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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향이 어디인가요? 오늘 하루하루의 삶을 살며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노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태어난 곳,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란 곳, 오래 살았던 곳? 글쎄요, 딱히 뚜렷하게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 '앞 들'에 서있는 나무 고향은 내 마음이 정을 주어 정착한 곳이다.

오늘 아침 걸음의 벗들과 만나 눈 덮인 산길, 들길, 기찻길을 함께 걸으며 문득 고향이란 말이 가진 아스라한 그 내적 의미와 그 속에 담긴 포용적 느낌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내게 고향이란 지금의 삶에 있어서 내 마음이 정착한 곳이고, 나와 내 가족들의 일상적 생활이 오롯이 배어나는 현실적 실존의 공간이자 마음의 터전이 아닐까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곳, 나와 내 가족이 이웃한 벗들과 어울려 조화롭게 사는 곳, 그 곳은 지금 현재 나의 고향인 셈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 그 고향의 길을 기분 좋게 사뿐히 걷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살피고 깨닫는 일은 어떤 측면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동네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우리 동네에 있는 산과, 강과, 습지와 들녘은 어떻게 서있고, 흐르고 이어지며 펼쳐지는지, 우리 동네 곳곳에 남겨진 역사의 자취와 흔적은 어떤 유래와 사연을 품고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리 가치 없는 소모적 낭비가 아닙니다.

 

아침 10시, 지하철 화정역 1번 출구 앞에서 걸음의 벗들과 반갑게 만나 우리 동네 한 바퀴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다 같이 걷자 동네 한 바퀴~' 바로 그런 마음으로 가볍고 상쾌하게 걸어 나갔습니다.

 

화정동 민방위교육장 뒷산으로 올라 뽀드득 눈 덮인 산길에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바로 가까이에 인접한 아파트촌을 조금만 벗어나도 소나무와 참나무, 아까시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어 맑고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 줍니다. 나무들은 서로서로 사이에 적당히 좁은 길을 내주어 스치며 오가는 시민들끼리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도 합니다.

 

성라산 둘레길 밤 하늘에 별이 비단처럼 펼쳐져 환하게 빛났다 하여 '성라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성라산 둘레길을 걸었다.

우리 동네를 아우르는 이 길은 어르신들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길이고, 부부끼리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바쁠 것 없이 느리게 걷는 길이며, 아이들과 가족들, 이웃들이 사랑과 정을 키우고 나누는 차별 없는 호혜평등의 길입니다. 그 길을 아무런 피곤한 잡념 없이 담소와 웃음을 섞어 소통하며 걸을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역시 길은 누구에게나 열린 길로 펼쳐져 그가 가진 본질적 '개방성'을 자유롭게 누리도록 해줍니다.

 

하얗게 눈 덮인 농로를 따라 걷다가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성라산(星羅山)'을 만났습니다. 성라산은 별 '성'자에 비단 '라'자를 써서 '성라산'입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산에 올라 밤하늘을 바라볼 때, 수없이 많은 은하수가 하늘에 비단처럼 펼쳐져 반짝거려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라산, 혹은 별아산, 베라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여 성라산의 아래 마을 이름이 성사동(星沙洞) 즉 '별모래 마을'이 된 것입니다.

 

성라산 동남쪽 약수터 약수터에 도착하여 조롱박 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모두 함께 목을 축였다.

성라산의 동남쪽 낮은 기슭을 오른쪽으로 감아 돌아 작은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결코 격하지 않은 길, 어떤 누구에게도 그리 지나치게 거칠지 않은 순한 길이 성라산 둘레를 감싸고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하얀 눈이 쌓이고 덮인 성라산의 품속을 걸어 졸졸졸 가늘고 귀하게 흐르는 약수터에 들렀습니다. 작은 조롱박에 그득 담은 물 한 바가지로 서로의 목을 축이고, 누군가 가져온 떡 한 조각을 나누며 등줄기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땀의 기화(氣化)를 수수방관했습니다.

 

잠시 앉아 나누는 소박한 정으로 사람과 사람간의 자칫 어색한 긴장과 탐색은 순식간에 소멸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소통과 나눔, 어울림이 가진 묘한 위력은 나만이 아닌 우리를, 공동체를 느끼고 생각하도록 깨우치며 가르치는 모양입니다.

 

성라산을 휘감아 돌아 '물박달 나무' 작은 군락이 있는 송림약수터로 내려왔습니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하고, 약수물을 뜨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지나 다시 '리기다소나무'가 즐비한 상쾌한 숲을 거쳐 어울림누리로 향하는 국사봉 다리를 건넜습니다.

 

송림 약수터를 지나고... 성라산의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송림 약수터를 지나 국사봉 다리로 향했다.
국사봉 다리 성라산 아래로 도로가 나면서 산이 갈라지게 되자 사람들의 통행로로 다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만 다닐 수 있을 뿐, 동물들의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사봉다리'는 성라산에서 국사봉(성라산의 맨 꼭대기 봉우리)이 있는 동쪽과 어울림누리가 있는 서쪽을 가르고 단절시킨 도로 위로 연결된 사람들의 통행로입니다. 도로를 개설하며 길을 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 산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이 오갈 수 있는 그들만의 길(생태연결통로)을 만들어 주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뭇 생명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배려...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진정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어느 일방의 편의와 이익을 위한 신중하지 못한 섣부른 개발은 옳지 못합니다. 내가 사는 우리 동네 뒷산 길을 걸으며 또 한 번 공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울림누리를 가로질러 화정동에서 '고양시청'쪽으로 향하는 39번 국도를 건넜습니다. 봄이면 양지 바른 들판에 하얀 배꽃이 만발하게 피어 화사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주교동과 대장동 사이 '앞 들'을 걸었습니다. 추운 날씨로 얼어붙은 대장천은 그야말로 조용함을 넘어 고요함이 깔려 있었습니다.

 

대장천 둑방길 주교동쪽에서 대장동, 능곡동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합류하는 대장천변 길을 걸었다.

얼어붙은 대장천 얼음 위에는 오리들의 물갈퀴 발자국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들이 걸음을 옮기며 눈 위에 새겨 놓은 발자국은 깨끗한 백지 위에 그려 놓은 포스트모던 평면구성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아기자기한 발자국, 장난스러움이 느껴지는 발자국, 다정해 보이는 발자국, 우연에 의한 기하학적 문양처럼 보이는 발자국들... 나는 걸으며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뒤뚱뒤뚱한 걸음과 그들만의 평화로운 휴식과 자유로움을... 푸후훗 웃음이 절로 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저만치 앞에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 교외선 철로를 향해 걸었습니다. 과거 몇 년 전만 해도 서울 신촌에서 고양시를 거쳐 의정부까지 여객을 실어 나르던 교외선 기찻길이 우리 동네에는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객운행은 하지 않고, 가끔 화물이나 군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열차만이 비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낡고 초라한 철길입니다. 그 때 그 시절, 젊은 청춘들에게 아름다운 사랑과 낭만의 추억을 안겨주었던 기찻길이 눈에 덮인 채 양쪽 레일만을 까맣게 드러내놓고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교외선 철길 아이들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철로 위를 비틀비틀 걸었습니다.
TV 문학관의 한 장면 같은... 철로 사이 침목들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녹슨 철로 두가닥은 까맣고 길게 늘어서 눈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밟으라 몸을 내주었다.

우리 일행은 그 아름다운 철로 위를 걸으며 누구랄 것 없이 동심에 빠져들었습니다. 레일 위에 발을 올려놓고서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을 벌려 비틀비틀 걷는 모습은 아이들처럼 유치했지만, 한 편으론 그림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길은 어른도 아이로 만들어 주고, 무거움도 가볍게 덜어주는 편안한 유희와 건강한 치유를 체험하는 장(場)인 모양입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모두들 신나게 웃고, 떠들며 놀았습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뾰족하게 매달린 녹슨 철재지붕의 '대정역'에 도착해 잠깐 동안 흔하지 않은 간이역의 매력적인 정취를 느꼈습니다. 고드름을 따다가 마치 총처럼, 칼처럼 손에 들고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벗들끼리 나란히 서서 사진 한 장의 추억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대정역을 지나 오늘 걸음을 시작했던 화정역 쪽으로 막바지 느릿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비닐하우스 화훼단지를 지나고, 다시 대장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려는 찰라였습니다. 하얀 눈 쌓인 들판에 모여 먹이를 주워 먹고 있는 수백 마리의 큰 기러기 떼를 깜짝 놀랍게 만났습니다. 두근두근 심장이 쿵쾅거리는 순간적인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의 환호를 억지로 삼키며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감동, 감동이었습니다.

 

들판의 큰 기러기 떼 놀랍게도 대장동 '앞 들' 눈 덮인 논 위에 큰 기러기 수 백 마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그들의 평화로운 식사와 휴식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여 스리 살짝 몇 걸음을 떼어 옮기니 다시 눈 앞에 화정역이 보였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우리 동네 한 바퀴 걷기는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열린 길이었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어울림의 길,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준 소중한 길은 스승이었습니다.

 

"다 같이 걷자 동네 한 바퀴~♪"

 

우리 동네 산길, 들길, 물길의 곁을 어깨동무하여 여럿이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고양올레>는 고양시에 걷기 좋은 작은 길, 좋은 길을 열기 위해 다음 카패 cafe.daum.net/gyolleh를 운영합니다. # 지난 1월 17일 걷기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화정역~화정동 농로~성라산~어울림누리~대장동길~화정역 까지 약 11km, 3시간 소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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