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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누리집 말씀씀이 살피기
 지난 2009년 9월 2일부터 '한글사랑 지원단'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어떠한 말글을 쓰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사랑 지원단'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후반 나이이면서 국어학ㆍ국문학 쪽에서 공부를 하거나 했던 분들, 국어교사(외국사람한테 한국말을 가르치는 교사까지)로 일했거나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신 분들, 번역일을 하신 분들을 두루 아우르며 쉰두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모임으로, 한글학회가 이끌고 문화체육관광부(국민체육진흥공단, 국립국어원)가 돕고 있습니다.

'한글사랑 지원단'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정부 공공기관 누리집 숫자는 무척 많아서, 지자체는 252군데이고 정부기관은 수천 군데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공공기관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면서 "공공기관 인터넷 사용 실태"를 살필 수는 없고, 먼저 571군데를 표본으로 뽑아서(지자체 252군데, 부처와 여러 기관 319군데) 이곳에서 어떻게 말글을 쓰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누리집이 우리 말글을 어떻게 다루면서 나라 안팎 사람들한테 정보와 소식을 나누고 민원을 맡고 있는가를 따지는 보고서는 2010년 1월에 내놓습니다.

'한글사랑 지원단'은 2010년 1월에 보고서를 내놓기 앞서, 이번 한글날을 맞이해서 중간보고서로 "전국 16개 시도(광역시와 도청)"와 "17개 부처(2처 15부)"에서 기관 이름과 상징 들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571군데 기관에서 쓰는 '정책/사업 이름'과 '기관 이름'이 어떠한가를 먼저 밝히고자 합니다.

 1. 지방자치단체 누리집 이름과 상징
 2. 중앙부처 누리집 이름과 상징
 3. 지자체와 중앙부처 정책/사업 이름
 4. 앞으로 이렇게 달라졌으면

법제처에서 하는 '알법'은 좋은 이름이라 할 만하지만, '기프티콘'을 선물로 준다는 말에서 '허걱!' 하고 말았습니다.
 법제처에서 하는 '알법'은 좋은 이름이라 할 만하지만, '기프티콘'을 선물로 준다는 말에서 '허걱!' 하고 말았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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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사랑 지원단' 실무자들은 공공기관 누리집에 들어가서 차림판과 상징말과 정책이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가다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맡고 있는 실무자들은 누구나, 공공기관에서 우리 말과 글을 너무 업신여기면서 잘못 쓰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법제처에서는 "법제처와 함께하는 '한글날 기념'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하면서, '알법 만들기' 행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 알법 만들기에 함께하는 분들한테 선물을 준다면서 '기프티콘'을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모로 뜻도 좋고 말도 좋았는데, 어이하여 마지막에 '기프티콘'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을까요? 법제처 공무원들은 당신 스스로 '기프티콘'을 주겠다고 붙인 말마디가 얄궂은 줄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전라남도 장성군은 "재래시장 러브 투어"를 하고 "스토리텔링 콘테스트 개최"를 한다고 떳떳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래된 저잣거리를 살리고 싶은 뜻은 넉넉히 알겠지만, 오래된 저잣거리를 '러브 투어' 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울리는지 궁금합니다. '스토리텔링 콘테스트'를 함께할 장성군민이 얼마나 될 터이며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분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노동부에서도 말장난 사업을 내놓고 있습니다.
 노동부에서도 말장난 사업을 내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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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군은 2009년 오늘날에도 '당진군이 나아갈 길(당진군 방침)'을 "地域經濟 활성화, 先進都市 기반구축, 地域均衡 발전, 自治力量 강과 企業家的 경영행정"이라고 밝힙니다. "지역경제 활성화, 선진도시 기반구축 ……"으로 적어도 될 텐데 왜 이렇게 적었을까요. 더욱이 "자치역량 강화"가 아닌 '강과'라고 잘못 적은 대목을 그대로 두고 있기까지 합니다.

다른 지자체를 보면 경상북도 구미에서는 "Clean Gumi"를 펼친다 하고, "한국형 '마이스터고' 육성 지원" 계획을 내놓으며, "We Together운동"과 "Happy-Start 운동"과 "선진자치단체 Blind Shopping 교육" 들을 하는 가운데, "저소득후원「+(플러스One」사업"을 한다고 밝힙니다. 영주시에서도 "클린 영주 만들기"를 하는데, 그나마 영주시는 한글로 '클린 영주'라고 적고 있습니다. 영양군은 "팸투어"와 "클린하우스설치 운영"을 한다고 밝히고, 고령군은 "고령관광 스탬프 트레일"을 꾸린다고 밝힙니다. 군위군에서는 "삼국유사 컬처텔러 양성과정"을 마련하고 있으며, 문경시는 "짚라인(Zipline) 코스 개장"을 밝힙니다.

'맘 프로젝트'도 아닌 알파벳으로 적어 놓은 '국립오페라단' 사업입니다. 사업이라기보다 국립오페라단에서 하는 공연 이름입니다. 이런 이름을 보며, 무슨 공연인지 알 수 있을까요?
 '맘 프로젝트'도 아닌 알파벳으로 적어 놓은 '국립오페라단' 사업입니다. 사업이라기보다 국립오페라단에서 하는 공연 이름입니다. 이런 이름을 보며, 무슨 공연인지 알 수 있을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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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틀림없는 '세계화 시대'라 할 수 있기에, 정책/사업 이름으로 영어를 쓰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정책/사업 이름을 쓴다고 할 때에, 정작 주민들은 얼마나 알아볼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영주시에서는 "경관보전작물의 단지화로 Amenity 강화"를 외치기도 하는데, '어메니티'를 알아듣는 지식인조차 많지 않음을 생각할 때에, 이런 정책/사업을 어떻게 꾸리게 되었고, 이러한 정책/사업 이름을 톺아보면서 다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관세청은 "World Best 관세청"을 꿈꾼다며 "CLEAR 행동규범"을 내놓으며, "창의적으로 발상하자 Creativity, 고객의 소리를 경청하자 Listen, 열정적으로 임하자 Energy, 현장에서 실천하자 Action, 활발히 소통하고 화합하자 Relationship"고 적어 놓습니다. 관세청 공무원만 보도록 이와 같은 다짐말을 적을 수 있겠지만, 관세청 누리집에 밝혀 놓는 이와 같은 다짐말은 온나라 사람한테 두루 보도록 적어 놓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관세행정 발전 전략(WBC2012+)" 같은 말마디를 들으면 어질어질하다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통계청은 'e-나라지표'를 모으고, 'KOSIS'를 내며 'SGIS'와 'MDSS'를 내놓는다고 밝힙니다. 통계청 공무원으로서는 이러한 이름으로 통계를 내는 일이 한결 멋있거나 나아 보인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통계청으로 찾아와서 여러 가지 통계를 찾아볼 사람한테도 이러한 이름이 알맞거나 좋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통계청에서 쓰는 이름들. 한글은 밑에 작게 적어 놓지만, 아예 영어로만 적어 놓기까지 합니다.
 통계청에서 쓰는 이름들. 한글은 밑에 작게 적어 놓지만, 아예 영어로만 적어 놓기까지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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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에서 벌이는 정책/사업을 보면, '2009 Korea Sparking Festival'이며 '秋가을 이벤트'며 'LogIn Tourism 2009''시티투어 go! go!'이며, '대한민국 트래블링 캠페인'이며 '굿스테이'이며 하고 있습니다.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으로 찾아오는 모습을 살피면서 이 같은 정책/사업을 마련한다고도 할 텐데, 이러한 정책/사업은 나라밖 손님을 모시는 일이기만 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SPOEX 2009'를 벌이고, 한국과학기술원은 '5-Year Development Plan'을 내놓습니다. 주택관리공단에서 벌이는 '관리홈닥터'나 '엄마손밥상'은 그나마 어느 만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책/사업이라 할는지 모르겠는데, '관리홈닥터'란 "찾아가는 도움이"라 할 수 있는 정책/사업이요, '엄마손밥상'은 "우리 집 밥상"이라 할 수 있는 정책/사업입니다.

이름만 보고서는 알기 어려워 어떤 일을 벌이는지를 샅샅이 들여다보면서 헤아릴 수 있었는데, 좀더 헤아려 본다면, '엄마손밥상'과 같은 정책/사업 이름은 아이들한테 도시락을 마련해 주는 일은 오로지 엄마(여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우리 현실을 본다면 아빠가 도시락을 싸 주거나 밥상을 차려 주는 일이 없을 테니 이러한 이름이 어울린다 하겠으나, 우리 앞날을 돌아본다면 이런 이름을 털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살필 때, 한국농어촌공사 사업인 "도ㆍ농교류(웰촌)"도 썩 알맞지 않다고 느낍니다. "도ㆍ농교류"라고만 해도 넉넉한데 굳이 '웰촌'이라 붙이지 않아도 되며, 더욱 생각을 넓힌다면 "노동 어깨동무"나 "도농 손잡기"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 (1) 해피하우스센터 → 행복한집한마당 / 즐거운집만들기
 ├ (2) 보금자리주택 new+ → 더 좋은 우리 집 / 더 나은 보금자리
 ├ (3) 뉴하우징 운동 → 새로 꾸민 집 / 집꾸미기
 └ (4) SEA GRANT, 2009 Korea Sea Grant Week → 바다사랑, 해양발전주간

우리는 왜 영어를 이렇게까지 내세우면서 정책 이름을 지어야 할까요?
 우리는 왜 영어를 이렇게까지 내세우면서 정책 이름을 지어야 할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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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에서 벌이는 사업 네 가지도 다시금 생각해야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행복'이나 '즐거운'이라는 낱말을 안 쓰고 '해피'라고 해야 할 까닭이 무엇이며, '새집'이 아닌 '뉴하우징'이라는 낱말을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 企UP 은행에 가면 취 UP이 보인다 (기업은행)
 ├ Korea Big Tree (녹색사업단)
 ├ 對국민 ONE-STOP 서비스 (국가정보원)
 └ 내가 그린 Green 희망Job氣 (노동부)

서울시에서는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自"라는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企UP 은행"이나 "희망Job氣"처럼 말장난 이름입니다.

이밖에 서울시는 "한강르네상스"와 "문화관광벨트"와 "서울형 데이케어센터"와 "서울 희망드림뱅크"와 "장기전세주택 시프트"와 "서울 일자리 플러스센터" 같은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덧붙여, 정책/사업은 아니지만,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노숙자/부랑인'이라는 낱말이 썩 듣기 좋지 않다고 해서 '홈리스(homeless)'라는 낱말을 써서 법률 낱말로 갈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일을 놓고 적잖은 사람과 모임에서 크게 성을 내면서 어느 만큼 수그러들었지만, 이 일은 제대로 끝마무리가 되지 않았고, 앞으로 이와 비슷하거나 이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되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동사무소부터 '동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공공기관에서 '부정부패 신고하는 곳'을 '클린센터'라는 이름을 붙여서 내놓고 있으나 딱히 나무라는 목소리 없이 이렇게 굳어지고 말았거든요.

말장난 정책인 기업은행.
 말장난 정책인 기업은행.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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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사랑 지원단에서 571군데 누리집을 살펴보았을 때 '부정부패 신고마당'처럼 이름을 붙인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한 곳조차 없었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홈리스'라는 낱말을 어찌어찌 가로막았다 하지만 훨씬 많은 영어가 쓰이고 있으며, 우리 말이나 들온말이 될 수 없는 바깥말이 함부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 떨꺼둥이
 ├ 한뎃잠이
 │
 ├ 노숙인
 └ 홈리스

보건복지가족부 공무원이 좀더 살펴보았다면, 우리네 옛사람들이 익히 써 온 말마디를 찾거나 알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떨꺼둥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로 본다면, "기대고 지내던 곳에서 가진 것 없이 쫓겨난 사람"을 뜻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말하는 '노숙인'이나 '홈리스'에 앞서 익히 쓰던 말입니다. 어느 영화감독은 2008년에 이 이름으로 영화를 하나 찍기도 했고, 〈떨꺼둥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길에서 살아가는 사람' 삶과 인권을 도우려고 애쓰는 사람들 소식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다른 낱말로 '한뎃잠이'가 있습니다. '한데'는 '노지(露地)'나 '노천(露天)'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고, '한뎃잠'은 '노숙(露宿)'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이리하여, 한데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한뎃잠이'가 되며, 말 그대로 '노숙인'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한뎃잠이'라고 가리켜야 올바릅니다.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인데, 왜 "희망드림"을 한글로 못 적고 "희망dream"이라고 할까요? 이 그림에서는 한글로 '드림'이라 했지만, 정책 이름은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인데, 왜 "희망드림"을 한글로 못 적고 "희망dream"이라고 할까요? 이 그림에서는 한글로 '드림'이라 했지만, 정책 이름은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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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무원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떨꺼둥이'이고 '한뎃잠이'이고 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낱말이 있는가를 알아보지 않고 국어사전을 뒤적이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하여도 널리 쓰지 않습니다. 이러는 동안 우리 말은 제힘을 내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 여러 지자체와 중앙부처에서 알맞고 바르고 곱고 살갑고 깨끗하고 싱그러운 낱말로 정책/사업 이름을 쓰지 않는 까닭이라면, 공무원 분들이 공무원이 되기 앞서부터 알맞고 바르고 곱고 살갑고 깨끗하고 싱그러운 낱말을 써 보지 못했고 들어 보지 못했으며 가까이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느 때에 길들어 공직자 자리에 선 뒤에는 아예 굳어 버리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많이 늦었다 하겠으나, 이제부터라도 공직에 있는 분들부터 우리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깨닫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다듬으며 고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도 공직자 스스로를 생각하고, 공직자가 '민원을 풀고 좋은 정책을 펼쳐서 도움을 받을' 여느 사람들, 바로 우리들을 생각해서 말입니다.

한글날이 아니어도, 이런 글씀씀이 매무새는 낱낱이 비판을 받아야 할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한글날이 아니어도, 이런 글씀씀이 매무새는 낱낱이 비판을 받아야 할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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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한글학회에서 <한글사랑 지원단> 모둠이끎이를 맡고 있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한글날, #누리집,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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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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