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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내릴 데가 되었구나 싶어 가방을 메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전철이 동인천역으로 들어가며 빠르기를 늦추는 동안, 인현동 골목집들 사이로 하얗게 꽃을 피운 꽃나무와 보라빛으로 꽃을 피운 꽃나무가 보였습니다. 이곳 인현동 골목길은 구청인지 시청인지 높은 울타리를 세워 안쪽 집이 바깥과 꽉 막히도록 되어 있기에, 이 안쪽에 이런 골목집들이 있는 줄 모르는 인천사람이 많습니다. 또 인현동 골목길 한켠에 불빛 빨간 다닥다닥 집들이 있어, 낮에 이 앞을 지나다닐 때에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도 합니다.

아침에 다른 바쁜 일이 있지만, 열 일 젖혀 놓고 저 꽃나무 보러 가자고 다짐합니다. 그러고는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해바라기하는 아저씨 옆에 나란히 서서 골목나무를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바야흐로 골목길마다 꽃내음 바람내음 흙내음 사람내음 물씬 풍겨 나는 봄이 되었습니다.

내 발을 잡아끄는 꽃나무를 전철에서 내려다보고는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내 발을 잡아끄는 꽃나무를 전철에서 내려다보고는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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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도 시청도 심지 않은 수수꽃다리는, 골목길 사람들이 심어 가꾼 꽃나무입니다.
 구청도 시청도 심지 않은 수수꽃다리는, 골목길 사람들이 심어 가꾼 꽃나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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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면 수수꽃다리 내음을 맡으려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해마다 봄이면 수수꽃다리 내음을 맡으려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돌아다닙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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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어여쁜 꽃망울만 보이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저렇게 조그마한 헌 통에다가 심은 꽃나무임이 보입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어여쁜 꽃망울만 보이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저렇게 조그마한 헌 통에다가 심은 꽃나무임이 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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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있잖습니까. 이 꽃이 피기 앞서까지는 언뜻 보면 우중충한 골목길이었는데, 그예 시에서 외치듯 ‘도시정화를 해야 할 곳’으로 여길 수도 있었을 텐데, 수수꽃다리 활짝 핀 봄날에는 골목이 아주 환하게 살아난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있잖습니까. 이 꽃이 피기 앞서까지는 언뜻 보면 우중충한 골목길이었는데, 그예 시에서 외치듯 ‘도시정화를 해야 할 곳’으로 여길 수도 있었을 텐데, 수수꽃다리 활짝 핀 봄날에는 골목이 아주 환하게 살아난 듯한 느낌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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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수수꽃다리는 많지는 않으나, 골목마다 꼭 한 그루쯤은 만나게 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꼭 한 그루씩. 인현동에서도 금곡동에서도 율목동에서도 …….
 게다가 이 수수꽃다리는 많지는 않으나, 골목마다 꼭 한 그루쯤은 만나게 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꼭 한 그루씩. 인현동에서도 금곡동에서도 율목동에서도 …….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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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우내,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잊었습니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꽃을 보며, 야 수수꽃다리 예쁘게 피었네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그러다 다시 겨울을 맞이하면 무슨 꽃나무였는지 잊을 테지요.
 지난 겨우내,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잊었습니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꽃을 보며, 야 수수꽃다리 예쁘게 피었네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그러다 다시 겨울을 맞이하면 무슨 꽃나무였는지 잊을 테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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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수꽃다리만 어여쁘지 않습니다. 다른 꽃나무도 어여쁩니다. 그리고, 이 어여쁜 꽃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아끼고 보듬으며 기르는 골목사람들 손자취 고스란히 남은 호젓한 골목을 거닐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늘 맑고 싱그러운 마음을 기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수꽃다리만 어여쁘지 않습니다. 다른 꽃나무도 어여쁩니다. 그리고, 이 어여쁜 꽃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아끼고 보듬으며 기르는 골목사람들 손자취 고스란히 남은 호젓한 골목을 거닐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늘 맑고 싱그러운 마음을 기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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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요. 꽃이든 나무이든 나라에서 돈들여서 찻길에 주욱 심어 놓는다고 거리가 환해지지는 않잖아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수 가꾸고 돌보고 보듬으며 하나둘 가꾸는 꽃과 나무야말로 동네를 환하게 밝히잖아요.
 그렇잖아요. 꽃이든 나무이든 나라에서 돈들여서 찻길에 주욱 심어 놓는다고 거리가 환해지지는 않잖아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수 가꾸고 돌보고 보듬으며 하나둘 가꾸는 꽃과 나무야말로 동네를 환하게 밝히잖아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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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맡에서 지도책을 펼치면 온통 가난한 ‘달동네’이니 싹 쓸어내고 아파트 올려세워야 될 듯 보여지겠지만, 책상맡에서 박차고 일어나며 지도책을 탁 덮고 바깥으로 나와 뚜벅뚜벅 골목길을 거닐면, 이곳에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나무를 심고 가꾸고 나누려 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개발이라면, 이런 우리들 마음을, 사람들 마음을 껴안으려는 개발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요.
 책상맡에서 지도책을 펼치면 온통 가난한 ‘달동네’이니 싹 쓸어내고 아파트 올려세워야 될 듯 보여지겠지만, 책상맡에서 박차고 일어나며 지도책을 탁 덮고 바깥으로 나와 뚜벅뚜벅 골목길을 거닐면, 이곳에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나무를 심고 가꾸고 나누려 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개발이라면, 이런 우리들 마음을, 사람들 마음을 껴안으려는 개발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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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골목길, #골목꽃, #인천골목길, #수수꽃다리,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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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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