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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휴가 비용도 절약할 겸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걸로 휴가를 보내곤 하였다. 올 여름 휴가도 고심을 하던 중 오랜만에 미국에서 살다 고국으로 돌아온 시누이와 동생 내외와 함께 문화 유적지로 익히 알려져 있는 경주 여행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구동성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인가 한번 다녀왔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경주를 향해 출발한다. 신라 경덕왕 10년(751) 당시의 재상인 김대성에 의해서 창건되었다는 석굴암으로 향한다.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고 한다. 불상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유리관을 씌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구경하고 계림으로 향한다.

 

 

 

계림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물푸레나무·홰나무·휘추리나무·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며, 신라 왕성인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강 전설이 있는 숲이다. 계림이라는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데서 연유되었으며, 후에 국명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신라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5기의 내물왕릉의 고분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드넓은 잔디가 푸름을 더한다. 끈적끈적했던 한 여름의 더위가 넓은 초원을 바라보자 일순간 날아간다.

 

초원을 바라보니 영화에서 볼 만한 풍경이 그려진다. 동생 내외한테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겠다며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해보라고 권했다. "손자 볼 나이에 무슨 놀이라고요?" 극구 사양하더니 간절한 부탁에 모델이 되어준다. 모델이 별건가? 내가 보기에는 일류모델 부럽지 않다.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연못이다. 안압지를 구경하려면 저녁 7시 이후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이 되어야 제대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안압지를 돌다보니 재미난 물건을 보게 되었는데. 1975년 안압지를 발굴할 당시,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있는 참나무 주사위가 출토되었다.

 

이름 하여 '주령구'다. 정사각형 면이 6개, 육각형 면이 8개. 총 14면체인 이 주사위는 일반적인 6면체에 비해 만들기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적혀 있다. 이 주사위는 신라인의 풍류의 한 단면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신라 왕궁의 후원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674년(문무왕 14)에 완성되었다는 이곳은 정자와 연못 안에 3개의 섬이 있다. 연못의 바닥에서 신라 왕족과 귀족이 썼던 일상생활 유물들이 발견된 걸로 보아, 왕족과 양반들이 연못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다 갖가지 벌칙으로 만들어진 주령구를 던지며 풍류를 즐겼으리라 짐작해본다.

 

아마도 특별이 할 일이 없었던 왕족과 양반들이 시간도 보낼 겸 세상사를 얘기하고 시도 읊조리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색적인 놀이문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안압지는 한국조경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원지(園池)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니 만큼 고풍스럽기도 하고 아름답다. 잔잔한 연못에 비친 파란 하늘과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빛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세상 시름을 잊어버릴 지경이다. 호수 깊숙이 빠져드는 마력도 있는 것 같다.

 

조상들이 즐겼던 놀이 문화를 즐겨보기 위해 판매점을 들려 사려했지만 만만찮은 가격이다. 고가의 주령구를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옛날에도 왕족이나 양반들이 즐겼다 하더니 오늘날에도 서민들이 즐기기에는 뭔가 맞지 않는 큰 옷을 입는 것 같아 포기했다.

 

주령구를 자세히 살펴보며 면마다 적혀 있는 내용들을 보던 시누이가 "얼굴을 간질어도 꼼짝 않기"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한마디 한다. 저런 재미있는 벌칙을 내릴 생각을 했다는 것이 여유가 엿보인다며 왜 하필 주사위를 14면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주사위 하면 정육면체를 연상 하는데 6면 밖에 없으니 벌칙을 정하는데 부족했었나? 다양한 벌칙을 내릴 수가 없어 식상했을 수도 있겠다. 좀 더 많은 벌칙을 위해 궁리하던 중 오랜 시간에 닳아빠진 주사위 모서리에 아이디어를 내어 하나하나 적다보니 14면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도 제시한다.

 

암튼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는 압권이다라며 다시 한 번 크게 웃는다. 올 여름 휴가는 오랜만에 김씨 삼남매와 동서와 나 다섯이서 오순도순 알차고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


태그:#주령구, #안압지,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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