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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띠리링… 열차가 곧 도착하겠습니다."

 

2일 오전 10시경 신도림역 1호선 승강장. 출근 시간이 지난 전동차 안은 빈 자리가 보일 정도로 승객이 많지 않았다. 전동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가 싶더니, 다시 문이 열렸다. 이어 역사 안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인해 전동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이제 됐다'는 듯 다시 문이 닫히고 열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문의 개폐를 담당하고 있는 열차 뒤편 운전실 직원은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투입된 대체인력이다.

 

역사 안내방송에서 '불법 파업'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전날(1일) 정부의 담화문 발표가 있고 난 뒤부터다. 이전에는 '불법'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이명박 "법 준수되지 않으면 앞으로 같은 일 반복"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임태희 노동부 장관 등은 전날 경제부처 공동담화문을 통해 "(이번 파업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등 법령이 보장하는 노조활동의 합법적인 범위를 벗어난 불법파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일 철도노조 파업을 다시 한 번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 30분경 철도공사 비상상황실을 방문, 파업 현황과 철도 운행 상황 등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법이 준수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 받고 있는데,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보장받고도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공공기관선진화 워크숍에서 'CEO 대통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노조의 합법적인 파업에 대해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의 탈을 씌운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적당히 타협하고 가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법 모색이 아니라 철도공사와 공안 당국에 사실상 강경 대응 지침을 내린 셈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합을 불필요한 것 또는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철도노조 파업은 합법... 이 대통령이 불법으로 몰아"

 

실제 법률가 단체들조차 철도노조 파업의 합법성에 관한 법률적 의견을 제출하며 이명박 정부와 철도공사의 철도노조 탄압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등 법률가 단체들은 전날(1일) 기자회견을 열고 "철도노조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정당한 단체행동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형법상 정당행위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구성 요건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이들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 철도노조가 주체가 되어 있으므로 정당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 ▲ 목적에 있어서는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의 체결에 그 목적이 있으므로 정당하다는 점 ▲ 시기와 절차에서도 지난해 10월경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와 조합원 찬반투표 절차를 모두 거쳤다는 점 ▲ 수단과 방법에서는 쟁의 행위 시 필수유지업무 인원을 유지·운영하도록 한 점과 파업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진행한 점 등에서 정당하며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률가 단체들은 오히려 철도공사측이 불법대체인력 투입 및 부당노동행위를 통해 노조의 정당한 단체행동을 탄압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지난달 25일 내려진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다. 지난 9월 8일 철도노조의 1차 경고파업 당시 철도공사가 외부대체인력을 투입한 행위는 단체협약 위반이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노동위원회 입장에 따를 수 없다"며 5600여 명의 외부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이에 대해 권영국 변호사는 "철도노조의 쟁의행위 중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에서 불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찾아보라"며 "검찰·경찰·법원까지 국가기관을 총동원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또 "64년 동안 지속되어 온 단체협약을 파기한 것은 사회적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견된 허준영 사장의 강경 드라이브... 공기업 노조 무력화 총대 메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경제학자 출신인 정운찬 국무총리까지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갔다. 2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한 정 총리는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 정부가 노동정책의 협상 여지를 차단하고 노동과 자본 사이의 조정자 역할보다 노동운동 자체를 불온시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경제학자 중에서 효율도 중요하지만 형평도 강조하는, 많지 않은 학자 중 하나였다"며 "1970~80년대 노동운동은 지지했는데 그 후 지난 20년 동안 노동시장에서 노조활동이 과거에 비해 너무 전투적이라 이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노조활동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마저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왔지만, 정 총리는 "공무원 단체권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나가서 띠를 맨다든다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공공기강을 해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철도 노조가 해직자 복직 등 어려운 요구를 하니 철도청에서 강한 입장을 보인 것 같다. 국민 기본권은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무리한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허준영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의 인식이다. 허준영 사장은 지난달 25일 코레일 서울사무소에서 "철도노조가 부당하고 불합리한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을 하려 하는 것을 국민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파업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실 노조에 대한 허준영 사장의 '강공 드라이브'는 낙하산 논란 속에 진행됐던 그의 취임 당시부터 예견됐다

 

경찰청장 출신인 허 사장은 지난 2005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시위 중 농민 두 명이 과잉진압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놓고 수장이 퇴진하면 공권력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버텨 눈길을 끌었다.

 

그가 철도노조와 단체협약 재협상 중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한 것이나, 노조의 대화 요구에 대해 '선 파업 해제'를 주장하며 "이번에는 절대 적당히 넘어가는 일이 없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허 사장이 공기업 노조 무력화의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파업 3일 만에 경찰이 신속하게 철도노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이날 성명을 내고 "철도노조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파업에 돌입한 것은 60년 동안 지속된 단체협약을 전직 경찰청장이 사장으로 낙하산 부임한 철도공사측이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노사 간 대화를 전면 거부하는 등 강경일변도로만 치달은 철도공사의 불법적인 부당노동행위가 직접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시민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명박 정부와 철도공사는 위법적인 노조탄압에만 몰두하는 비이성적 태도를 중단하고, 즉각 노조와의 성실한 협상에 나서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공기업들의 조직적인 단체협약 해지 등을 보면 정부가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을 유발하려는 것 같다"며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노조 탓으로 몰아가기 위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철도노조, 여의도 대규모 집회... '노사 대화' 촉구 압박

 

한편 철도노조는 2일 서울지역 조합원을 대상으로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번 결의대회에는 자체 일정을 진행 중인 지부를 제외한 5000여 명(경찰 추산 4000명)이 참석했다.  

 

노사 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야 4당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 중단과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촉구했다. 철도노조측이 조건 없는 대화와 교섭을 거듭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철도공사의 태도 변화 여부가 주목된다.

 


태그:#철도노조 파업, #이명박 대통령, #허준영 코레일 사장, #정운찬 국무총리, #단체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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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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