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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사교육 신화를 뒤집다."

몇 년 전 아파트 분양 당시 전국의 부동산 투기꾼이 몰려들어 9시 뉴스에 등장했던 바로 그 아파트입니다. 마산에서 분양가격이 가장 비싼 아파트이기도 하고, 분양 계약이 시작되기 전날 이른바 떳다방 부동산업자들이 알바를 동원하면서까지 밤새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던 바로 그 아파트입니다.

오는 12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이 아파트에 몇 달 전부터 "사교육 신화"를 내세우는 광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파트가 사교육 신화를 뒤집다니, 그럼 이 아파트에서는 대안교육이라도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파트 단지 안에 대안학교라도 들어설까요? 도대체 어떻게 아파트가 사교육 신화를 뒤집을 수 있을까요?

'사교육 신화를 뒤집는다'는 아파트 분양광고
 '사교육 신화를 뒤집는다'는 아파트 분양광고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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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있는 저 광고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저 아파트에 입주만 하면 사교육이 필요없어진다는 뜻일까요? 만약,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면 저는 빚을 내서라도 저 아파트에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매달 수십만 원씩 지출되는 사교육이 필요없어진다면, 아무리 분양가격이 비싼 아파트라도 손해 볼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사교육이 필요 없어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일부 대안학교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런 광고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흔한 일인지 모르지만, 제가 사는 마산에는 이런 광고가 처음 등장한 터라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궁금한 것을 오래 참지 못하는 제가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참 어이없는 대답을 해주더군요.

이 비싼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하면 단지 내에 있는 유명학원에 2자녀가 2년 동안 공짜로 다닐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분양 아파트를 판매하기 위한 전략치고는 참 독특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지내 입주 예정인 영어학원 대표 초청 세미나를 알리는 현수막
 단지내 입주 예정인 영어학원 대표 초청 세미나를 알리는 현수막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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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에 내걸린 현수막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에 내걸린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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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에 "교육특별시 마산 메트로시티"라는 전면 광고가 게재되었습니다. 사실, 신축 중인 아파트에 내 걸린 광고 현수막이 독특하여 언젠가 꼭 기사를 작성하려고 사진만 먼저 찍어 두었었는데, 오늘 아침 신문에 다시 광고가 나왔더군요.

"명품 교육 특화 아파트"라는 광고도 눈에 확 들어옵니다. 광고를 자세히 읽어보니 지난번 제가 확인해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뭔가 달라진 혜택이 있는지 궁금하여 분양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저희 아파트를 지금 분양 받아 입주하시면, 2년간 2자녀가 단지 내에 있는 학원에 무상으로 수강 할 수 있습니다. 1자녀에 한하여 한 달 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무상으로 보내드립니다. 대출 많이 받으셔서 부담하는 이자와 비교해봐도 결코 손해가 없을 겁니다."

아파트 입주자 직계 자녀들에게 아파트 단지 학원가에 입주하는 유명학원 수강권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파트 소유자 뿐만 아니라 집 주인으로부터 승계한 경우에는 실제 거주하는 전세입주자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준다고 광고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전세로 입주하는 경우에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오늘(23일) 아침 신문 광고
 오늘(23일) 아침 신문 광고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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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인이 교육혜택을 포기하는 대신에 현금으로 지원금을 받으신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집주인이 교육혜택을 받아서 임차인에게 승계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다만, 임차인의 경우에는 수강료 20만 원만 내면 단지내 학원에서 매월 정해진 과목을 수강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결국 역시나였습니다. 아파트가 어찌 사교육 신화를 뒤집을 수 있겠습니까? 저 광고는 아파트 분양 받으면 입주 후 2년 동안 사교육은 분양회사가 책임진다(?) 하는 광고입니다.

그냥 아파트 분양가격을 낮춰주지 않고, 대신에 아파트를 '사교육 단지'로 만드는 무책임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요. 한 번 끌어올린 분양가격을 절대로 낮추지 않으려고 하는 건설회사와 사교육을 부추기는 학원기업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져서 만들어진 새로운 사교육(?) 분양 마케팅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교육과 고분양가의 비싼 아파트가 만나 새로운 아파트 사교육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지금 대형 평수에만 미분양이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저 광고 때문에 아파트 분양이 얼마나 늘어날지 정말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파트, #미분양, #부동산, #사교육,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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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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