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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전국 일선 검찰청의 검사와 검찰수사관들과 함께 첫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전국 일선 검찰청의 검사와 검찰수사관들과 함께 첫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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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

'갈등'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최근 법원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결정과 강기갑 의원·<PD수첩> 사건 등에 대한 무죄판결에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이에 한나라당·보수언론·보수단체, 심지어 대한변협까지 가세하고 있는데, 언론들은(심지어 진보적 언론까지) 이를 두고 '법원·검찰 갈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를 법원·검찰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매우 부정확한 표현이다.

우선 법원은 수사기록을 공개하거나 무죄판결을 선고하면서 검찰조직을 겨냥한 어떠한 행동도 한 바 없다. 단지 개별적으로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검사의 기소가 정당한지 판단했을 뿐이다.

독립이 보장된 판사들이 검찰처럼 지휘라인에 따른 결재를 받아 개별사건에 대해 일정한 지침을 가지고 판단했을리도 만무하다. 검찰이 법원의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면 항소하면 될 일이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정에서 하면 될 일이다.

법원-검찰 갈등? 일방적인 공격일 뿐이다

그런데 법무부장관·검찰총장까지 나서 당사자의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는 법정 밖에서 조직적으로 법원을 비방하는 것은 법원 검찰 간의 갈등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일 뿐이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용납될 수 없는 행태다. 법정에서 가려야 할 문제를 법정 밖으로 끌고 나와 정치화하는 이른바 '사법의 정치화'는 공정한 사법절차를 통한 정의실현이라는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며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항의하며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성관 판사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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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것은 검찰의 일방적 몸부림이 아니라 정부·여당·보수언론과 보수단체까지 일심동체가 되어 해당 법관 개인에 대한 인격적 비난과 색깔 공세까지 서슴지 않는 매카시즘적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무엇보다 최근 법원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나 잇따른 무죄판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용산참사의 경우 1심 법원의 수사기록 공개결정에도 검찰은 끝까지 이를 무시했고, 이에 대해 법원 역시 검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항소심 법원의 결정은, 검찰은 물론 법원 자신의 잘못을 이제나마 바로잡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에 검찰이 격분하여 기피신청을 할 사안이 못된다.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도 그렇다. 강기갑 의원이 '공중부양'을 하게 된 원인이 한나라당의 일방적 독선과 횡포에 있다는 것은 차치하기로 하자. 법원은 공무집행방해죄의 전제가 되는 공무집행의 적법성 여부를, 확립된 법리에 따라 엄격히 심사했을 뿐이다.

<PD수첩> 사건도 전혀 새롭고 진보적이거나 파격적인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라는 대원칙하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애초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잘못이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발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억울하게 피해를 본 당사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지금까지 권력을 등에 업고 국민을 향해 휘둘러온 무자비한 칼날을 거둬들여야 한다.

사법개혁 원한다면 신영철 탄핵소추안부터 가결시켜야

신영철 대법관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사립학교 종교 자유' 관련 상고심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사립학교 종교 자유' 관련 상고심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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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게 그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 역할은 행정부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국회와 언론의 책임이다. 그런데 국회와 언론이 검찰을 두둔하고 사법부에 대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법원에 대한 공격을 사법개혁으로 포장하기까지 한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판사들을 향해 색깔공세를 퍼붓고 신 대법관 구하기에 급급했던 자들이 사법개혁 운운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진정 사법개혁을 원한다면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부터 가결시켜야 할 것이다.

검찰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이 총궐기하여 사법부를 뒤흔드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판결 외에도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무리한 기소를 일삼은 사건들이 어디 한 두건인가? 그 사건을 맡은 판사들과 무죄판결이 난 사건의 항소심 판사들에게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를 법원 검찰 간의 갈등 나아가 진보 보수 간의 갈등으로 포장하는 보수 언론들의 의도도 눈에 보인다. 진흙탕 정치판 싸움으로 변질시켜 정권과 검찰의 잘못을 희석시키고 이참에 보수세력의 대동단결도 꾀하고 세종시 문제에 대한 관심도 돌려버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꽃놀이패가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이 사태를 헤쳐나가야 할 책임은 다시 사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사법부 독립은 외부에서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 스스로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흔들림 없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단을 할 때, 국민이 사법부를 믿고 지지해 줄 것이다. 지금이 오히려 신영철 사태로 땅에 추락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 국민들이 기댈 곳이 사법부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부 전면쇄신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부 전면쇄신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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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제성 기자는 변호사이자 민변 사무차장입니다.



태그:#강기갑, #사법부흔들기, #피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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