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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새벽부터 온종일 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밑동이 굵은 키 높은 나무들조차 몸이 큰 폭으로 흔들렸습니다. 그 바람에 모티프원 정원의 자작나무 썩은 가지는 모조리 떨어지고 여전히 마른 잎을 매달고 있던 버드나무도 야짓 잎을 떨어뜨리고 가지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센 바람에 걸려있던 부러진 가지를 모두 정리해 버린 정원의 자작나무
 센 바람에 걸려있던 부러진 가지를 모두 정리해 버린 정원의 자작나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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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아 문밖으로 나가자 싸늘한 아침공기가 몸을 감쌌습니다. 잘못알고 청양고추를 씹었을 때처럼 매웠습니다. 하지만 시린 코끝과는 달리 머리는 맑은 호수의 얼음처럼 투명해졌습니다. 청양고추를 씹고 난 뒤 주체할 수 없는 매운 맛에 뒤따르는 그 청량함처럼 말입니다.
버드나무 잎이 모두 떨어지자 잔가지 사이로도 새벽달이 선명합니다.
 버드나무 잎이 모두 떨어지자 잔가지 사이로도 새벽달이 선명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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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누군가가 제게 새벽에 대한 기억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동터기 전에 항상 마당을 뒷짐 지고 오가시면서 가족들을 깨우던 할아버지의 헛기침에 대한 기억, 낯선 도시를 여행하면서 새벽시간에 거리에 나가 도시의 화장되지 않은 모습을 관찰했던 기억, 사막의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4시에 나미브사막의 모래언덕을 올랐던 기억, 그리고 블루와 오렌지 그리고 레드까지의 수만가지의 계조로 변해가는 동트는 풍경을 통해, 밤의 장막을 거두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장밋빛 손가락'의 놀림이 얼마나 오묘한 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또한 에오스의 오누이, 헬리오스Helios가 네 마리의 신마神馬가 끄는 전차戰車를 몰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아침 일출과 함께 산 그림자가 물러나는 것을 보면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가 시속 몇 km의 빠르기로 태양 마차를 몰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듄45의 모래언덕에서 일출을 보기위해서는 모두 새벽 4시전에 숙소를 떠나야합니다.

모래바람을 견디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올라야 황홀한 사막의 일출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듄45의 모래언덕에서 일출을 보기위해서는 모두 새벽 4시전에 숙소를 떠나야합니다. 모래바람을 견디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올라야 황홀한 사막의 일출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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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잠든 도시가 아직 깨어나지않았을 때 골목을 걷는 것은 낮에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도시의 맨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늦게 잠든 도시가 아직 깨어나지않았을 때 골목을 걷는 것은 낮에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도시의 맨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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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의 밤과 아침 사이의 풍경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밤과 아침 사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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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새벽은 저만 아는 비밀을 만들어 줍니다. 간혹 새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헤이리를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헤이리의 누구도 아직 집밖으로 나오지 않은 그 시간, 헤이리 중앙의 작은 갈대 늪은 수십 마리의 야생오리들로 부산스럽습니다.

야생오리는 결코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헬리오스의 마차가 오케아노스Oceanos의 동쪽 바다에서 솟아올라 반대쪽 바다로 몸을 감출 때까지 수십 마리의 오리 떼를 갈대늪에서 볼 수는 없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습니다.

헤이리의 사람들이 아직 깨지 않은 시간에 갈대늪을 다녀가는 야생오리들
 헤이리의 사람들이 아직 깨지 않은 시간에 갈대늪을 다녀가는 야생오리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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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 없는 시간 갈대늪은 야생오리들의 차지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없는 시간 갈대늪은 야생오리들의 차지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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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농부였습니다. 저는 이 두 분이 동트는 새벽을 넘겨서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새벽 갓밝이에 지게를 지고 사립짝을 나서는 소리를 듣고 다시 잠이 들곤 했습니다. 무거운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다시 선잠이 들면서도 '새벽은 깨어있어야 할 시간'임이 어린 시절부터 저의 심간에는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매운 새벽공기를 맡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새벽이 생각났습니다. '현재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이 두 분의 새벽이었구나'하는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12월은 한해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새해의 어둑새벽이기도 합니다.
새해에도 삶을 대면함에 있어 오늘 아침의 새벽공기처럼 깨어있으리라.

헤이리의 새벽 풍경
 헤이리의 새벽 풍경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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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헤이리 느티나무
 아침의 헤이리 느티나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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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과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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