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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8 세로 3m 무게 15kg의 거대한 용기를 가지고 벌이는 기놀이는 그 능란함에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기접놀이의 백미인 용기(龍旗)놀이 가로 8 세로 3m 무게 15kg의 거대한 용기를 가지고 벌이는 기놀이는 그 능란함에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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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기가 지면을 스치며 마치 달리기 하는 것처럼 하는 '기달리기'는 경력이 많은 노련한 기수 일수록 박진감 있는 동작을 연출한다.
▲ 거대한 기가 땅위를 스치듯 달리는 '기달리기'모습 거대한 기가 지면을 스치며 마치 달리기 하는 것처럼 하는 '기달리기'는 경력이 많은 노련한 기수 일수록 박진감 있는 동작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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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이상 훈련해 노련한 이날의 용기 기수들은 노련한 기놀이를 선보여 많은 사진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 전설속의 용이 꿈틀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기접놀이의 기놀이 5년 이상 훈련해 노련한 이날의 용기 기수들은 노련한 기놀이를 선보여 많은 사진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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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은 백중(百中)이다. 음력의 24절기 중 백중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통적으로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절기 중 하나가 백중으로 예전에는 명절에 버금가는 중요한 절기였다. 봄부터 숨가쁘게 진행되어온 농사일이 한 고비를 넘기는 절기가 백중으로 마지막 김매기가 끝나고 풍성한 가을을 기원하며 그간의 피로를 풀고 이웃간, 마을간 농사일로 쌓인 앙금을 해소하는 한바탕 어울림의 마당이 펼쳐지는, 농경문화에서는 중요한 절기인 것이다.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의 우리사회에서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우리 전래의 백중놀이가 전북 전주의 모악산 자락의 마을 주민들에 의해 원형 그대로 9월 3일 재연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날 펼쳐진 공연은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장 전주의 모악산자락의 자연마을에서 수백 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주기접놀이'로, 용기(龍旗)라는 큰 기를 앞세우고 벌어진 이날의 백중놀이는 그 큰 기의 역동적인 놀림에 이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과 사진작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오전 11시에 "용기 받고 합굿 맞자"라는 제목으로 기접놀이가 벌어진다는 모악산 자락의  학전 마을에 가니 널찍한 행사장엔 벌써 풍악이 울며 흥을 돋우고 있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자 '전주기접놀이보존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학전마을 주민들이 동네 가운데에 있는 당산나무로 농악을 앞세우고 향한다. 이 지역의 백중놀이인 기접놀이는 먼저 각 동네별로 모여 술 멕이기(혹은 호미 씻기)로 불리는 놀이 한마당을 펼치는데 동네의 각 집을 풍악을 앞세우고 돌며 기세를 올리게 된다. 이때 농악단을 맞는 집 주인들은 정성껏 형편에 맞게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내어 서로간 노고를 위로하고 쌓인 앙금을 풀어 내리게 된다고 한다. 그런 다음 당산나무에 가서 당제를 드리며 기 싸움에 출전함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학전마을도 기접놀이가 전해져 왔으나 마을 단위로는 기접놀이에 참여하지 않다가 올해 처음 참여하기로 해 올해의 행사는 이 마을에서 하게 된 것이라고, 당산나무로 향하며 심영배(56, 전주시 삼천동) 전주기접놀이보존 회장이 귀띔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당제가 진행되는데, 원래 이 지역에서는 백중이 되면 각 마을별로 술멕이기를 하고 기세를 올리며 당제를 지내고 인근마을이 모여 용기(가로 8m 세로 3m 무게 15kg인 큰 기에 용 그림이 그려져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기수라야 다룰 수 있는 기)로 기량을 겨루게 된다고 한다. 커다란 용기로 갖가지 경연(競演)을 펼쳐 그 승패에 따라 형님 마을 동생 마을로 나뉘고 다음해에 농사때는 그 서열에 따라 논에 물을 댈 수 있었다 한다. 그러니 용기를 다루는 기술은 그 동네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리게 되는 것이다.

백중이 되면 각 마을별로 용기를 앞세우고 기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모습을 재연하기 위해 학전마을 주민들이 당제를 드리고 있다.
▲ 기싸움에 출전함을 고하는 당제를 드리고 있다. 백중이 되면 각 마을별로 용기를 앞세우고 기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모습을 재연하기 위해 학전마을 주민들이 당제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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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에 당제를 지내고 널찍한 행사장에 다시 내려와 농악단이 한바탕 어울어지며 신명을 돋운다. 자신이 모악산 자락의 함대마을에서 태어나 기접놀이의 뛰어난 상쇠로 활동 하셨던 아버님(심학섭, 88세)의 영향으로 우리 가락과 기접놀이의 신명난 가락을 익힌 심영배 전주기접놀이 보존회장은 시의원이던 1998년 지역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 전주기접놀이 보존회를 조직했다. 그 이후 유명한 상쇠이셨던 아버님과 동네 어르신들에게 기접놀이에 관한 모든 것을 전수받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용기가 낡아 새로 제작하고, 젊은이를 모집해 자신이 직접 강사가 되어 그들에게 가락을 가르치고 기접놀이를 전수했다 한다. 시의원 도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기접놀이 단원으로 꽹과리를 치며 고군분투 활동해 2005년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에 이어 2007년의 제48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 현재는 농촌진흥청과 전주시가 민속보전마을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성과들을 얻으면서 기접놀이보존회원들도 늘어나게 되었고, 이날 행사에도 각 동사무소별로 운영되는 문화의집 농악단을 비롯한 많은 농악단이 찬조출연해 어울림의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 동사무소별로 운영되는 문화의집 소속 농악단원들이 기접놀이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하고 기접놀이 회원들이 각 농악단 회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교류가 활발하다고 한다. 흥겨운 농악소리로 대화가 어려워 근처에 위치한 농촌체험마을 식당으로 장소를 옮기는데 오늘 점심, 저녁은 여기에서 준비했다 한다. 학전 마을은 전주에 인접한 농촌마을의 특징을 잘 살려 농촌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고 체험 온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 잘 완비되어 있어 이번 행사의 식당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법을 적용해 논에서 참게가 자라는 마을이라고 한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오전 일정을 마친 패들이 우르르 식사를 위해 들어오면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혼란한 와중에도 금세 나름의 질서를 찾아가며 질서 있게 그 많은 인원이 식사를 마치는 모습을 보며 이런 게 우리 전통문화 속에 흐르는 질서라고 생각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3시부터는 예로부터 그 마을의 상징이며 자존심의 표상인 용기(龍旗)를 신성시 해 용기에 대해 고사를 올리는 전통이 있어 용기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용기고사를 지내고는 '만두레'라는 단체적 농사 협동 작업을 재현하는데 이는 가장 바쁜 농번기에 각 농가에서 1∼2명씩 일꾼을 내어, '두레꾼'을 만들어 작업을 하는 것으로 두레꾼들이 김을 매거나, 모를 심는 등 각종 일을 할 때 일꾼의 힘을 돋우고 능률을 올리고,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농악이 마련되는 공동작업의 형태인 것이다.

전통을 되살려 논매기를 시범으로 한다고 한다. 논에 잡초를 매는 논매기는 각종 농약의 사용으로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데, 학전마을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사를 지어 지금도 하고 있으며 전통을 되살린다는 의미를 살려 오늘 그 시연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만두레를 시연하고 장원례의 시연으로 이어졌다. 장원례 역시 7월 백중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7월 중순 무렵이 되면 농사는 세 벌 논매기를 마치고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다.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기에 마을사람들은 잔치를 벌이며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다. 이를 장원례 또는 호미씻이, 풋 굿이라고 부르는데 논매기가 끝나는 날 마을에서 논매기가 가장 잘 된 집을 골라 농사장원으로 정하여 축하하고, 그 집 머슴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머슴을 소 등에 태우고 농악대를 따라 주인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즐겁게 놀면서 그 동안 농사일 때문에 미뤄두었던 마을의 각종 일들을 한다. 마을길을 닦는 것도 이 무렵에 한다. 바쁜 논농사를 위해 협력하며, 힘겨운 노동을 농악과 함께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벼가 자라는 논에 들어가 잡초를 뽑고 농악대가 흥을 돋우는 장면을 1시간 남짓 보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각 마을을 대표하는 용기들이 농악단을 거느리고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 본격적인 기놀이를 위해 농악단을 거느리고 입장하는 각 마을의 용기 각 마을을 대표하는 용기들이 농악단을 거느리고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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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후 일정이 진행되며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기접놀이가 시작되었다. 각 마을을 대표하는 커다란 용기가 잘 훈련된 기수에 의해 행사장에 입장을 하면서 기접놀이는 시작되었다. 기접놀이의 가장 큰 특징은 가로 8m 세로 3m 무게 15kg의 커다란 용기(龍旗)로 긴 장대에 매단 이 기는 무게는 15kg이지만 바람이 불면 80kg까지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각 마을별로 기수를 뽑아 별도의 훈련을 하였고, 기 싸움에서 이기면 그 마을이 1년간 형님마을로 행세해 기수에 대한 대접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을 대표하는 용기의 기수단이 농악패를 거느리고 위용을 자랑하며 입장해 기 인사를 하고 흥을 돋우기 위해 농악단이 한바탕 몰아친다.

 기접놀이는 거대한 깃발에 전설의 용이 그려진 기로 말 그대로 용트림을 하고있다.
▲ 거대한 용기의 역동적인 용트림 모습 기접놀이는 거대한 깃발에 전설의 용이 그려진 기로 말 그대로 용트림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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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대한 용기를 어깨에 올리고, 이어 이마에 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안내게 해 신기에 가까웠다.
▲ 거대한 용기를 이마에 올린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가대한 용기를 어깨에 올리고, 이어 이마에 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안내게 해 신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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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본격적인 기 놀이가 펼쳐지는데, 참석한 관람객과 사진을 위해 모여든 사진작가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생활 속에서 자생한 세시풍속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한 고난이도의 서커스나 기예라 할 만한 공연이 기 놀이였다. 그 거대한 용기를 잘 훈련된 기수들은 마치 작은 기를 가지고 놀이하는 것 같은 능란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큰 기를 매단 깃대를 어깨에, 이마에 세우는 묘기에 이르러서는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11시부터 달려온 이날 행사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그 끝을 맺었다. 그 긴 시간 함께 하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듬뿍 담긴 세시에 탄복하며, 그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한 개인의 집념과 그 성취에 경의를 표하며, 거대한 용기의 공연에 스릴과 긴장을 느끼느라 지루해 할 틈이 없었다.

낡은 것으로, 진부한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 전래의 문화에도 이렇게 완벽한 공연으로 현대에 되살릴 세시풍속이 계승되고 있으며, 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젊은이들의 많은 참여가 내가 생활하는 고장에서 오늘도 면면히 흐르고 있음에 자부심을 한껏 느끼며 어둑해진 마을을 뒤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게재해 포털 다음의 view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전주, #모악산, #학전마을, #용기, #전주기접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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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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