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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마스크 답답해요!"

"선생님, 친구들 더 안 와요?"

 

8월 23일 일요일 밤 9시 어린이집 교사들 긴급소집. 달콤했던 1주일 방학의 마지막 날이었다. 원장 선생님의 얼굴이 사뭇 비장했다. 금요일 저녁, 구청에서 연락이 왔단다. 구내 어린이집 1곳에서 신종 플루 감염자가 발생했다며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다. AI에도 끄떡없던 한국인이라 '신종플루'도 그리 걱정하지 않았는데, 회의가 길어지면서 '이번엔 다르다'는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오랜 시간 이야기가 오고 갔다. 원장 선생님의 사전조사 결과, 지난 주(방학 내) 절반 정도의 아이들은 (환절기 원인이라 판단되지만) 감기 증상이 있었고, 절반 정도는 외부접촉이 많았다고 한다. 나 역시 3박 4일 간 캠프를 다녀왔고, 다른 선생님들도 모처럼 방학을 맞아 극장에는 한 번씩 다녀온 상태였다.

 

"선생님 친구들 더 안 와요?"

 

 

'신종 플루'에 누가 감염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신종 플루'의 위험성과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기에 서로를 위해 1주일(1주일의 잠복기가 있다는 점이 특징)간 등원을 자제하도록 전화하고, 더불어 1주일간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활지침을 안내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어린이집보다 가정이 안전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아이보육 대책이 없는 경우, (신종플루 전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등원하는 것으로 지침을 정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 안전한 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학부모와 교사가 모두 '신종 플루'가 위험하다는 것을 공감해서다.

 

때문에 어린이집 일과는 새롭게 바뀌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등교 시 시간마다 (팔꿈치까지) 손을 씻고, 죽염수로 가글한다. 오전에 안전교육을 한 후 서로 조금씩 떨어져서 그림책을 보거나 블록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물과 비타민씨가 많은 감잎차를 자주 마시도록 했다.

 

점심시간,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

 

어린이집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 게시판에 남긴 글

거짓말친 마을학교

미워 안 가고 싶어

다시는 안가고 싶어

간다고 해놓고 안가니까.

병균도 미워.

어린이집 갈 때 울고 싶어

선생님은 미워요.

-영서-

 

영서 걸 듣고 있던 은서, 나서다

 

선생님 예뻐요.

수지샘도 예뻐요 솔이샘도 예뻐요. 수현샘도 예뻐요.

직녀샘도 예뻐요. 친구들도 예뻐요.

 

- 애들이 어린이집을 많이 그리워하네요-

아이들이라 주의를 주지 않으면 어느새 마스크가 턱으로 내려와 있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놀려 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고, 서로 신나게 어울려 놀지 못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낮에는 덥기까지 하니 말이다. 평소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주의를 줘도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하던 아이들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식사를 하니 대화가 될 리 없다. 식기에 수저가 부딪치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이다. 너무 조용해 교사인 나마저 민망할 정도다.

 

아이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식단과 교육프로그램도 바꾸었다. 된장국은 밥상에 매일 오르게 되었고(된장국을 하루 한 번 섭취해주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어 면역성을 증진시켜 준다), 오후 3시에는 풍욕을 한다. 바람으로 목욕을 하고 나면 면역력이 좋아져 감기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난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함께 놀 친구와 선생님과 놀고 싶어 죽을 맛이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마저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암울한 세상이 새삼 서글퍼진다. 이제는 (광우병 소고기, 식품첨가물 등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먹일 수도, (신종 플루로) 함께 어울려 신나게 놀 수도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행동하지 않고 잠자는 시민들을 깨운 것처럼, '신종플루'가 생명과 환경을 소홀히 여겨온 우리의 마음을 깨우고 생활양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얘들아, 우리는 1주일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꼭 만나자!"


태그:#신종 플루,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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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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