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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슬기로운 정기를 받고~ 황해수 푸른 물결 가슴에 안은~ 반 만년 유서 깊은 제물포 땅에~ 씩씩하게 자라나는 대헌에 건아."

1989년,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왜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지 정말 몰랐다. 그냥 배정된 새 학교로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 3년을 다녀야 한다는 것만 뒤늦게 알 수 있었다.

6년 내내 맨 앞줄만 앉을만큼 키도 작은데 점심 도시락과 무거운 책으로 가득찬 가방을 짊어메고, 이른 아침마다 차편도 좋지 않은 집에서 논길과 산고개 너머 버스정류장에서 흙먼지를 풀풀 날리는 제때에 오지 않는 만원 버스에 힘겹게 올라 타, 손잡이조차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달리다 송림동에서 내리면 가파른 계단과 언덕길을 자랑하는 중학교가 매일같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7년 만에 찾은 중학교
 17년 만에 찾은 중학교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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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 양옆으로 분식집과 슈퍼, 문방구가 즐비했었다.
 언덕길 양옆으로 분식집과 슈퍼, 문방구가 즐비했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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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촌동네에서 인천 시내로 등하교를 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꿋꿋이 3년을 오가며 쓸데없이 가파른 계단 갯수조차 외우게 되었고, 비탈진 언덕과 비좁은 골목길도 헤집고 뛰어다닐 만큼 되었다. 겨울 눈이라도 내려 언덕길이 빙판지면 자연스레 엉덩방아를 찧게 되는 눈썰매장이 만들어졌고, 달동네 사람들이 내던진 연탄재를 피해가며 신나게 미끄럼도 탈 수 있었다.

언덕과 골목길 계단에 자리한 분식점과 문방구에서 파는 50원짜리 떡꼬치와 사탕, 송림시장의 100원자리 호떡은 차비(버스표)조차 아까운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더할 나위없는 주전부리였다.

이 오르막과 작은 운동장 쪽 가파른 계단을 3년 내내 오갔다.
 이 오르막과 작은 운동장 쪽 가파른 계단을 3년 내내 오갔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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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란 시간을 보낸 대헌중학교
 3년이란 시간을 보낸 대헌중학교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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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 지상3층의 크지 않은 학교 건물 주변에는 같은 재단 소속의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이 있어 매점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학교 건물에는 따로 매점이 없어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장을 잽싸게 가로질러 뛰어 내려가야만 줄지어선 덩치 큰 고등학생 틈바구니에서 빵이라도 하나 사먹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 라면이나 짜장면을 팔기도 했는데, 달리기가 느리면 점심을 굶거나 빵-과자로 대신해야 했다. 사발면을 팔던 가까운 대학 매점에 중학생들은 이용금지였다.

옛모습 그대로인 중학교
 옛모습 그대로인 중학교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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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렸다. 운동잔 건너는 대헌공고
 모래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렸다. 운동잔 건너는 대헌공고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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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중인 듯 조용하다.
 수업중인 듯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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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선생님들이 쉬는 시간에 하는 일 중 하나가 매점 간 학생들이 실내화를 신었는지 출입구에서 지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하얀 실내화를 신발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다녔고, 복도는 매일 같이 물걸레나 왁스칠을 해야 했다. 그래서 늘 선생님들은 시끌벅적한 복도에 껌이나 휴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극히 꺼렸다. 당신들이 청소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참 송림산 위에 자리한 학교 건물은 온통 하얀 색을 띄고 있었는데, 오랜 야구 라이벌인 산 아래 동산중학교 아이들은 우리 학교를 '언덕 위에 불탄 학교'라 부르곤 했다. 우리는 매일 같이 너희들이 '우러러 보는 학교'라 했다.

송림산 꼭대기에 자리한 학교에서 보이는 동구일대
 송림산 꼭대기에 자리한 학교에서 보이는 동구일대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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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래 동산중고등학교도 얼핏 보인다.
 산아래 동산중고등학교도 얼핏 보인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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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워낙 야구 실력에 밀려 그런 놀림은 통하지 않았다. 얼마전 송림동 달동네를 둘러보고 찾은 모교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들에게, 요즘 야구부는 잘 있는지 성적은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요 7-8년 사이 동산중학교에 진 적이 없다고 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던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려, 야구부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현재 인천대 운동장에서 연습을 한다고 했다.

더불어 17년 만에 찾은 학교에 기억속 선생님들이 남아있는지 물었는데, 빨래방망이를 자랑하던 음악 선생님이 아직 학교에 남아 있었다. 1964년 11월 설립인가를 받은 사립중학교인 모교는, 지난 1998년 6월 학교법인 재능학원으로 법인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그 이름만은 간직하고 있었다.

'언덕 위 불탄 학교' 아래 작은 집과 골목길, 즐겨찾던 학교 앞 슈퍼와 분식집, 오락실이 사라진 곳에 재개발로 고층아파트가 산처럼 높이 솟고 있었지만, 내 생애 3년이란 추억을 간직한 학교는 살아남아 있었다. 다행중 다행이다.

뛰어 다니던 비좁은 골목과 계단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재개발로 고층아파트가 산처럼 솟아오른다.
 뛰어 다니던 비좁은 골목과 계단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재개발로 고층아파트가 산처럼 솟아오른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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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남았지만 작은 집들은 사라지고 있었다.
 학교는 남았지만 작은 집들은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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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헌중학교, #송림동, #재개발, #고층아파트,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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