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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에서 제작한 신종플루확산 방지 포스터. 증상이 가벼울 경우 항바이러스제 투약없이도 회복할 수 있다.
▲ 신종플루 함께 지킵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제작한 신종플루확산 방지 포스터. 증상이 가벼울 경우 항바이러스제 투약없이도 회복할 수 있다.
ⓒ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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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가족부는 신종인플루엔자 전염병 위기단계를 11월 3일부터 현행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조정하기로 하고, 행정안전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각 지방자치단체에는 '지역별대책본부'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그와 함께 병원의 추가병상을 확보하는 것, 학교예방접종을 조기완료하며 전체 국민의 35%에 해당하는 1,716만명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 전국민의 11%에게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을 비축해놓은 항바이러스제를 20%까지 투약할 수 있도록 비축량을 늘리고 의료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투약하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행정인력을 동원한 위생방역활동은 하지 않은 채, 의료기관에게 모든 대책과 예산지원을 주는 방식의 대책은 다소 실망스럽다. 현재 정부의 대책 가운데 예방접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발병 후 대책이기 때문에 사망율은 낮지만 전염율이 높은 신종플루에 얼마나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신종플루에 대한 백신의 효과와 안정성 자체도 아직 100% 규명되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계절독감 백신의 경우 예방효과는 50-8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조선왕조, 전염병 관리는 국가가!

1451년 음력 4월 1일 예조에서 당시 왕인 문종에게 "경기도의 원평, 교하 등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전염되는 악질(惡疾)이 유행하여 염려스럽습니다. 약제를 많이 준비하여 좋은 의사를 파견하여 증세에 따라 치료하도록 하십시오"라는 보고를 한다.

전염성 질환의 구체적인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악질(惡疾, 나쁜 질환)'이라고 표현한 것은 기존에 흔히 알려진 전염병과는 다른 양상의 새로운 질환이었음을 의미한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삼국시대부터 전염병 관리의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국과 동시에 향약(鄕藥, 우리나라 생산 약재)을 사용하여 국가의료시스템을 구축해왔던 조선왕조에서 전염병이 돌자마자 신속히 약제와 의사를 파견하였다는 것은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당시 일반적인 전염병처럼 의사와 약제의 파견만으로 전염병이 잘 진정되었던 것일까?

조선왕조실록에 윗 기록이 있고 100일도 더 지난 음력 7월 20일에는 예조보다 상위 기구인 의정부에서 문종에게 새로운 보고를 하고 있다.

"경기 원평, 교하 뿐 아니라 개성같은 곳에도 악질이 치성하여 약제와 침구만으로 효험을 보기 어렵습니다. 첫째 개성부의 활민원(活民院)을 수리하여 병자를 격리해야 합니다. 둘째 목욕 찜질의 방법을 아울러서 치료해야 합니다. 셋째 병자들을 위해 뗄 것과 약초 및 양식은 개성부에서 제공하도록 합니다. 넷째 관련 관리를 임명하여 병자에게 두루 일러서 활민원(活民院)에 가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만약 이를 모르는 자가 있으면 수령(守令)을 벌해야 합니다."

조선왕조의 전염병 대처
1) 환자의 격리
2) 목욕 등 개인위생
3) 약재 및 음식 제공
4) 관리들의 홍보 및 교육
5) 관리들의 감독 및 관리
6) 한의학적 처치와 치료
8) 민심의 수습
의료만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전염병 환자를 격리하고, 목욕시키며, 양식을 제공하는 등 모든 방역사업을 국가에서 했던 것이다.

신종플루 관리가 한 단계 격상되어 행안부에 확대기구를 설치하기로 한 것처럼 전염병이 가라앉지 않자 판서급인 예조에서 직접 건의하던 것을 정승급인 의정부에서 논의하여 건의하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전염병으로 생겨난 민심의 동요를 수습하다

다양한 위생방역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력 8월 9일에는 경기도를 넘어 황해도에까지 악질이 퍼져나갔다는 기록과 함께 의정부는 의사 파견을 건의하였다.

특히 음력 9월 5일에 이르러서는 전염병이 계속 확대되어 백성들의 민심이 매우 황폐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날은 양력으로 9월 29일에 해당되니 일교차가 커지고 쌀쌀해지기 시작하면서 전염병이 심해졌던 것이다.

이 날 문종은 여러 유력한 신하들과 전염병 대처를 은밀히 의논하였다. 역신(疫神)과 약사여래에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부터 값비싼 향이나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약재를 태우는 것, 심지어는 경기도 일대의 전염병이 한양으로 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천도하는 문제까지도 논의하였다.

결국 왕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각종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백성들에게 전염병은 역신이 노해서 생기는 병이었을 뿐 아니라 왕이 부덕한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재앙이라고도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였을 뿐 아니라 여름과 가을 농번기에 전염병으로 농사를 짓지 못해 굶주리게 된 백성들에게 고깃국이라도 먹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전염병이 가라앉자 공과에 따라 상과 벌을 주다

조선왕조는 전염병에 매우 적극적인 대처를 하였다. 한의학을 활용하여 치료를 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환자의 격리수용, 위생관리, 영양보충 등의 방역대책을 세웠으며 행정 관료를 동원하여 대국민 홍보 및 관리감독체계를 확보하였다. 사진은 관료들을 감시하여 공과에 따라 상과 벌을 내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조선왕조실록의 전염병 대처 기록 조선왕조는 전염병에 매우 적극적인 대처를 하였다. 한의학을 활용하여 치료를 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환자의 격리수용, 위생관리, 영양보충 등의 방역대책을 세웠으며 행정 관료를 동원하여 대국민 홍보 및 관리감독체계를 확보하였다. 사진은 관료들을 감시하여 공과에 따라 상과 벌을 내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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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년 음력 11월 5일 겨울이 되어 환자에게 흙집을 지어 격리 치료하였다. 이 전염병은 문종이 죽고 나이 어린 단종이 즉위한 이듬해에까지 계속되었다. 1452년 음력 8월 24일 의정부에서 새로 즉위한 단종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3개월마다 악질을 치료하여 사람을 많이 살린 의사는 개성부 유수(留守)와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가 추천하여 예조에서 포상하고, 태만한 의사들에게는 죄를 논하십시오."

상과 벌을 논할 단계가 되었다는 것은 전염병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1451년 봄부터 시작된 전염병이 1452년 가을이 되어서 진정된 것을 알 수 있고, 국가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의 전염병 대처는 한의사가 한약과 침을 활용해 적극 대처하였다는 점, 전염병 치료지침의 제작, 개인위생관리 및 격리수용, 충분한 영양분의 섭취, 따뜻한 요양환경 제공, 방역활동을 실시하였다는 점, 마지막으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계몽활동 실시, 미리 준비된 체계적인 관리체계 구축, 참여한 의료진에 대한 관리감독 및 공과에 따른 상벌제도 등 행정력을 십분 발휘하였다는 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전염병 대처에 못지 않은 매우 선진화된 면모를 보여 주었다.

신종플루, 의사에게만 맡기지 말고 국가에서 직접 행정력 집행해야

이를 참조로 현 신종플루 대책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

첫째, 정부는 행정력을 동원하여 방역활동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어렸을 때 DDT라는 강력한 제초제를 머리에 뿌리고, 손톱검사를 하고, 머리에 이가 있는지 없는지 검사했던 기억이 나는가? 또 파리, 모기 및 쥐 잡기 운동, 골목 청소하기, 골목 웅덩이 메우기 등이 기억 나는가? 모두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강력한 위생방역활동을 전 국가적으로 집행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여러 세균질환에 의한 전염병이 줄어든 것은 현대의학의 힘보다는 이러한 위생방역활동과 국민들의 영양상태 개선 덕분이다.

둘째, 국민들을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초부터 신종플루발병에 대한 통계를, 8월 15일부터는 사망자 집계를 매일 매일 발표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앞다퉈 신종플루 사망자에 대한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이 두 달 반 동안 신종플루 사망자는 총 42명이며 이 가운데 고위험군이 아닌 사람은 7명에 불과하였다. 8월 2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69만 382명 분의 항바이러스제가 투여되었다. 그러면 항바이러스제가 투약된 70만 명 중 사망한 4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효과를 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증상이 경미하였고 집에서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가 가능한 환자였다면 투약하지 않았어도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은 6000여 명이다. 국토해양부에서는 201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를 3000명 선인 반으로 줄이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고위험군이 아닌 7명의 신종플루환자가 사망한 사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1000명이 넘는다.

매일 같이 거의 모든 국민이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는데도 교통사고 사망율보다 어마어마하게 낮은 신종플루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공포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기록과 교훈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 관료들의 공과를 잘 점검하여, 향후 발생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 대처에 만반을 기할 수 있는 국가방역시스템을 확보해나가길 기대한다.

신종플루 대책, 이렇게 하면 어떤가?

현 정부의 대책은 모든 행정력과 물적 자원에 대한 지원을 병원과 발병한 환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점병원을 선정하고,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를 구입하며, 발병한 환자를 보건소에서 관리하는 것 등이다. 치명율이 0.03% 이하여서 평상시의 독감과 별차이 없는 전염병을 위해 전국민의 20%에게 투약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를 구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항바이러스제를 적극 투약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충분한 휴식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던 것도 질병관리본부가 아니던가!

지금이라도 정부는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일정 숫자 이상의 직원을 갖고 있는 기관, 회사, 학교 등은 모두 신종플루 방역책임자를 임명하도록 하고, 손발을 씻고 나서야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자. 또 지하철, 버스 등은 음식점 화장실처럼 시간마다 소독액으로 청소를 해야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기침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스크를 나눠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장에서는 야근을 자제하고 학교에서는 시험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시간마다 환기를 하며, 업무와 학업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하고 간단한 체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예방방법이다.

특히 위생방역활동 업무에 종사할 사람들을 계약직으로 많이 뽑고 방역활동에 종사하게 하여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공포분위기에서는 가뜩이나 나쁜 경제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품을 구입하는 것에 국가재정을 쓰는 것은 더더욱 손해이다.

마지막으로 질병의 발생은 의학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내년에 실시될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교차고용과 협진에 대비하여 신종플루 및 전염성 질환에 대한 한양방의 협진시스템을 연구하여야 한다.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 시급을 다투는 이 때에라도 양단체는 서로의 이해를 떠나 합심하여 연구에 매진해주길 바라고 정부는 행정지도력을 발휘해주어야 한다.


태그:#한국의학사, #신종플루, #전염병, #위생방역,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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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주)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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