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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정원의 일부는 텃밭이다. 정원을 찾는 친구들은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과 각종 작물을 돌아보면서 우선 "언제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느냐?"고 놀란다. 그리고 "고생 많이 했다"는 위로의 말도 건넨다.

 

 사실 요령 없이 덤벙대기만 했던 1년차를 떠올리면 고생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낫 한 자루로 여름날 풀을 이기겠다고 시도했던 일을 떠올리면 고생을 자초한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반성도 한다.

 

 그러나 억울하게 많은 땀을 흘린 해였지만 얻은 소득은 적지 않았다.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고, 자연의 흐름에 감동하고, 수확의 기쁨을 맛보면서 건강도 많이 회복 했을 뿐 아니라 풀과 전쟁에서 예초기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고, 잔디깎기로 잔디밭을 다듬는 등 전원생활의 기초적인 요령도 익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귀촌 1년차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으나 많은 부분 독학하면서 농사일을 깨우친 한 해였다.  덕분에 귀촌 2년차였던 2008년은 정원의 윤곽도 잡았고, 텃밭에 심는 작물도 나름대로 선별하고 시기에 따라 무엇을 심는지 알 수 있었고 풀과의 전쟁도 별로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귀촌 3년차, 이제 우리 부부에게 텃밭 농사는 건강을 지키는 일이면서 놀이가 되었다.

넓은 잔디밭과 철쭉 길, 소나무 밭, 사이사이에 심어진 대추, 감, 배, 사과, 모과, 매실, 백일홍 등의 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이곳저곳에 아내가 만들어 놓은 화단에는 꽃잔디, 패랭이, 팬지, 마가렛, 황금죽, 수선화, 다알리아, 해바라기 등이 싹을 내밀거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텃밭에는 마늘, 양파, 감자, 옥수수, 야콘, 완두콩, 강낭콩, 고추, 상추, 부추, 토란, 생강, 딸기 등이 자라고 있다. 

 

 이 봄에도 전원생활에 관심을 가진 몇 친구들이 우리 정원을 다녀갔다. 날로 심각해지는 농산물 불안 때문에 깨끗한 채소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혹은 시골 생활에 대한 옛날의 추억과 동경 때문에 귀촌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남긴 말은 부럽기는 하지만 육체적인 노동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함께 온 여자 분들은 더 심해서 걱정의 정도를 넘어 노동에 대한 두려움까지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자 분들의 입장에서는 뙤약볕 아래서 장시간 노동은 분명히 부담일 것이다. 여성들이 싫어하는 뱀과의 조우도 공포일 수 있다. 농사에 찌들어 숨 못 쉬고 살았던 부모님을 떠올린다면 화장기 없는 주름진 얼굴, 아무 옷이나 걸쳐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 없을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없는 텃밭. 피부를 중요시하는 여성들에게 태양은 두려운 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취미생활이나 사회봉사 등 사회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주말의 안락한 휴식이나 화려한 여행을 포기하고 풀밭을 매는 일이란 고역일 수 있다.

 

 그렇듯 도시를 떠나기 싫고 노동에 지레 주눅이 든 분들에게 귀촌을 권장하는 것은 죄악일 수도 있다. 더구나 아직 초보 농사꾼 내 주제에 길게 할 말도 없다. 그러나 귀촌에 뜻은 있으나 망설이는 많은 친구, 특히 그 부인들에게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말은 꼭 전하고 싶다.

 

 

 우선 텃밭에 보이는 과일과 채소는 모두 어느 날 한꺼번에 심고 가꾸고 또 수확하는 고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예를 들면 모든 꽃과 채소와 나무들은 심는 시기가 같지 않다. 마늘은 전해 가을에 심는다면 감자는 이른 봄에 종자를 묻고, 옥수수는 조금 늦게 씨앗을 뿌리고 야콘은 4월말쯤 모종을 옮기는 등 계절에 따라 시차를 두고 심을 뿐 아니라 수확하는 시기도 같지 않아 매실을 따고 감자와 마늘을 캐고 자두를 따는 시기가 다르다. 더구나 한 가족이 먹을 채소를 가꾸는 텃밭 정도라면 날마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일만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요즘 평균 수명의 연장과 함께, 노령화 문제, 황혼 이혼이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안다. 아마 은퇴한 남편이 진종일 집안을 무료하게 맴돌면서 아내에게 잔소리나 한다면 좋아할 부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남편들 중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남편을 둔 부인들이 있다면 그런 부인들에게 나는 텃밭 농사를 추천하고 싶다.

 

대략 300평 정도의 텃밭 농사는 정년 후 할 일을 못 찾는 은퇴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정년 연장 효과와 함께 노년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노령화로 인한 사회 문제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300평이 부담이라면 조금 낮추어 100평 정도만 마련하여 부부가 함께 자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안전한 식탁을 위해 주말에 반나절쯤 땀 흘리겠다는 각오만 한다면 텃밭 농사란 결코 힘든 고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텃밭농사는 시간의 변화 속에 씨앗이 싹트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수확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멋진 놀이라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싶다. 식물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알려진 바다. 때문에 몸이 아프고 마음의 상처가 큰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이해로 얽힌 피곤한 대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텃밭농사 만큼 유익한 놀이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생산한 채소를 이웃과 나누고, 또 유기농을 통해 땅을 살리는 보람은 덤으로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과 놀이 속에서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누구를 미워할 수도 다툴 일도 없을 것이다.

 

  텃밭 농사의 규모를 가족의 형편에 맞춘다면 텃밭 농사 때문에 종교 활동이나 골프장에 갈 시간이 없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피부 손상을 걱정한다면 양산 그늘에 앉아 남편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훈수나 한다고 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귀촌이 곧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특히 여자 분들께 다시 말하고 싶다. 텃밭 농사는 잃은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새롭고 보람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텃밭에서는 완두콩에 살이 오르고 연보랏빛 감자 꽃이 한창이다. 이제 곧 오디, 앵두, 보리수도 때를 놓치지 않고 익을 것이다. 매실을 따고 하지 감자를 캐면 이내 자두는 붉어질 것이다. 고구마 순을 쳐서 밭에 놓고, 몇 차례 잔디를 깎으면 옥수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대추를 털고 고구마와 야콘을 캐는 풍성한 가을을 만날 것이다.

 

 물론 맑은 날만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러는 가뭄에 마음 졸이고 비바람 치는 태풍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의 풀은 호미를 놓을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한들 그만한 어려움이 없을 것인가?

 

 적당한 텃밭 농사, 그건 건강을 지키는 일이면서 부부가 합심하여 즐기는 놀이요, 황혼의 찬가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내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귀촌을 원하는 남편을 둔 부인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태그:#텃밭농사, #일과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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