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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요구하며 화형식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무대 위의 연출자이고자 한 검찰

 

요즘 관객은 순종을 모른다. 특히 2008년에는 감히 반란까지 꾀했다. 사람들은 관객이 될 것을 거부하고 무대 위로 뛰어 올랐다. 가만 두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줘야 했다. 모두에게 응징할 필요는 없다. 상징적인 '몇 놈'만 손봐주면 된다. 사실, '설마, 감히 이 사람까지'라고 여겨지는 핵심에게 높은 강도의 응징을 가할수록,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더 큰 교훈을 얻는다.

 

여기서 논리와 이성, 사실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실현시키는 능력! 그게 바로 권력이다.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내세워 응징을 실현시킬수록, 권력은 커지고 반란의 의지는 사라진다. 보라! 반란을 꾀했던 무리들은, 선택된 이들에게 강도 높은 응징을 가하자 산산히 흩어지지 않았는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들은 자신의 무력함에, 주저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에 치를 떨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초기 대중의 열정은 곧 정치적 냉소주의로 변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쉴 틈 없이 NG가 난다. 보란 듯이 철퇴를 내리쳐야 할 순간에, 철퇴를 든 이들이 철퇴를 맞아야 할 이들을 오히려 뒤로 내뺀다. 용서할 수 없다. 당장 해고시켜야 한다.

 

법원의 NG, 그러나 끝이 아니다

 

이 광경들은 2008년 촛불항쟁 이후 검찰이 주인공이자 연출가가 되어 행해진 일들이다. 사법이라는 무대 위에서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저항의 의지를 꺾으려 했던 제작자(?)의 의도이기도 하다.

 

이 나라의 극우세력들은 대중을 현혹하고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사실에 근거했건 아니건 간에 자신의 주장을 확실한 어조로 반복하고, 이를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전파하고 재생산한다. 어떤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문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으로 보이게 만들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느끼게 만들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장애는 최종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 이런 의도에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은 극우세력의 주장을 전파하는 전초 기지가 되어야할 KBS 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한 것을 취소 판결하고, 말 안 듣는 YTN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도 무효라고 선고했다. 인터넷에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누리꾼을 추적해 구속까지 했지만, 역시 법원은 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연출가의 울화통은 법원이 국회 점거농성을 한 민주노동당 당직자 12명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고,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할 것을 결정했으며,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점차 고조되었다. 결정판은 무대 위에 오르려 했던 관객에게 가장 상징적인 본보기를 보여야 할 <PD수첩>의 전원 무죄 판결이다. 제작자의 불호령은 이미 예정된 반응이다.

 

그러나 연출가의 의도가 이것으로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번엔 아예 자꾸 NG를 낸 당사자들을 무대 위에 올린다. '누구라도 본보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방송사 사장, 전직 대통령, 야당 대표에 이어 최종 심판권을 가진 판사들까지 조롱의 무대 위에 올렸다. 그토록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이들이 말이다.

 

무죄 판결, 정의의 승리를 외치기에는 일러

 

 최근 용산참사 미공개 수사기록 공개허용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무죄판결 등으로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전국 일선 검찰청의 검사와 검찰수사관들과 함께 첫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단체가 각종 으름장을 놓으며 사법부를 공격하고 있는 이유를 단지 자신들의 이제까지 행동에 대한 '명분상실'의 반응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의 대응은 자신의 허구성이 탄로 난 것에 대한 수세적 반응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공세적인 것이다.

 

촛불시위 이후 검찰의 수많은 기소들은 무죄 판결의 가능성이 애초부터 높은 것이었다. 이번 <PD수첩>에 대한 기소 역시 검찰 내부에서부터 이견이 표출된 바 있다. 당초 이 사건의 전담 수사팀장이었던 임수빈 검사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서 스스로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이것은 검찰 스스로도 법원의 무죄 판결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한나라당과 검찰의 반응은 '상식을 벗어나는 판결', '우리법 연구회의 문제'라고 길길이 날뛰고 있다. 검사집단 내부에서도 이견이 도출되었고, 강기갑 의원과 <PD수첩> 무죄판결의 판사들이 모두 '우리법 연구회'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상식'과 '우리법 연구회'를 운운하고 있는 것은 왜인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법 연구회'를 절대 악으로 이미지화하고, 젊은 판사들을 위축 시키고 '검증된' 보수적 법조인을 다시 사법부에 포진시켜 '사법의 보수화'를 이루려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상에 '사실관계'는 별로 중요치 않다. 단지 그렇게 믿게 만들면 그뿐이다. 극우할아버지들 또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집 앞에 장사진을 치면서도 그가 '우리법 연구회' 회원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을까? 성품이 강직한 판사들은 이런 환경에서도 외풍에 휘둘리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적지 않은 판사들이 판결문을 쓰면서 우리법 연구회 회원으로 오인 받거나, 극우단체의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의도한 바다. 해당 판사나 주변에서 '우리는 우리법 연구회와는 상관없다'고 항변한다면, '우리법 연구회'는 정말 특정 정치적 입장을 사법적 판결에 적용시키는 좌편향 판사들의 집단이라는 이미지만 강조될 뿐이다. 이런 결과는 또다시 정부와 여당, 그리고 1950년대 정체성에 머물러 있는 극우단체들이 무리한 방법으로 사법부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과거 '빨갱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극구반공독재국가를 유지시켰던 전략 아닌가? 

 

'상식'을 빼앗아가려는 이들에 대한 '상식인'들의 공세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보수세력의 이런 전략은 일단 성공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법리적 논쟁이나 사실관계를 이미 넘어섰으며 급격히 이념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번 판결의 본질이 정치적 견해나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의제를 '이념화'하고, 이미지화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다수 대중은 이성보다는 '이미지'로 문제를 받아들인다.

 

길길이 날뛰는 그들에게 재판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설명해 봐야, 그들에게 우리법 연구회는 절대악일 뿐이고, 촛불시위 참가자나 진보개혁적 성향의 인물에게 철퇴를 내리지 않는 이들은 모두 우리법 연구회 회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신껏 양심적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있다면 자동적으로 조롱의 대상으로, 정치테러의 대상으로 무대에 올려 진다. 

 

한나라당과 극우 할아버지들의 '상식' 운운에 분노하는 이들이라면, 이들의 상식을 결코 우리의 상식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좌시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상식과 이성, 사실관계에 따른 합리적 판단이 사라져 버린 현실이 안타깝게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등 돌리고 앉아 있어서는 상황이 좋아질리 없다.

 

뭐라도 해야 될 일이다. '역시 더러운 정치판'이라며 외면하는 것은 외려 그들이 의도한 바다. 침묵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만들어진 이미지는 진실이 되어 버리고 대중에게 수용된다. 이미 우리는 그런 외면과 정치에 대한 냉소로 인해 먼저 나선 이들이나 남아 있는 이들만 고스란히 희생자가 되어 버린 현실을 똑똑히 목격해 왔다.

 

의제가 설정되는 초기 시점은 향후 제기되는 의제에 자동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상식적 시민단체와 사실관계를 파악할 능력을 지닌 평범한 시민들, 그리고 각종 정당과 운동단체들은 최소한 한나라당과 극우세력만큼이라도 '상식'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대중들이 또 다시 허구적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촛불시위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사법부가 좌편향 되었다는 거짓 이미지 공작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철퇴는 올해 6월 도장을 제대로 찍는 것이다. 지난 2008년 5월의 거리에서 그랬듯, 또다시 손가락만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관객이 아니라 스스로 대한민국이라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주권자의 심판이다.

 

마지막으로, <PD수첩> 제작진을 비롯해 일련의 재판에 결부된 많은 이들과, 소신 있는 판결로 희망을 보여준 젊은 판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송사에 휘말려 보지 않은 사람은, 백색테러에 마주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세상연구소(www.nci.or.kr)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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