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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목차다. <동의보감>은 모두 5편, 2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권부터 첫 편의 본문이 시작하지 않는다. 5편이라는 것은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編), 침구편(鍼灸篇)이며, 각각 4권, 4권, 11권, 3권, 1권으로 구성되어 총 23권 분량이다. 나머지 2권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목차 부분이다. 첫 2권은 목차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뒤에 나오는 23권만이 실제 본문 내용이다. 전체 25권 중 목차만 2권이라니!

특히 목차도 앞 부분에 '목록(目錄)'이라고 하여 각 질병의 세세한 항목을 모두 기술하고 있는 부분과 뒷 부분에 '총목(總目)'이라고 하여 큰 제목만 기술하여 질병의 명칭까지만 나오도록한 것 있다. 세세한 분류만 적어 놓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나무만 보고 숲을 놓칠 수 있다는 단점을 극복하려 했고, 2000년이 넘는 긴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질병분류 방식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질병을 추상화하여 대분류

내경편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의 질병에 대해, 외형편에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의 질병에 대해, 그리고 잡병편에서는 내경과 외형으로 나누기 어려운 다양한 질병에 대해 기술하였다. 그리고 탕액편에서는 약재에 대해서, 마지막 침구편에서 침과 뜸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내경, 외형, 잡병으로 질병을 대분류한 것과 탕액과 침구로 치료도구를 기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동의보감>의 의학사에 그은 획은 대단한 것이다.

물론 인체와 질병을 내경과 외형으로 나누었다는 점도 의학사 최초의 기술이다. 특히 외형편의 구성을 찬찬히 살펴 보면 인체의 안과 밖을 어떻게 구분하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위에서부터 머리, 얼굴, 눈, 귀, 코, 입과 혀, 치아, 목구멍, 뒷목, 가슴, 유방, 배, 배꼽, 허리, 옆구리, 피부, 근육, 맥, 힘줄, 뼈, 손, 발, 머리카락과 털, 생식기, 항문을 외형에 넣었다.
<동의보감>은 질병의 분류를 인체의 구성부분에 따라 재배치한 점, 개개의 증상보다는 인체의 허하고 실한 것, 용기있고 겁이 많은 것, 피부색이나 체형 등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질병보다는 인간을 중심에 둔 의학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의보감> 내경편의 내용
신형, 정, 기, 신, 혈, 몽, 성음, 언어, 진액, 담음, 오장육부, 간, 심, 비, 폐, 신, 담, 위, 소장, 대장, 방광, 삼초, 포, 충, 소변, 대편

입을 벌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목구멍까지를 외형으로 넣은 점, 그리고 피부 밑의 근육, 맥, 힘줄, 뼈를 인체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라고 본 점이 특이하다 하겠다. 이것은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인체 외부의 몸상태에 영향을 주고 드러난다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인체관을 좀더 명확히 기술한 것이다.

때문에 팔다리에 병이 들거나, 근골에 손상을 입거나, 허리나 옆구리가 아프거나, 목이 붓고 아프거나 피부질환이 발생한 것은 인체 내부의 변화와 관련있는 것이고 이것 자체가 치료의 목표가 되지는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과 관련된 인체 내부의 원인, 즉 인간의 감정이나 음식의 문제, 차고 더운 문제, 습하고 건조한 문제, 과로나 스트레스 등의 문제를 찾아야 하는 것이 <동의보감>이 정리한 동아시아 의학의 주된 흐름인 것이며, 인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의학의 특징인 것이다.

인체를 열매에 비유하자면 팔다리나 몸통은 껍질에 해당되고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인체 내부의 기관들은 씨앗에 해당된다. 사람에게는 열매의 과육이 중요하지만 해당 식물에게는 씨앗이 더 중요한 것이듯, 사람의 몸에서도 내부의 기관들이 껍질보다 중요하다는 인체관인 셈이다.

<동의보감> 외형편의 내용
두, 면, 안, 이, 비, 입과 혀, 치아, 인후, 목덜미, 등, 가슴, 유방, 배, 배꼽, 허리, 옆구리, 피부, 근육, 맥, 힘줄, 뼈, 손, 발, 머리카락 및 털, 생식기, 항문

그러나 <동의보감>은 인체와 질병을 안팎으로 나누어 대분류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각각의 질병에 대하여 세부항목을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 날 현대의학의 당뇨와 매우 유사한 관찰을 하였던 '소갈(消渴)'이라는 질병 항목이 잡병편에 나온다. 원인,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맥법, 3대 분류, 많이 먹는데도 살이 빠지는 증상, 소변에서 단 맛이 나는 증상과 원인, 소갈과 상반되는 질병, 각종 치료처방, 술이나 충으로 인한 소갈, 그리고 당뇨 합병증의 증상들, 당뇨 합병증 중 피부질환 예방의 중요성, 치료할 수 없는 상태, 각종 금기사항 및 단방을 설명하였다. 당뇨의 질병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만한 기술인 셈이다.

이처럼 세세한 항목을 나누어 세부 제목을 붙이고 기술한 것도 동아시아 전통의학사에서 <동의보감>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세부항목을 나누어 기술하고 제목을 붙인 것이 모두 허준 선생의 독창적인 업적이다.

<동의보감> 잡병편의 내용
하늘과 땅의 기운, 병을 살핌, 증을 변별함, 맥진, 약쓰는 법, 토법, 한법, 하법, 풍, 한, 서, 습, 조, 화, 내상, 허로, 곽란, 구토, 해수, 적취, 부종, 창만, 소갈, 황달, 해학, 온역, 사수, 옹저, 제창, 제상, 해독, 구급, 괴질, 잡방, 부인, 소아.

재정난 속에서도 목차 2권 함께 간행

<동의보감>은 내경, 외형, 잡병으로 대분류하여 질병을 추상화하였고, 동시에 각각의 질병을 소갈의 세세한 항목처럼 세분화하여 질병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뿐 아니라 인체의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하여 질병을 기술하였다. 이와 같은 분류작업이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최초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세 목차를 무려 두 권에 걸쳐 책의 앞머리에 붙여 놓았다.

<동의보감>이 간행된 시점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국가재정이 매우 어려운 때였다. 심지어 조선 전기 같았으면 단숨에 끝났을 여러 국가출판 사업들이 그나마 인력과 재정이 모여있던 군사기관인 훈련도감에서 간행되었고 시간도 오래 걸리던 때였다. <동의보감> 초간본 역시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금속활자를 활용해서 만들거나 목판을 직접 새겼던 방식이 아니라 내의원에서 나무로 된 활자를 모아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0년 집필이 완료된 시점에서 무려 3년의 시간이 경과한 뒤인 1613년에야 간행될 수 있었다.

종이값과 인건비를 줄이려 했으면 목차 2권을 생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허준과 광해군은 목차 2권을 포함하여 25권 <동의보감>을 간행하였다. 그만큼 동아시아 의학의 새로운 질병 분류방법와 재정립에 큰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다.


태그:#한국의학, #의학사, #동의보감, #질병 분류,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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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주)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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