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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선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 관련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519호 재판장 앞 복도는 긴장감이 돌았고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수많은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수많은 카메라, 그리고 취재수첩을 든 사람들 사이 사이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예상한 대로, 법정에 '출동'한 어르신들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주축으로한 보수연합 회원들이었다. 출동한 인원은 100여 명 가까이 됐지만, 50여 명만 재판장에 들어갔고 나머지 40여 명은 복도에서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오늘 법원에 200여 명의 회원들이 왔다"고 귀띔했다.

 

"미국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재판을 똑바로 해봐라, 어떤 놈이 (법원에) 오라고 해도 오는지!"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들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와 사법부, <PD수첩>을 비난했다. 한 할아버지는 "<PD수첩> 제작진이 방송을 이용해서 폭동을 일으켰다"며 "그들에게 징역 20년은 때려야 한다"고 소리쳤다.

 

"미국 가봤어요? 미국 가면 지금 한국교포들이 얼굴도 못들고 다녀요. 미국 쇠고기 먹으면 병 걸린다고 한국에서 하도 설쳐서 미국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서 말이지…."

 

더욱 과격한 말도 난무하는 재판장 앞 복도였다. 처음에는 본인을 "오늘 평양에서 온 아무개"라고 소개했던 '올인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목소리로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좌익 판사, 좌익 교사, 좌익 기자들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놨어. 이쯤 되면 국회 해산하고 계엄령 선포해야 해. 반박하면 반박하는 대로 다 쏴 죽여야 돼!"

 

할아버지들은 또 "광우병 폭동을 촛불문화제라고 하는 언론들은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며 "기자들은 똥물에 튀겨 죽여야 해, 아니 똥물이 아깝다"라고 기자를 향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러던 중 <중앙일보> 기자가 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어버이연합이 어떤 곳이냐"고 묻자, 그는 "어버이연합에 대해 묻는다는 것 자체가 빨갱이"라며 <중앙일보> 기자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노려봤다. 하지만 기자의 소속이 <중앙일보>라는 것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곧 화를 누그러뜨렸다.

 

<PD수첩> 무죄 판결에 난장판 된 중앙지방법원

 

 

소란 속에서 선고가 끝났다. 법원은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보수연합 할아버지들은 함께 목청을 높여 "XXX들! 들어가서 확 죽여버리겠다!" 등의 욕설이 섞인 분노를 터뜨렸다. 또 "빨갱이 판사가 빨갱이들을 재판해서 무죄가 됐다"면서 재판 결과를 인정할 수 없음을 과격한 언어로 표현했다.

 

격분한 보수연합 할아버지들은 연이어 "빨갱이 판사가 내린 재판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다. 법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고, 취재진들이 할아버지들을 둘러싸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취재진이 둘러싼 원 안은 할아버지들의 '자유 무대'가 됐다. 한 방송국 카메라기자는 "우리가 계속 찍으면 얘기가 끝나지 않는다"면서 "그냥 가자"고 동료에게 말하고는 카메라를 챙겨 자리를 떠났다.

 

법원을 나온 보수연합 할아버지들은 법원 입구에서 준비돼 있던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08년 촛불집회를 '폭력난동'으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PD수첩>의 책임을 강력히 규탄했다. 50여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국정혼란 책동, 피디수첩 척결!'이라는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잡은 김영기 '자유민주수호국민연합' 공동대표(65)의 발언을 경청했다. 

 

"광우병 불법집회를 선동한 수뇌부를 즉각 처벌하고, 거짓 선동 방송으로 반미투쟁, 반정부투쟁을 일삼는 친북좌파 이념세력을 대한민국에서 격리 시켜라"는 그의 말에 "옳소! 옳소!"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공감을 표현했다.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던 '올인코리아' 관계자는 "지금의 상황을 만든 좌익 판사, 좌익 기자, 그들을 가르쳤던 좌익 교사는 제 정신이 아니다"며 '좌익세력 척결'을 목청껏 외쳤다.

 

"좌익단체들은 점점 정리되어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한줌 남은 이 좌익들을 자유국가에서 반드시 정리해야 합니다. 우리 자유국가는 '무죄'를 때렸다고(판결했다고 좌파들에게)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수연합 할아버지 회원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피켓을 들고 있던 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PD수첩>이 왜 빨갱이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PD수첩>이 빨갱이가 아니라, 판사가 빨갱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PD수첩>은 '반역자'이기 때문에 빨갱이가 맞다"고 말을 번복했다. 이들에게도 '빨갱이'의 정의는 애매해 보였다. 분명한 것은 보수연합이 말하는 '빨갱이'에 '어버이연합에 대해 묻는 기자', '무죄를 때리는 판사' 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빨갱이'로 시작해 '빨갱이'로 끝난 할아버지들의 하루

 

 

요즘 보수연합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날(19일) 오전에는 강기갑 의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이동연 판사의 집앞에서 시위를 했다. 또 지난 9일에는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진행된 서울역에서도 장례 일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고,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던 11일에는 정부청사 앞에서 정부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래서 낯이 익은 할아버지들도 꽤 있었다. 보수연합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기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자진해서 나온 것"이라며 보수연합 활동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할아버지들은 "오후 2시부터는 사법부 판결 전반에 대한 규탄집회를 갖겠다"며 피켓을 내려놓은 뒤,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오늘도 보수연합 할아버지들의 일과는 '빨갱이'로 시작해서 '빨갱이'로 끝이 났다.

덧붙이는 글 | 권지은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PD수첩, #어버이연합, #보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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