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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섯, 중학교 3학년이 시작되던 때에 자퇴하고 공장에 취직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동생 학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부모님 한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저축해서 자수성가 하겠다는 결심은 고된 공장 노동 속에서 갈수록 내 처지를 비관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중졸도 되지 않는 학력으로는 공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열아홉, 더 늦기 전에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검정고시 학원을 찾았다. 검정고시전문인 K학원 새벽반에 등록을 하고 의정부에서 첫 전철을 타고 서울 신설동 학원에서 수업하고 다시 의정부행 전철을 타고 공장으로 출근했다.

 

새벽 4시, 시계 알람 소리가 울리면 바로 일어나야만 한다. 한겨울에도 일부러 찬물에 세수를 하면서 잠을 쫒았다. 부엌에는 저녁에 어머니가 차려둔 작은 밥상을 방으로 가져와서 별이 총총한 새벽녘에 아침을 먹는다. 밥통을 열면 밥 한 공기와 계란찜이 있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20여 분을 걸어야 했고, 늦었을 때는 가방을 들고 뛰었다. 새벽에 뛰다 보면 도둑으로 오인해서 경찰이 쫓아와 검문을 하기도 했고 어느 겨울날에는 길에 쓰러진 취객을 부축해서 파출소로 데려가기도 했다.

 

새벽반에는 다양한 인생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일터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바로 오는 사람도 있었다. 구두닦이, 장사하는 사람 등 대부분이 가난한 환경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가 각자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동트기 전에 하루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 의자가 늘어가는 것이 새벽반의 특징이다. 제일 힘든 것이 잠을 이겨내야 일인데 서너 번 결석을 하면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검정고시를 시작하게 되면서 몸은 수면부족으로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울 때가 많았지만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는 것에 아주 큰 재미를 느꼈다. 1년여 만에 고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한 기쁨도 컸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벽을 열었던 나 자신의 무한도전 정신에 더 감격을 했었다.

 

이후 대입검정고시도 무난히 합격을 했지만 처음 목표로 했던 대학 진학은 뒤로 미루고, 공무원 시험에 바로 도전하기로 하면서 공장은 그만두고 공부에만 집중했다. 도시락 두 개를 싸들고 남산도서관에서 저녁까지 시험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목표로 했던 이동통신공사 시험이 내게는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경찰시험(통신직)에 도전을 했다. 필기를 시작으로 4차까지 합격하지만 최종 면접과 신원조회를 거치면서 불길한 예감대로 떨어지고 말았지만, 나중에 정보통신분야에서 일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검정고시를 통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설렘과 벅찬 감동의 순간들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삶에 지칠 때마다 새벽을 달렸던 청년 때의 나를 되돌아보면서 중년 이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응모글.


태그:#검정고시, #시험, #공장, #첫차,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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