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식들이 부모님 근심 걱정 없이 기쁘고 즐겁게 편안하게 해 드리면서, 각자의 삶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효도가 아닌가 싶다.

어버이날은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로 퇴색되어 가는 어른 봉양과 경로사상을 확산하고 국민정신계발의 계기로 삼아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사회건설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에서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운영해 오다가 1973년에 제정, 공포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어버이날'로 변경·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이 천사에게 세상에 내려가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져 오라고 하셨다. 천사가 지상에 내려와 두루 돌아다니면서 고른 세 가지는 '예쁘게 핀 꽃', '티 없이 맑은 어린이 웃음',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런데 천사가 하나님께 가기까지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사이 아름답던 꽃은 시들어 버렸고, 티 없이 맑은 어린이 웃음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변해 버렸다. 천사는 할 수 없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어머니 사랑'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갔다.

어버이날과 아버지 생신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다보니, 또한 각자의 삶과 처한 환경이 다르다 보니, 명절 때에도 제사 때에도 온전히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이 팔순을 맞이한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드리고,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잠시나마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효도의 마음 전하기 위해 정겨운 고향 찾는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 9일(토요일) 어버이 댁에 모였다.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한 우리 식구들은 밤새도록 가족끼리 살아 온 이야기, 부모님 건강 및 생활문제, 아이들 교육문제, 친지들의 동향, 고향 소식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그동안 부족했던 가족간 정 나누기와 형제 자매간 우애를 다지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버이 얼마나 사신다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느냐는 가족들의 뜻을 모아 당초 일가친지 등을 모시고, 간소하게 팔순잔치를 하기로 하였으나, 한사코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시려는 아버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가족간 간단히 식사를 하는 것으로 팔순잔치의 의미를 대신하였다.

아버지 오현종(80), 어머니 윤공순(76). 두 분 만이 별도로 살갑게 사시면서 고향의 땅 날마다 품에 안고 살고 계신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가 어찌 위대하지 않으시며, 자식사랑이 남다르지 않으랴.

가난이 주식이던 척박한 세상에 태어나 4남 2녀 자식들의 교육과 뒷바라지, 제사 많은 가정의 대소사 다 감당하시면서도 결코 자신들의 몫 단 한번도 주장하지 않으시고, 평생을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 챙기시며, 지금도 여전히 자식들만을 위해 살고 계시는 부모님의 크고 높으신 사랑과 은혜.

불편한 노구의 몸 이끌고서 고향 지키기와 자식들 건강한 먹거리 제공에 여념이 없으시는 어버이는 자식들이 보내주는 얼마 되지 않는 생활비마저 아껴서 손주들 학자금이나 용돈 주시는 것을 또 다른 행복으로 알고 사신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건강한 육체, 행복한 삶에는 무관심하시는 부모님 인생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고 마음이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험한 세상 만나 모두 자기 가정 꾸려 가기에 바쁘고, 마음은 효도의 들판이지만, 몸은 한없는 불효의 강이다. 어버이 앞에서는 언제나 자식들은 모두 큰 죄인이다. 

집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일반 뷔페식당에서 가족끼리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기념사진 찍고, 광주에서 승용차로 약 30여분 거리에 있는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 고향마을로 이동하였다. 고향마을은 한창 여름나기로 분주하다. 지천이 온통 푸르름의 초원이다.

고향을 잃고 사는 아이들에게 고향의 의미와 뿌리의 참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찾은 고향은 여전히 집 나간 자식 맨발로 달려 나와 반겨 주시는 자상하고 인정많은 시골 어머니의 초상 그대로이다.

마을 앞 동구 밖에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는 수백년 된 팽나무, 마을 앞 저수지 방천에 줄줄이 서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행렬, 외지인들의 손길에 의해 새롭게 채색된 화려한 건축물들, 지천에 널려있는 감나무와 포도나무의 새순들, 화려한 백일 외출을 꿈꾸고 있는 백일홍 군락들의 힘찬 기지개, 천년전설을 안고 우뚝 서 있는 인조대왕 계마수(은행나무), 변함없는 고향 인심, 못자리 준비에 한창인 농부들의 몸짓, 모두가 내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삶의 생수요, 자연의 큰 선물이다. 

특히 사계절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 담양의 관광명소이자, 한국정원의 보고인 명옥헌 원림은 내 고향마을의 깊은 생명 샘이자, 마음이 쉬어가는 문학의 정자다. 고향의 텃밭, 고샅, 들판, 도랑, 집, 나무, 풍경 모두가 추억의 대상이요, 그리움의 모정이다.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에 있는 '명옥헌 원림'은 소쇄원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민간정원으로 꼽히고 있다. 넓은 뜰에 아담한 정자와 시냇물, 연못 그리고 배롱나무와 노송이 조화를 이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 예문관 관원에 올랐던 오희도의 넷째 아들 오이정이 지은 정자. 정자 앞에는 연못을 두고 연못 가운데는 섬을 띄워놓았다. 이 연못과 정자 주위로 100여년이 훌쩍 넘는 거목 배롱나무 20여그루가 심어져 있다.

특히 7월부터 9월까지 약 100여 일 동안 아름드리나무에 매달린 꽃들이 연못에 투영되는 명옥헌 원림의 모습은 가히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명옥헌은 활짝 열려 있어 누구든 정자 마루에 앉아서 배롱나무 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누구나 신선이 되고, 시인이 된다.

고향을 나와 고서 소재지를 거쳐 담양의 죽녹원을 방문했다. 관광지답게 온통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로 대만원이다. 담양군에서 조성한 담양읍 향교리의 죽림욕장 죽녹원은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고 있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죽녹원은 담양군에서 직접 조성해 놓은 대나무 숲이다. 담양 향교 뒷산인 성인산을 대나무숲으로 만들어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인공폭포, 정자, 생태학습원 등을 꾸며 놓은 일종의 테마공원이다.

이곳 죽녹원은 산책로마다 재미있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성인산 오름길, 추억의 샛길, 샛길. 이렇게 8개의 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샛길은 좁은 길이고 나머지 길은 좀 넓은 길로 대숲사이를 마음껏 거닐어 볼 수 있다.

죽녹원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오르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빽빽히 들어서있는 대나무 숲길을 걸으면,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이 온 몸으로 들어와 가슴을 넉넉하게 적신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림욕을 즐기고 난 후 죽로차 한 잔으로 마음의 여유까지 느껴볼 수 있는 죽녹원은 그야말로 대나무들의 천국이요, 삶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피안의 언덕이다.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정자와 1박 2일 촬영지, 영화 '일지매'촬영지 등의 푯말이 오고 가는 발길들 붙잡고 망중한의 시간 함께 보내자 한다.

죽녹원을 끝으로 가족들은 각자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버이와 가족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감사 가득, 희망 가득 그 자체다.

세상이 달라져 명절 때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명절을 쇠기 때문에 더욱 고향과 멀어진 삶을 살아온 가족들이 모처럼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께 효도하고, 고향 산천 둘러보며, 깊은 향수와 추억에 젖고, 가족간 오붓한 정 나눈, 가정과 가족, 효도라는 의미를 새롭게 되새긴 어버이와 함께한 '짧은 만남 긴 행복'의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