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2년, 그 해 나는 갓 학교에 발령받은 신규 보건교사였다. 매일 전쟁터 같은 병동에서 벗어나, 일신의 여유로움을 찾겠다며 앞뒤 생각 않고 보건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한 지 6개월 여. 시험 출제 경향이 크게 바뀌는 바람에, 내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보건실 역시 분주한 일상은 계속되었지만, 환경이 달라진 데서 오는 생기와 발랄함 같은 것이 있던 한 해였다. 아이들은 명랑했고, 선생님들은 상냥했으며, 학부모님들은 따스했다. 그러나 가슴은 뭔가 허전했다.

 

2002년 끝자락, 한 사이트에서 교사들이 학교보건 정상화를 위해 결의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발령받은 동기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어느 고등학교 강당. 복도에는 보건 수업, 교육활동 모습이 즐비하게 게시되어 있었다. 강당에 들어서자 어림잡아도 1천여명은 훌쩍 넘을 만큼 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전국 각지에서 모여 계셨다.

 

내가 도착한 뒤에도 오시는 분들이 줄지 않았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등에 업고 서 계시는 분, 어느 선생님의 부군이신지, 함께 자리에 앉아 교사들의 모습을 감동스럽게 바라보시는 분.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치며..그렇게 장내는 모인 사람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학교보건 50여년 역사 동안 학교 현장에서 보건교육을 가르쳐 왔지만, 교과서도 없다. 다른 수업 시간을 빌려 보건 수업을 하고도 출석부에는 교과목이 없으므로 정식 수업으로 인정이 안 된다.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건 수업 준비 때문에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데도,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니 내가 전공한 보건교육 내용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 때문에, 현장에서 보건교육을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선배님들의 가슴 절절한 고백. 내 공허함은 "보건교육"에 맞닿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겉으로는 마냥 행복했지만, 마음에 허기가 졌던 이유! 지금도 그  뜨거운 눈물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해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보건 교과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했다. 의료인만이 보건 지식을 독점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가난하든 부자든, 미리 자기 건강을 스스로 챙기고 돌볼 수 있도록 학교에서 보통 교육으로 보건교육을 가르치자는 절규는 마침내 대선 공약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 공약 이후  대통령 청소년 특별회의에서는 보건교과 설치 건의가 이루어졌고, 교과부는 UN에 보건 교과 설치를 정식으로 보고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터넷 대화에서는 최대 접속 안건 10개 중 보건 교과 설치가 수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 공약이 있어, 국회가 움직이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아이들을 위한 일에, 여당 야당이 어디 있느냐는 인식 속에 오히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보건교과 설치 학교보건법 개정안을 주도하고, 여야 국회의원 33인이 공동 발의하였다. 마침내 2007년, 17대 국회의원 전원 만장일치로 보건교과 설치 학교보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0년 중학교 보건 과목 운영과 관련하여, 보건복지가족부가 연구 과제로 채택한 보건 교과서 개발 워크샵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집에 돌아와 TV로 유서며, 서거 상황 등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나면 다시는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던 노 전 대통령의 뼈아픈 정치 인생. 그 가시밭길의 그늘 아래서, 2009년부터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누구나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보건교육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보건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험할테지만, 노 전 대통령이 계셔서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고맙고, 감사해서 더욱 죄송한 마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반성하고, 열정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그것만이 유일하게 고인에게 진 큰 빚을 갚는 길인 듯해서 가슴이 더욱 시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