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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기가 찬 딸을 둔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깊다. 올해 서른 넷, 아무리 요즘 세태가 결혼에  느긋하다지만, 이미 노처녀 딱지가 붙은 딸을 보면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딸의 장래를 생각하면 이내 가슴이 턱턱 막힌다. 굳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잡아떼는 딸만 쳐다보면 어서 짝을 지어 내쫓고 싶단다.

 

그런 아주머니가 딸과 동갑내기인 며느리를 달달 볶고 있다. 아이러니다. 시집이 싫은 것인지 시어머니가 미운 것인지 결혼이후 좀처럼 시댁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아들한테 전화해서 자신의 서운함을 털어놨지만, 공들여 키워놓았던 아들이 이미 여우같은 며느리한테 혼이 빠졌더라고 분통해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래, 장가가서 마누라 치마폭에 파묻히니까 이젠 부모도 잊었단 말이냐? 에이 빌어먹을 놈!"

 

 "좋은 며느리 얻었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는데, 시집오더니 전화도 잘 하지 않고 나를 무시하네."

 

아주머니의 하소연은 끝없이 이어졌다. 아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한참을 깨씹고 나자 목에 가시처럼 치밀었던 노기는 가라앉았지만, 며느리에 대한 섭섭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며느리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아들을 생각하면 괜히 괘씸함이 더하다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문제다. 내 새끼가 예쁘면 남의 자식도 예쁜 법인데, 누가 누구를 탓하랴. 

 

 

남자와 달리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시집이 부담이 된다. 이는 거의 모든 며느리들이 공통된 일이다. 며느리가 시집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은 단지 고부갈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부부는 둘만 오붓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자꾸 오라고 다그치고, 심지어 왜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느냐고 나무란다.

 

내 새끼가 예쁘면 남의 자식도 예쁜 법이다

 

시부모가 나서서 오라 가라 하는 것은 귀찮고 부담이 된다. 더구나 결혼시켜 내놓고 왜 안 오냐고 자꾸 전화한다면 부모가 부담의 끄나풀을 계속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관계만 더 나빠진다. 

 

그런 까닭에 늘 전화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시집에 가려니 더 가슴이 답답해진다. 딸이 생각하는 친정과 며느리가 바라보는 시댁은 너무나 다르다. 오죽 했으면 며느리들이 푸념 삼아 시금치나 시래기 등 '시'자가 달린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을까.  

 

결혼은 부모를 떠나서 독립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녀들이 스스로 살 수 있도록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자식이 있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행복이다.

 

 

결혼한 부부가 둘만 살고 싶은 것은 자연의 이치다.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둘이 잘 살도록 배려해 주어야한다.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고부간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아무리 자기 아들을 사랑한다고 계속 데리고 살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물며 딸을 계속 끼고 살려는 것도 분명 잘못된 처사다. 세대 차이는 다만 생각을 고루하게 가졌기 때문이다.

 

  "못난 놈,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웠건만 제 마누라 치맛폭에 싸여 맥을 못추는 꼬락서니라니. 내가 자식 덕을 바란 게 잘못이야. 딸 가진 게 죄지 며느리가 무슨 죄가 있겠나?"

 

올해로 계란 한 판하고도 두엇 더 얹은 나잇살을 가진 딸내미를 지켜보는 아주머니의 마음은 아리다. 분명 요즘 세태는 모계사회로 회귀하고 있다. 더 이상 처갓집과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야 좋다는 시대는 지났다. 아들보다 며느리의 존재를 두려워해야 할까보다. 근데도 간 큰(?) 아주머니는 아들을 원망하며 며느리를 향한 섭섭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월의 장미, #결혼, #며느리, #모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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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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