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말(28일), 시(詩) 쓰는 공무원으로 알려진 군산시청 이종예(60) 주민생활지원 국장의 첫 시집 <서해낙조에 핀 어화>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아늑한 은파유원지 인근 커피숍에서 열렸는데 낮게 깔린 물안개와 그윽한 산타로사 커피향의 어울림이 축하공연처럼 느껴졌다.

 

40년 공직생활 정년을 한 달여 앞두고 발행한 첫 시집 '서해낙조에 핀 어화'에는 네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글을 중심으로 '그리움', '사모곡', '요놈들', '잡초', '단비' 등 5부로 나눠 134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금강 고기잡이 어부들이 바다에 나간 돛단배가 걱정되어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밤을 맞이하는 것처럼,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애절한 마음을 작은 시집에 평범하면서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국장은 인사말을 통해 정년을 앞두고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마음속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어부들 뱃노래처럼 빛바랜 노트에 몽당연필로 써온 글들을 모아 담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집을 발간한 이후 '자신의 어머니 비석(碑石)에 사모곡이란 시를 새겨 넣고 싶다'는 연락을 몇 차례 받았다"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사모곡을 낭송했다.

 

"나 어릴 적에 주님 곁으로 가신/ 어머니 얼굴을/ 하늘에 그려봅니다./ 마음 놓고 불러본 어머니/ 내 목소리는 메아리로/ 이 가슴을 향해 달려옵니다.(중략) 내 머리의 종기 고름을/ 당신의 고운 입술로 빨아주셨고/ 찬 방 마루에 깔아주셨던/ 비단치마가 지금도 사랑자리로/ 남아있습니다."

 

이 국장은 처음으로 책을 내면서 호되게 평을 받기도 하고 혼도 났다며 겸손해 했다. 그러나 필자 눈에는 짭조름하면서 개운한 갈치속젓 같은 시, 당장 째보선창으로 달려가고 싶은 동심을 자극하는 시, 어머니 손맛을 그립게 하는 맛깔스런 묵은 김치 같은 시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편 고은 시인은 시집발간 추천사를 통해 "군산이 고향이라는 회상과 현실 속에서 생애의 거의 전부를 살면서 향토지속의 공직생활 40년과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그대는 어느 마을인들 어느 길목인들 남남이 아니게 익숙해서 그런 긴 일상들이 마침내 그대의 시적 염원을 불러일으킨 것이오"라며 순수한 시심(詩心)을 격려했다. 

 

머리카락 잘라 학비 보태준 큰어머니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잠시 만난 이 국장은 문학21 신인상에 추천해준 최영봉 선생과 이른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마당에 나아가 상추를 뜯어다 조카 입맛에 맞는 찬거리를 장만해주었던 큰어머니, 사위가 좋아한다고 철따라 밑반찬을 챙겨준 장모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 국장은 부잣집 큰딸과 문벌 좋은 가난한집 막내아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젖먹이에서 막 벗어날 무렵 어머니를 여의고, 징용으로 끌려갔던 아버지마저 원폭피해 후유증으로 돌아가시자 8남매나 되는 큰어머니 댁에 얹혀살게 되었다고.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학비에 보태주며, 세 살 버릇이 건강해야 미래가 보이는 법이니까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당부했던 큰어머니.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는 그 큰어머니가 1년 전 94세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곧 1주기가 된다고 말할 때는 큰 눈망울 주변에 물기가 맺히기도 했다.  

 

이 국장은 "매일 새로운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주었던 큰어머니 사랑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며 "손자들도 무척 귀여워하셨는데 가을이면 마당에 떨어지는 감들을 주워 모아 손수 우려내 손자들에게 먹이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시 쓰는 공무원 이종예가 걸어온 길 

 

열정이 대단한 이종예 국장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KIA가 군산에서 히어로즈를 이기고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던 경기(9월24일)를 취재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동갑내기가 한 도시에서 50년 넘게 살면서 초면이었다는 것은 우주의 삼라만상도 본다는 인간의 시야가 얼마나 좁고 미약한가를 또다시 확인하는 대목이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에 8남매나 되는 사촌형제들 틈바구니에서 학교에 다니고, 인쇄소 직원을 거쳐 시청 국장(서기관) 자리에 오르기까지 인생항로가 파란만장했을 거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궁금하게 생각되는 점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불우했던 것으로 아는데, 학교는 어떻게 다닐 수 있었는지요? 

"그래도 큰어머니 손을 잡고 개정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사촌들도 잘 해주었고요. 그런데 중학교는 시내로 진학을 못하고 대야면에 있는 옥구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는 중학교도 시험을 치렀고 입학이 가능한 커트라인이 있을 때였으니까요."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을 뵈었는데 '너는 공부를 잘했는데 왜 그 학교를 갔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고 하시면서 47년 전 있었던 기억들을 더듬으시더군요. 사무실에 오셔서 가슴 아팠던 얘기들을 나누고 가셨어요."

 

-사촌이 8남매나 되어 학창시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은데요?

"소년시절은 말도 못하게 고달팠어요. 그러나 그렇게 불행한 시절이 심약했던 저를 의지의 사나이로 만든 것 같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가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고 할까요. 그래도 큰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 도움이 없었으면 어림없는 일이지요." 

 

-혹시 수험료 때문에 급우들 앞에서 창피당한 경험이 있는지요? 

"회비를 몇 달 밀릴 때가 있기는 했어도 창피당한 일은 없었어요. 큰어머니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 학비를 대주어 중학교는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지요.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옥구농고에 입학시켜주셔서 왕복 16km 정도 되는 거리를 1년은 외가에서 걸어 다니고 2년은 큰집에서 다니면서 졸업했습니다. 시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낙서나 다름없지요."

 

-사춘기 과정도 있고, 친구들 유혹도 있고, 공부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을 텐데요?

"저는 어릴 때부터 길을 가도 책을 들고 다니고, 소몰이를 갈 때도 책을 들고 나가는 게 습관이 됐어요. 그래서인지 대학도 쉰 살이 되던 1999년에 젊은이들 틈에 끼어 주경야독(晝耕夜讀) 하면서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장을 따냈습니다. 그때 일을 얘기하려니까 참 아득하네요. 지금도 야간에 군산대학에 나가 공부합니다."

 

남들은 술 마시는 밤중에 공부하러 가시는 걸 보니까 독실한 신자인 것 같다고 하니까, 껄껄 웃으면서 "저는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며 표정이 바뀌더니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담배도 배우지 못했어요."라며 겸연쩍어 했다.

 

-이력을 보니까 면서기부터 출발하셨던데 공무원이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쇄소에 들어가 2년 정도 근무하면서 밤에는 공부를 했지요. 그래서 1969년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고, 그 다음해인 1970년 5월1일자로 회현면 서기로 첫 발령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습니다.

 

첫 발령 때부터 지시받는 업무노트를 40년이 지난 지금도 잘 보관해오고 있는데, 거기에는 좋은 시(詩)도 적혀있고 좋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좋은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올 연말이 정년인데 퇴직 후 할 일을 계획하고 있느냐고 묻자, 손자·손녀가 바르게 가도록 보살펴주면서 문인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과 군산이 낳은 자랑스러운 고은 시인 후원회를 조직하는 일,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아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다며 젊은이 못지않은 의욕을 내비쳤다.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숲 해설자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 이 국장은 군산시 개정면 출신으로 '월간문학 21'에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군산문인협회, 전국문학공무원 동호회원, 전북기독교 문인협회원, 석조문학 동인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종예, #큰어머니, #시집, #출판기념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