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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문송면이 살아있다면 지금 30대 후반의 청년이다. 위 사진은 유족이 열다섯 문송면을 청년의 문송면으로 작업한 것.
▲ 청년이 된 문송면. 열다섯 문송면이 살아있다면 지금 30대 후반의 청년이다. 위 사진은 유족이 열다섯 문송면을 청년의 문송면으로 작업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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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잊은 그를 다시 만나다

처음 문송면을 만난 것은 TV드라마에서였다.

열다섯? 열여섯? 한가로운 낮이었는지 느지막한 저녁이었는지 모르지만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을 봤던 기억은 또렷하다. 나는 그때 꽤나 슬퍼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대라서였기보다는 송면이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말이 좋아 주경야독이지 지금 쓸 수 있는 단어로는 '혹사' 아니었던가. 처지야 송면이보다 나았지만 아마 "시골에서 살았다면 어쩜 나도 저 아이처럼 되었을지 몰라…" 하는 염려를 했다. 그래서 남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쉽게 문송면을 잊었다. 나는 문송면이 아니었으니까. 시골에서 쌀 한말 머리에 이고 서울로 오신 부모님에게 맞벌이는 필수였고 자식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 계집애는 더 일찍 철이 든다. 라면 끓이기는 7살에 뗐고 초등학교 때는 엄마를 대신해 장을 봤다. 반에서 우유를 신청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배를 곯았다든가 육성회비 밀려 선생님에게 따로 불려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다시 문송면을 만난 것은 2005년. 세 번째 일터,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에서였다. 그해 문송면은 7월 2일 즈음에 치르는 하나의 기념식이었다. 뭘 몰랐으니까. 문송면은 해마다 의미를 조금씩 더했다. 새로운 의미라기보다는 '문송면' 그 자체가 조금씩 무게를 더했다. 그것은 살면서 전혀 몰랐던(모를 수밖에 없었던) 일하는 사람이 건강할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다치지 않을 권리라는 무게였다. 일하다 다친, 아픈, 죽은, 제대로 보상 못 받는, 직업 복귀 안 되는, 사회재활 안 되는 노동자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1988년 4월 16일. 노동부 서울남부사무소가 문송면의 산재신청을 ▽사업주 날인 누락 ▽초진진단기관 산재보험 미지정 의료기관 등을 이유로 거분한 서류. 당시 산재보험은 노동부가 운영했다.
▲ 반려된 산업재해 신청서 1988년 4월 16일. 노동부 서울남부사무소가 문송면의 산재신청을 ▽사업주 날인 누락 ▽초진진단기관 산재보험 미지정 의료기관 등을 이유로 거분한 서류. 당시 산재보험은 노동부가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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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노동자를 기억하는가?

자주 이용하는 검색 엔진에서 'ㅁㅜㄴ ㅅㅗㅇ ㅁㅕㄴ'을 쳐봤다. 문송면이란 단어를 가진 홈페이지는 십여 개뿐. 청소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 산재노동자에게 안전망 없는 사회 등 많은 문제를 알렸던 문송면. 원진레이온 노동자 투쟁에 불씨가 되었고 법과 제도를 바꾸게 했던 문송면이었지만 이제 그는 산업위생 교과서에 몇 줄, 1988년 싸움을 같이 했던 선배와 뒤를 잇는 후배 가슴에 남아 있다.

요즘 전에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을 느낀다. 세상을 비판하는 시사프로, 다큐, 드라마가 사라지는 방송, 권력과 자기 입맛에 맞는 보도만 생산하는 언론이 사람 귀와 눈을 멀게 할까봐. 대한민국에는 한 해에도 수만 명의 또 다른 문송면이 있는데도 그것이 더더욱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될까봐. 그래서 노동자를 기억하지 않는 사회가 노동자를 아예 지우려는 사회가 될까봐.

1988년 5월 11일자에 온동계 공장에서 일한 15세 소년이 두달만에 수은에 중독되었다는 기사 내용이다.
▲ 문송면의 수은중독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1988년 5월 11일자에 온동계 공장에서 일한 15세 소년이 두달만에 수은에 중독되었다는 기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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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故문송면은 1988년 7월 2일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소년 노동자'였다. 그는 영등포 협성계공에서 온도계를 만드는 공정에서 일했다.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수은이 바닥에 흘러넘쳤고 노동자는 적절한 보호장구도 없이 일했다. 일한 지 두달만에 수은중독을 보인 문송면은 3개월의 싸움으로 산재승인을 받았지만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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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가는 길-문송면 君을 기억함

박현덕

빗방울이 얼굴 때린다 만장도 훌쩍거리고
장의차에 실려진 소년의 마지막 모습
모두들 회사 정문에서 노제를 지켜 본다

온도계부 수은 주입실 굵은 가래 내뱉으며
흐릿한 연기들이 빠져나가는 잠깐 동안
뜨끈한 사거리 국밥집과 야학 교실을 떠올린다

일요일 아침 철야하고 예배당 가는 길
신나 취해 가랑잎처럼 흔들흔들 걸어간
소년의 축 처진 어깨 성경이 끼어 있다

예배당 구석 앉아 풋잠을 자다가 문득
전신을 도려내는 통증에 고개 드니
툭, 툭, 툭 한 세상 아픔이 물음표를 던진다

시 출처 : 김주석 시민기자 '노동현장의 시조'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일과건강에도 게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전문가들은 해마다 7월 2일 전 일요일에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를 개최합니다. 올해는 6월 28일(일) 오전 10시 30분, 마석모란공원 위령탑 앞 입니다.



태그:#문송면, #수은중독,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7월 2일,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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