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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출정전 계백과 아내의 장면이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5적들 장면과 교차하며 반복된다.
▲ 연극 <불가불가>의 대표적인 장면 전투 출정전 계백과 아내의 장면이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5적들 장면과 교차하며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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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도 없는 파격, 극중극 형식의 부조리극

커튼콜도 없다. 더구나 이 연극의 마지막 대사는 참으로 놀랍다. 극중 연출역을 맡은 배우가 관객들을 향해 "도대체 당신들 뭐요? 다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러고는 끝이다. 일부 관객들은 어리둥절해져서 대체 이 연극이 끝난건지 아닌지 몰라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떨떨해 하기도 한다.

지난 토요일인 5월 9일부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상연중인 제30회 서울연극제 참가작 <불가불가>는 1987년 이현화작, 채윤일 연출로 초연되었으며 우리 역사의 암울했던 5가지 장면들을 모아 극중극 형식의 부조리극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 <불가불가> 연습장면 및 출연진, 연출 인터뷰 제30회 서울연극제 참가작인 <불가불가>의 연습실을 찾아 연습장면과 출연진들, 연출가의 인터뷰를 담아 보았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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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현화의 연출에 가장 적합하다는 채윤일이 이번에도 초연과 마찬가지로 연출을 맡았고 채윤일의 오랜 인연으로 단지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후배 배우들에게 듬직할 수 밖에 없는 원로배우인 김인태와 박웅, 이호재를 출연시킴으로써 튼튼한 버팀목 역할이 되어 주었다. 사실 눈에 띄기는 젊은 두 남녀배우와 연출역을 맡은 이호재, 이 세사람이 가장 두드러졌지만 김인태와 박웅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연출역을 맡은 이호재는 이 극의 실제 연출가인 채윤일과 많이 닮아 있었다. 채윤일은 극에서와 같이 폭력적이진 않지만 기자가 찾았던 실제 연습실에서의 연기지도 장면이 극중 연출역과 비슷했고 또 공연 전날 마지막 총 리허설 때는 남자배우역이 여배우를 안고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장면에서 정말 눈물을 흘리는게 보이지 않는다며 '한번 밤새볼까'라며 엄하게 지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가불 가'인가? '불가 불가'인가?

제목인 '불가불가'는 2가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즉, 첫번째로 '不可不, 可'는 '불가피하니 가하다'는 뜻의 긍정의 의미와 두번째인 '不可 不可'는 절대로 불가하다는 뜻의 강조로서 두번 반복한 불가불가, 이렇게 정반대의 뜻인 두 의미를 동시에 가진 묘한 표현이다. 연극 <불가불가>는 '불가불가'가 내포하는 상반된 두 의미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우리 역사에는 아주 암울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순간들이 여러번 있었고 그때마다 민족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 즉 조정중신들과 최고 위정자인 임금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 나갔다. 가장 위급한 순간에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지를 강요받게 될 때 당신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불가불, 가'인가? 아니면 '불가 불가'인가?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불가불가'라고 외치면서 '불가'인지 '가'인지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인가? 연극 <불가불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불가불가> 주요장면 및 관객 인터뷰 5월 9일, <불가불가>의 첫 공연날 주요장면과 공연후 관객들이 느낀 다양한 감상을 인터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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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도대체 뭐요? 다 나가!

무대는 한 극단의 연극 연습실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직 공연시작 전, 관객이 입장하고 있는 동안에도 배우들은 무대와 객석 등에서 공연을 준비중이다. 메이크업과 가발 등을 손질하면서 분장을 매만지고 있다. 마침내 공연시작 시간이 되고 관객들의 입장이 거의 끝나면 "어~이, 부인, 입 맞춰 볼까?", "좋아, 던져"라면서 첫 대사가 시작된다. 이어서 연극을 준비하는 여러 배우들이 각자 자기의 대사를 외우며 주고 받는다.

배우들의 연습은 극중 2장인 임진왜란, 선조와 이이, 유성룡의 10만양병설 장면에서 시작하여 3장 병자호란, 인조와 최명길, 김상헌의 대립각을 거쳐 4장인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의종과 정중부, 이의방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극중 연출자(이호재)가 등장하면서 부조리극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부분인 삼국시대 계백이 결사대를 이끌고 출정하기 전 부인과 가족을 죽이는 장면, 을사5적과 고종, 이토히로부미의 장면이 시작된다.

계백은 결사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서기전 아내를 참한다. 과연 누가 이 용맹한 장수 계백을 이지경으로까지 내몰았나?
▲ 계백과 아내 계백은 결사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서기전 아내를 참한다. 과연 누가 이 용맹한 장수 계백을 이지경으로까지 내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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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계백장군 배역을 맡은 남자배우는 계속 자신이 맡은 계백장군의 역할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끊임없이 연출가로부터 꾸지람을 받게 되면서 보다 배역에 충실하려고 계속 노력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가 않은 상태다. 이해를 하려고 해도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중 어느 방송국에서 이 극단의 연습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나오는데 이 연극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5장 연습장면을 보여주던 중 계백장군역을 맡은 남자배우가 너무나 연기에 몰입하다 갑작스럽게 한 선배 배우를 소품인 칼로 내려치고 이로인해 연습실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하게 된다. 소품인 칼이 가짜가 아닌 진짜 칼이었기 때문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장군 역할에 몰입하지 못해 계속 말썽을 부리던 남자배우가 대체 어떤 이유에서 아무런 악의적 감정도 가질 수 없는 대선배 배우를 총연습중에 갑작스럽게 소품인 칼로 내려치는 사태로까지 치닫게 된 것일까? 이 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극중 남자배우가 이런 난동을 일으키기까지의 심리변화를 쫓아가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가 무엇 때문에, 왜 그랬을까?

맨 좌측에 서 있는 김인태는 을사5적중의 하나인 외부대신 박제순역을 맡았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위협 앞에 '불가불가'라는 애매한 표현을 외친다.
▲ 을사5적 박제순역의 김인태 맨 좌측에 서 있는 김인태는 을사5적중의 하나인 외부대신 박제순역을 맡았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위협 앞에 '불가불가'라는 애매한 표현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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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맡은 배역인 계백의 역할과 그가 칼로 내려치는 선배배우(김인태)가 맡은 배역을 잘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해답은 또한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극의 맨 마지막 대사인 "도대체 당신들 뭐요, 다 나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인 것이다.

극중에서 계백장군의 출정장면과 을사5적과 이토히로부미의 장면이 계속 대비되며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 역시 중요한 암시가 숨어 있다. 전략과 전술, 그리고 그 두가지 모두에 우선하는 것이 정략이라는 극중연출가의 연기지도 부분이 이 암시를 푸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 계백은 가장 소중한 가족을 먼저 죽여가면서 죽을 것이 뻔한 적진으로 내몰려야만 했던 것일까? 도대체 전략에 우선하는 정략이란?

<불가불가>가 오늘날 당신들에게 던지는 질문 

연극 <불가불가>는 파격적 형식의 부조리극이라 언뜻 난해해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매우 단순한 주제극이다. 주제의식에 매우 투철할 뿐만 아니라한 주제 역시 상당히 뚜렷한 편이다. 즉, '불가불, 가'와 '불가 불가'의 이중적 의미를 통해 표현 하듯이 역사의 어느 중요한 순간 앞에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나타내지 못하고 항상 어정쩡하고 모호한 자세를 취하는 어떤 이들을 비꼰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관객인 당신들일 수도 있다.

2MB시대에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정책들인 이른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의료 영리화, 방송법 선진화 등 수많은 현안들에 대해 과연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 '불가불, 가'인가 아니면 '불가 불가'인가?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극중 상서령 역을 맡은 김인태가 외치던 '가'인지 '불가'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채로의 그냥 '불가불가'인가? 연극 <불가불가>는 바로 '당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들 도대체 뭐요?"라면서.

연극<불가불가>는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오는 15일까지 상연한다.

일본군과 이토히로부미의 협박에 당면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책임을 중신들에게 떠 넘기고 만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미루고 만 것이다.
▲ 을사늑약의 책임을 중신들에게 떠넘기는 고종 일본군과 이토히로부미의 협박에 당면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책임을 중신들에게 떠 넘기고 만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미루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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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게 잡혀 고문당하는 아내를 죽일 수 밖에 없는 독립군 장군,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 아내를 죽여야 하는 독립군 장군 일본군에게 잡혀 고문당하는 아내를 죽일 수 밖에 없는 독립군 장군,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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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인들이 독립군 장군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전기고문하는 장면
▲ 독립군 아내의 전기고문 장면 일본군인들이 독립군 장군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전기고문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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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죽이고 통곡하고 있는 독립군 장군
▲ 아내를 죽이고 통곡하는 독립군 장군 기어이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죽이고 통곡하고 있는 독립군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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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중인 극단의 배우들과 연출가가 방송촬영에 어느 장면을 보여줄것인가를 의논하는 장면
▲ 총 연습중인 극단의 배우들 연습중인 극단의 배우들과 연출가가 방송촬영에 어느 장면을 보여줄것인가를 의논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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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불가불가, #서울연극제, #채윤일, #박웅, #김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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