은 법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1992년부터 부패 정치인들을 겨냥한 수사를 줄기차게 펴온 이탈리아 검찰은 역대 행정부와도 긴장관계를 이뤄왔는데, 총리가 검사들의 이념 성향을 문제 삼아 표적 수사 주장을 편 셈이다.

밀라노의 알프레도 로블레도 검사는 "우리의 법복은 색깔이 없다"며 "만약 붉은색이라면 이는 목숨을 걸고 법을 수호하며 흘린 피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마피아·테러리스트들과 벌인 전쟁에서 폭탄이나 총격에 희생당한 선배 법관들의 역사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민들은 총리의 발언에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베를루스코니의 기업 범죄를 법정에서 단죄하려는 사법부를 향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판·검사들이 나를 제거하려고 한다"고 떠드는 것은 베를루스코니의 상투적인 전술이었고,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한 방송사들은 그의 말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포장했다.

판·검사 수천 명, 총리에 항의해 거리 행진... 한국, 이탈리아 전철 밟나?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하고 있다.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하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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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의 사법부 공격은 이미 집권2기(2001~2006)부터 교묘한 형태로 진행됐다. (베를루스코니는 2008년 5월부터 집권3기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베를루스코니는 "판사들이 보수파에 정치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며 재판을 차일피일 미루는 전략을 펴고, 한편으로는 경찰의 판·검사 경호를 갑자기 폐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0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사건을 맡은 판·검사들이 조직원들에게 암살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는데, 베를루스코니의 조치는 판사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의도로 비쳤다.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이 보다 못해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행동이 이탈리아의 법치를 훼손할 수 있으니 사법부의 독립성을 존중하라"는 내용을 발표하고, 판·검사 수천 명이 총리에 항의하는 거리 행진까지 했지만 그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불안한 정국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한 재판은 다음달 재개될 예정인데, 만약 법원이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중형을 선고할 경우 언론을 장악한 베를루스코니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탈리아는 '행정 불신'과 '사법 불신'의 정면충돌로 빚어낼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대놓고 사법부를 비난하지도, 법관들이 거리 행진을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는 전조는 대단히 불길하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힘으로 다스리려고 했던 검찰과 여당은 자신들의 무리수는 생각지도 않고 판사들의 자질을 탓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학술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가 그동안 법원에 군림이라도 한 것처럼 '마녀사냥'을 부추기고 있다. 판사들이 개개의 판결을 할 때마다 신변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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