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불법비자금과 경영권 승계, 정관계 로비 등에 대한 폭로는 큰 충격이었다. 이는 삼성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발표(작년 4월 17일), 총수인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4월 22일)으로 이어졌고 삼성 최고경영진들은 줄줄이 법정에 섰으며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 회장이 없는 지난 1년, 삼성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는 어떻게 될까. <오마이뉴스>는 이 회장 퇴진 1년의 삼성을 되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세번째는 이재용의 삼성시대를 둘러싼 여러 과제들을 풀어본다. [편집자말]
지난 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4.11)과 아들 이재용 전무(2.28)가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어 승강기를 타고 있다.
 지난 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4.11)과 아들 이재용 전무(2.28)가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어 승강기를 타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7월 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 4월부터 시작됐던 삼성특검 재판의 여섯번째 공판일이었다. 이날 공판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삼성 재판 후 처음으로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장남 이재용씨가 나란히 재판정에 섰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들쑤셨던 삼성사태에 대한 이들 부자(父子)의 첫 공개적인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은 무려 10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됐다. 200여 석에 달하는 방청석은 삼성의 내로라는 사장단 인사부터 고위 임원들의 차지였다.

증인 신분이었던 이재용 전무가 법정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1시 15분께였다. 방청석에 앉았던 그의 표정은 다소 긴장돼 있었다. 5분 후, 이건희 전 회장이 변호인의 부축을 받으며, 피고인석에 앉았다.

삼성의 아버지와 아들, 재판정에 같이 서다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해 7월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은 뒤 여유있는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해 7월 16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은 뒤 여유있는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 전무가 증인석에 오른 것은 오후 2시 55분께.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이 전 회장의 잠시 퇴정을 요청했지만, 이 전 회장은 "그대로 있겠다"면서 자리를 지켰다. 이후 1시간여 동안 아버지는 범죄 피의자 신분의 피고인으로, 증언석에서 특검의 신문을 받는 아들을 지켜봤다.

특검은 이 전무를 상대로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를 통한 재산증식 과정과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전무는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다. 그는 특검의 질문에 시종일관 "당시에는 몰랐다", "기억에 없다", "나중에 알았다", "나중에 들었다"고 답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특검 신문이 끝나자, 재판부는 이 전무에게 자신의 경영권 승계문제로 이같은 상황까지 온 데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그는 "법대 교수님들이 고발했을 때는 신경이 쓰여서, 비서실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비서실에서 '계열사 사장님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했으니 걱정할 필요없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법학 교수의 고발이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도덕적으로도 다시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다는 것인가"라고 되묻자, 이 전무는 "지금 생각해 보니, 재판장 말씀대로 두 가지 다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간단히 말했다. 마지못해 어정쩡하게 말하는 모습이었다.

'삼성의 차기총수 이재용'을 둘러싼 과제들

이 전무의 법정진술이 의미 있던 것은 그동안 그를 옭아맸던 '세금 없는 대물림'에 대해, 국민들에게 좀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실 이 전무는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얻기도 했지만, 반대로 가장 큰 피해자일 수도 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에버랜드 헐값 매각이 이뤄졌던 시점에, 그는 20대 해외 유학생 신분이었다"면서 "이 전무가 이번 사건에 직접 관여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최대재벌의 후계자로서  이 전무가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먼저 숙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의 한 고위인사는 "어차피 삼성은 이재용 시대로 가게 돼 있는 상황 아닌가"라며 "불법이든, 편법이든 사회적 논란까지 불러온 경영권 승계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털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래야 앞으로 수십만명의 직원과 가족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 힘을 받을 수 있다"면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있는 것인 만큼,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풀고,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지난 해 2월 28일 밤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서 소환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지난 해 2월 28일 밤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서 소환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이 이재용의 삼성시대를 열기 위한 첫번째 숙제라면, 그 스스로 최대재벌 삼성을 이끌수 있는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두번째 숙제다.

이건희 전 회장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분명하다. 이 전 회장은 작년 삼성사건 재판 과정에서 향후 경영승계에 대한 질문에, "우선 자금 여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또 이재용 본인의 능력이 닿아야 하고, 그 능력이 후계자로서 적당하지 않으면 절대 (그룹을) 이어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무는 그동안 뚜렷한 경영 실적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는 지난 99년 닷컴열풍이 풀면서, 2000년 자본금 100억원 규모로 'e-삼성'을 설립해 인터넷 관련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2001년 3월부터 삼성전자 상무보로 본격적인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거나 주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삼성전자 전무로 최고고객책임자(CCO)라는 다소 생소한 직함까지 받기도 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마저 이 전무는 작년 4월 삼성 쇄신안 발표에 따라 최고고객책임자 자리를 내놓고, 해외를 돌며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 등지를 다니면서, 세계 주요 전자업체 CEO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내외부에선 지난 1월 대대적인 인사개편으로 사실상 '이재용의 삼성 체제'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계열사 사장이나 임원들과의 접촉을 꾸준히 늘려왔고, 해당 회사들의 경영상황도 비공식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재용의 삼성체제 사실상 가동중... 여동생들과의 재산 분할도 관심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삼성의 전직 고위인사는 "지난번 사장단 인사 면면을 보면, 본격적인 이재용의 삼성 체제를 가동하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보면 된다"면서 "(여)동생들과의 사업 분할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짧게는 1~2년 안으로 이재용 중심의 삼성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이재용 전무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삼성 곳곳에 새겨놓은 경영 철학과 방향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도 "지난 1월 삼성의 사장단 인사 등을 통해 삼성은 사실상 이재용의 삼성시대를 열기 위한 과도기 체제를 꾸린 것"이라며 "문제는 삼성 계열사들의 독립경영뿐 아니라, 이재용 전무가 과연 거대 삼성을 이끌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았느냐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이재용 전무가 향후 삼성의 미래의 먹거리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국내외 주요 경영진을 만나면서 경영수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재계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이건희 전 회장의 건강 불안 문제나, 이 전무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의 부상도 관심거리다.

이 전 회장의 경우 이미 올 들어서만 수차례에 걸쳐 삼성 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삼성에선 '독감 증세' 또는 '정기 검사' 등의 이유를 들기도 했지만, 재계 일부에선 이 전 회장의 건강 상태가 전보다 나빠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특히 자신의 외아들인 이 전무가 전격적으로 이혼하면서, 적잖은 충격과 함께 건강도 악화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이 전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39) 호텔신라 전무가 최근 그룹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삼성그룹의 재산분할 구도를 둘러싼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에선 이재용 전무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생명 등 주력계열사를 맡고, 큰딸인 이부진 전무가 호텔신라와 삼성물산, 에버랜드의 레저와 서비스 사업 등을, 둘째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가 제일모직 등 패션관련 사업 등을 떠맡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태그:#이건희, #이재용, #삼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