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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 김남수
 구당 김남수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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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의외다. MBC 이상호 기자가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동아시아)란 책을 내놨다. '삼성 X파일 사건 보도 기자'의 침뜸 이야기라….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동양의 정신'이란 부제를 보고, 무슨 마음의 평화를 침뜸에서 찾았다는 식의 말랑말랑한 고백서가 아닐까 여긴 것도 그래서였다.

물론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야합을 폭로한 기자 눈에는, 이른바 '구당 죽이기'는 의료권력과 자본권력의 야합, 그리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력의 침묵까지 X파일 사건의 '판박이'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허나 이미 '끝난 일' 아닌가.

한의사협회와 벌인 법정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침사 자격이 정지당한 것이 벌써 7개월 전이다. 아무도 치료해 줄 수 없는 이 땅을 떠나 '의료 망명'을 했다. 이젠 돈 있는 사람이나 미국으로 날아가 구당 앞에 줄을 설 수 있게 됐다. 두려운 현실만 재확인한 셈이다. 여기에 무슨 '반전'이 남아 있을까.

한의사협회 역대 회장 선거 주요 공약은?

일단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잠시 미룬다. 대신 여는 글부터 "알량한 양식과 가식 따위는 잠시 내려두고 아주 순수하게 분노하기로 작심했다"면서 한의사협회와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랬듯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분노하는 게 먼저'라는 식이다.

"국민 건강을 목표로 한다는 대한한의사협회의 역대 회장 선거 주요 공약이 '구당 타도'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사이에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구당 죽이기'가 버젓이 진행되어 왔음을 나는 고발한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나쁜 것 같다고도 목소리를 높인다. "국회의원 회관에 있는 구당 선생의 침뜸 봉사실에서 10년 넘게 공짜 치료만 실컷 받았으면서도, 이를 일반 국민들과 나누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란다. 침뜸 대중화에 필요한 "단 한 줄의 법"도 만들지 않은 일을 이르는 말이다.

이어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자본주의까지 분노는 옮겨 붙는다. '구당 죽이기'는 "환자를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 말기 의료체계, 그 자체가 흉기와 괴물로 변해 구당을 공격한 것"이라 규정한다.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물론 구당, 아니 '침뜸' 자체다.

반전의 실마리, 미국이 구당을 '가마'로 모신 이유

화상 치료 모습
 화상 치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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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답을 내놓는 것은 이때부터다. 태생적으로 '구당 침뜸의학'은 비자본적이다. "취득 원가가 있는 약값은 쉽게 가격을 매길 수 있지만, 침값은 구태여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길가에 자라는 마른 쑥 한 줌, 즉 '비자본'으로 인간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뜸 역시 그러하다.

'친자본적인 의학'과 충돌하는 건 필연적이란 말이다. 더불어 '한의사가 의(醫)를 버리고 약장사로 전락했다'는 공개 비판에서 드러나듯, 저자에게 구당은 '비자본적인 원칙'을 오랜 세월 지켜 낸 인물이다. 구당이 '침뜸 자체'였기에 한의사단체와 '전쟁' 또한 그만큼 치열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비록 '의료 망명'으로 나타났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반전이 시작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내쫓긴 구당이 현대 의학 '본가'에서 침구사 자격을 인정받았다. 조지아 주 정부의 임상 허가가 떨어지면서, 구당 제자들이 시술하는 클리닉에도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 드러난 결과들이다. 다시 말해 "누구든 잘 싸우기만 하면 된다는 실용주의 프로모터"인 미국이 구당을 '가마'로 모셔 간 이유에 반전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다. 구당도 이미 책에서 말했다. 구당 침뜸의학만큼 "돈 안 드는 경제적인 의학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당 침뜸의학

저자는 구당 침뜸의학이 현존하는 자본주의 시장질서 원칙을 완벽히 충족한다고 주장한다. "엄청난 병원비를 굳게 해주는 침뜸은 엄청난 돈을 벌어준다", "돈을 벌어주니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가 "구당 침뜸의학이 의료보험 개혁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의료보험 최대 수요층이 노년 인구인데다, 돈이 덜 들면서도 더 잘 고치는 새로운 의료시스템으로 침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쯤 되면 '이상호 기자'가 생각하는 '반전'을 눈치 챌 수 있다. X파일 사건에서 일종의 '절망'이 드러났다면, 구당 김남수에서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실효적 대안'이 바로 구당 침뜸의학이란 것이다. 그 가능성은 이미 국내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삼성의료원을 가진 삼성그룹 총수와 가신들도 자신들의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병을 지고 구당의 누가(陋家)에 머리를 굽히고 찾아든다. 그들이 구당의 뜸집에 들어서는 순간 자본주의의 가공할 논리는 작동을 멈추고 만다."

이상호 기자의 인터뷰 모습
 이상호 기자의 인터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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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체는 결국 사람, 구당이 쌀 반 톨 크기의 뜸을 놓듯

더불어 구당이 지적재산인 치료 비법을 공개했고, 가히 '의료재벌'이라 할 만한 물적 재산, 매년 15만 명을 치료하는 침뜸 봉사실을 사회에 모두 내놨다는 사실 등을 떠올린다. "대한민국 어느 재벌이 구당만큼 통 큰 나눔을 실천하고 있냐"고도 묻는다.

결국 '실효적 대안'의 주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구당 침뜸의학의 놀라운 치료 능력과 이것을 가능케 한 비방(秘方)을 캐내려는 성급함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보다 인간'에 무게를 두는 그의 청빈한 삶의 양식에 주목하는 일"이라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구당의 황당한 삶을 따르노라면 너도나도 절로 구당이 된다. 작은 황당함들이 큰 감동으로 이어지고, 감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낮은 울림으로 이어준다. 그렇게 끝내 역사의 수레바퀴는 움직일 것이다."

황당한 이야기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너도나도 구당이 되자'는 이 말이 구당 침뜸의학과도 정확히 상통하기 때문이다. 구당은 뜸을 쌀 반 톨 크기로 제한한다고 한다. 몸 전체에 나눠 작게 뜸을 뜰 때 치료효과가 오히려 뛰어나다는 것이다.

구당 김남수가 50년을 살아온 청량리 17.5평 짜리 연립주택
 구당 김남수가 50년을 살아온 청량리 17.5평 짜리 연립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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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자리, 아시혈을 찔러라

그럼 '아픈 세상'을 더 전면적이고 급진적으로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마찬가지 아닐까. '아시혈'이란 말이 있다. 체내 각종 병증이 통증 신호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는 곳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바로 그 자리'란 뜻이다.

사람보다 돈이 앞서는 세상이니, 꾹 누르면 비명이 터져 나오는 '아시혈'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바로 그 자리'마다 '바로 우리'가 있다. 각자의 아시혈에서 쌀 반 톨 크기의 '뜸'이나 '침'이 되자는 것, 구당과 나눈 대화에 담겨 있는 저자의 메시지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점

특히 최근 들어 술만 마시면 세상을 욕하는 빈도가 늘어난 사람 ★★★★
더불어 침뜸 치료법 안내 책자가 필요하다면 ★★★★★☆
의사라는 두 글자 ★★★★
동양의학 바이블로 평가받고 있는 <황제내경> 기본정신을 알고 있는 사람 ★★★★
삼성맨 ☆☆☆☆☆★

절반 가까이가 침뜸 설명, 가정의학서로도 손색없어
10.26으로 무산된 박정희 전 대통령 면담도 '눈길'

저자에게 장진영씨의 죽음은 우리 의료제도의 모순을 상징한다
 저자에게 장진영씨의 죽음은 우리 의료제도의 모순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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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는 이 책에서 지난 6년 동안 구당 선생을 수백 번 만났을 정도로 긴 시간을 함께했다고 전하고 있다. 괜한 부풀리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책의 절반 가까이를 침뜸의 역사와 치료원리 그리고 구당 침뜸의학을 자세히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구당 침뜸의학의 '정수'로 꼽히는 화상침과 무극보양뜸을 상세한 해설과 함께 그림을 곁들여 설명했고, 고혈압, 당뇨, 중풍, 통풍 등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26개 병증에 대한 구당의 의견도 함께 수록했다. 가정의학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중국 최고의학서로 동양의학의 바이블이라 평가받는 <황제내경>으로부터 구당과 한의사협회의 숙명적인 악연을 읽다보면 한의학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자연스레 구당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이어진다. 47년째 이어지는 침구사 제도 '무한 투쟁' 과정에서는 운동가로서 구당의 면모가 읽힌다.

흥미로운 뒷이야기들도 많다. 구당의 한국전쟁 참전기나 10.26으로 무산된 박정희 전 대통령 면담이 대표적인 예. 전국적으로 숱한 화제를 뿌린 화상침의 출발이 연탄을 갈던 아내가 입은 화상치료에서 시작됐다는 사연도 인상적이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 누님을 치료하러 갈 때도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변장을 했다는 이야기는 구당의 '고통'을 함축하고 있다. 구당 자신이 표현한 바로는 "몰래침 인생". 자기와의 싸움에 평생 고통받았을 구당은 '못난 기자' 앞에서 종종 눈물을 보였다고 전한다.

형식적으로는 모두 5장에 걸쳐 인터뷰 전문을 먼저 소개하고, 다시 이를 해설로 보충하는 방식을 취했다. 마지막에 게재된 보론 '구당 침뜸의학의 정치·경제적 의미'를 통해서는 구당을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를 제시하고 있다.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동양의 정신

이상호, 동아시아(2009)


태그:#침뜸, #구당, #김남수, #이상호,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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