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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로 들어가는 석문. 최치원이 썼다는 큰 글씨가 있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석문. 최치원이 썼다는 큰 글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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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로 들어가는 석문

화개동천(花開洞天). 지리산 화개동 일원은 예로부터 선경의 별천지(무릉도원)라 했다는데…. 천년고찰이 있는 쌍계사로 향한다.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가는 십리 길은 가을이 깊어간다. 의외로 한산하다. 계곡 건너로 온통 차밭이다. 그래, 이곳이 녹차 시배지지. 보성차밭같이 아름다운 선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올망졸망한 녹차밭은 살가운 느낌이 든다.

길 양편으로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에 멈춰 선다. 다리 입구에는 쌍계사 400m라고 알려준다. 다리를 건너면 음식점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다. 이른 시간인지 아직 한가하다. 서둘러 떨어진 낙엽이 시멘트 포장 위를 굴러다닌다.

음식점 광장을 가로지르면 커다란 바위 두 개 사이로 길이 있다. 바위에는 '쌍계(雙磎)'와 '석문(石門)'이라고 큰 글씨가 쓰여 있다. 신라 최고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지팡이 끝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데…. 기교 없이 쓴 것 같아 보이면서도 바위 면을 꽉 채운 글씨는 당당함이 배어나온다.

천년 세월을 지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비문

매표소를 지나니 키가 큰 굴참나무들이 쭉쭉 뻗고서 키자랑을 한다. 절로 가는 길이 싱그럽다. 계곡물은 말랐다. 한여름 꽐꽐거리며 넘쳐흐르는 물은 다 바다로 갔을까?

굴참나무 길이 끝나는 곳에 일주문이 섰다. 일주문에는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라고 현판을 달고 있다. 지리산이 아니고? 지리산 자락을 내려온 삼신봉을 주봉을 삼아서 그런가? 문을 연달아 지난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숲이 깊어 햇살을 가린 문들을 지나니 자연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최근에 세워진 커다란 9층탑을 만나고 그 뒤로 팔영루가 막아선다. 팔영루는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국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범패(梵唄, 불교음악)를 만들어 교육한 곳이란다.

국보 47호 진감선사 대공탑비. 최치원이 글을 짓고 썼다고 한다.
 국보 47호 진감선사 대공탑비. 최치원이 글을 짓고 썼다고 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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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루를 옆 계단으로 돌아서 들어서면 대웅전이 높은 기단 위에 서 있다. 아래 마당에는 고개를 쏙 빼고 있는 거북이가 탑비를 이고 있는 국보 47호 진감선사 대공탑비(眞鑑國師 大空塔碑)가 보인다. 이 탑비는 최치원이 글을 짓고 썼다는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신라 말 명승 진감선사 혜소의 덕을 기려 887년에 세운 탑비다. 검은 바탕에 작은 글씨를 새긴 비석은 작지만 힘이 넘친다. 이수의 전액(篆額)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아름다운 꽃담을 만나다

계단을 올라서면 오른쪽에 엉거주춤한 오층석탑. 왼쪽에는 제짝을 잃어버린 석등이 있다. 대웅전 문머리에는 '긴 세월 녹여 형설의 공 이루고 집집마다 幸행福복 일구어요'라는 글을 써 붙여 놓았다. 입시철이 다가오나 보다. 모두들 마을 졸이게 하는 시험. 시험이 없어지는 날이 올까?

대웅전 문머리에 걸린 입시 성공 기원문
 대웅전 문머리에 걸린 입시 성공 기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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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에 누워있는 당간. 무척 길다. 중간에 쇠로 이어 놓았다.
 대웅전 뒤에 누워있는 당간. 무척 길다. 중간에 쇠로 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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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옆으로 마애불이 지긋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두툼한 눈꺼풀과 양팔을 끼고 있는 게 마치 명상하는 모습이다. 조금 생뚱맞다. 대웅전 바로 옆에서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나무당간이 누워 있다. 당간을 어떻게 세웠는지 궁금했는데, 당간지주에 세웠던 당간이 이렇게 생겼구나. 석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대웅전 뒤로 올라가니 커다란 부도가 조성중이다.

대웅전 뒤뜰에서 바라본 절집 풍경
 대웅전 뒤뜰에서 바라본 절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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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꽃담. 너무나 아름다운 담이다.
 나한전 꽃담. 너무나 아름다운 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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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돌아 내려오니 아름다운 꽃담을 만난다. 하단부는 돌로 쌓고 중단부는 기와와편을 엇갈려 쌓았다. 상단부는 기와 와편으로 원을 만들어 그 안에 十, 木, 土자 등 글자 모양을 만들었다. 그 벽을 커다란 마삭줄이 구렁이 담장 넘어가듯 붙어 있다. 담장 하나에 들인 공력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

파초의 열매는 바나나?

범종루 앞으로 난 계단을 올라선다. 담장 너머로 청학루(靑鶴樓) 현판이 보인다. 문을 들어서니 청학루 커다란 기둥에 놀란다. 저렇게 큰 기둥나무를 어디에서 구했을까? 고려 말에 지었다는데 아쉽게도 현 건물은 1930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지붕을 청기와로 얹었다.

금당 선원으로 가는 길에 청학루. 기둥이 엄청 크다.
 금당 선원으로 가는 길에 청학루. 기둥이 엄청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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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 꽃과 열매. 바나나를 닮았다.
 파초 꽃과 열매. 바나나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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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루 옆으로 다시 계단이 이어진다. 기단 위로 석가모니 일대기를 그림으로 모셔놓은 팔상전이 있다. 팔상전 기단 앞에는 파초(芭蕉)가 큰 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 사이로 저울추 같은 게 보인다. 어! 파초꽃이네. 꽃 위로는 작은 바나나 같은 열매도 달고 있다. 파초가 바나난가? 바나나가 파초과 식물이란다. 그럼 바나나의 원조?

부처님 대신 탑을 모신 법당

올라가는 계단 꼭대기에는 금당(金堂)이 있다. 참 신기하다. 금당 안에는 부처님 대신 탑이 모셔져 있다. 도무지 궁금하다. 금당을 지키고 있는 보살님에게 물었다. "왜 탑을 모셔요?" "방금 전에 설명했는데….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육조정상탑(六祖頂上塔)을 모신 금당.
 육조정상탑(六祖頂上塔)을 모신 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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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말하면 이 탑은 육조정상탑이며, 중국 불교 선종의 6대조인 혜능선사의 머리(頂相)을 모셨다고 한다.

신라 삼법(三法) 스님은 평소 당나라 육조 혜능(慧能) 대사의 높은 덕망을 흠모하던 중 714년(성덕왕 13) 육조 대사가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견의 인연이 없음을 한탄 하였다. 그러다 육조가 직접 지은 법보단경(法寶壇經)에서 "내가 간 후 5~6년에 나의 머리를 취할 사람이 있으리라"하는 내용을 읽고 직접 당에 가서 그 정골을 가져오겠다고 마음먹었다.

721년(성덕왕 20)에 당에 건너가 경주 백률사 대비(大悲) 스님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육조 혜능 대사의 정상(頂相)을 얻을 수 있었다. 삼범 스님은 대비 스님과 함께 귀국하였는데, 꿈에 한 노사(老師)가 현몽하여, "강주(康州) 지리산 아래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는 말을 받았다.

삼법, 대비 두 스님은 현몽대로 강주의 지리산 아래에 왔는데 때가 한 겨울인 12월이라 눈 때문에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난감해 하는 두 스님 앞에 한 쌍의 호랑이가 나타나서 길을 인도하여 따라가 보니 큰 석문 안으로 터가 있었고, 그 곳은 봄날같이 따스하였으며 과연 칡꽃이 피어 있었다. 이곳에 옥천사(玉泉寺)라는 절을 짓고 정상 사리를 돌로 만든 석감에 넣어 이곳 땅 밑에 봉안했다.

옥천사가 지금의 쌍계사이며, 금당 안에 있는 칠층석탑은 100여년 전에 주변에 있던 목압사의 석탑을 용당 스님이 옮겨와 세운 것이며, 그로부터 육조정상석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금당에서 바라본 풍경. 산빛이 가을로 물들어 간다.
 금당에서 바라본 풍경. 산빛이 가을로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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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이 있는 선원은 1년에 6개월만 개방한다. 동안거(冬安居-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15일까지)와 하안거(夏安居-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기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금당 옆으로 동방장과 서방장이 있다. 조금 있으면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 수행을 할 곳이라고 한다.

금당에서 소원을 빌고 돌아선다. 맞은편 산빛이 가을로 물들어 간다.

덧붙이는 글 | 10월 25일 쌍계사 풍경입니다.



태그:#쌍계사, #금당, #최치원, #석문, #꽃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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