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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무원이 복지 수당을 횡령했다는 기사가 언제부터인가 거의 매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강도 높은 감사가 진행되었고, 자정을 위한 계획을 지방자치단체마다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복지 수당을 횡령하는 수법을 심층 분석해서 보도했고, 이 기사를 본 국민들은 분노했다. 횡령할 돈이 없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그 돈을 횡령하냐며 분개했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내가 세금을 그렇게 내도 옆집에 사는 독거노인이, 앞집에 사는 소녀가장이 아무런 해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이 시점에서 매사에 음모론을 즐기는 필자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복지 수당을 공무원들이 횡령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텐데 왜 갑자기 호들갑일까? 아, 물론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복지 수당을 공무원들이 횡령해도 상관없다거나, 강도 높은 사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복지 수당을 횡령한 공무원을 엄하게 징계해야 하며,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강도 높은 사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일까라는 음모론에 약간이나마 경도되는 이유는 약간의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의 의문은 징계나 사정과는 약간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내게 떠오른 의문은 이것이다. 복지 수당을 횡령한 공무원을 엄하게 징계하고 강도 높은 사정을 하면 옆집에 사는 독거노인과 앞집에 사는 소녀가장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라는 아주 멍청한 질문이 떠오른 것이다.

 

복지는 확대되나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한국의 복지는 무척 단순했다. 1961년에 재정된 '생활보호법'에서 제공하는 생계급여의 책정과 지급이 사회복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에 구축된 복지가 복잡할 이유는 없었다. 시·군·구 내지는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 있는 공무원이 해당 업무를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시스템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단지 복지 업무만을 전담하는 담당 공무원이 배치되었을 뿐이다. 1인 통합 업무 시스템은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복지가 큰 변화 없이 지속되는 동안 사회적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했고 이에 따라 복지 환경도 달라졌다. 복지 예산은 그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의료, 교육, 보육, 자활, 고용 등 요구되는 사회서비스의 영역도 계속 확장되었다. 단순하게 굶어죽지 않도록 수당을 제공하는 것에 머물렀던 복지가 다양한 영역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복지 환경의 변화에는 외환위기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안전망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대량 실업 사태는 국가 자체를 뿌리 채 흔들 수 있으며, 복지의 급격한 확대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전통적으로 복지를 담당했던 가족의 해체와 실업의 증가는 역설적이게도 복지의 확대를 만들었다.

 

2004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복지 예산은 5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복지 예산의 증가 없이는 사회 유지가 힘들었을 것이다. 2004년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사무소 시범사업 기본계획>에서 당시 복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지난 5년간 복지 예산은 3배 이상 증가했으나, 국민의 복지 체감도는 정체'됐으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서비스의 질적 개선도 시급'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평가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08년 12월에 발표한 '2009 연두업무보고'인 <선제적 위기 대응으로 국민의 삶을 지키는 복지 정책>에서 '지난 5년간 복지예산 규모는 급격히 증가했으나(연평균 14.6%), 국민 체감도는 낮고 부정·중복 수급 등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도 계속 제기'된다고 평가한다.

 

복지에 대한 잘못된 진단

 

복지 예산이 증가했지만 비효율성에 의해 체감도가 낮다는 이런 평가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평가다. 김영종(2006,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현황과 개선 과제)이 지적했듯이 이전에는 '복지 공급량의 절대적 부족'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복지 체감도가 낮다고 진단했다면, 참여정부에 들어서면서 진단을 다르게 한다. 복지 공급은 충분하지만  전달체계가 비효율적이어서 전달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을 바꾸게 된다.

 

현상적으로 보면 복지가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5년 동안 3배 이상의 증가를 보인 것이나, 그 후 5년 동안 연평균 14.6%의 증가를 보인 것도 현상적으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현상일 뿐이다. 월급 10만 원에 주 80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시키는 사업장이 월급을 300% 인상했다고 가정해보자. 현상적으로는 획기적인 증대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월급을 충분하게 인상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300% 인상에도 불구하고 주 80시간 노동에 월급 30만원은 아직도 극악한 노동 착취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복지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8년도 보건복지가족 통계연보>에서 '국제통계'를 보면 2003년 현재, OECD 국가 중에서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한국이 5.69%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복지 지출'도 15% 미만의 국가는 한국과 멕시코 말고는 없으며, 회원국의 72.4%가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을 20% 이상 하고 있다. 이는 GDP 대비 복지 지출이 앞으로 최소한 3배에서 4배는 이상은 증가해야 OECD 최소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복지의 공급이 워낙 적다보니 복지의 대부분을 공공부조가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이 좋아 공공부조지 쉽게 말하면 국가에서 굶어죽지 않게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공공부조다. 공공부조는 어느 사회어서든 꼭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공공부조가 미흡했던 나라들은 대규모 폭동 내지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의미에서 공공부조는 굶주린 백성이 굶어죽거나 아니면 굶어죽지 않으려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의미가 있다. 이는 굶어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이라는 의미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현재 한국의 복지는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수당형 복지 예산이 전체 예산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복지가 아직까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공부조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획기적인 복지 예산의 증액을 요구한다.

 

잘못된 진단, 잘못된 처방

 

분명 예전에 비해서 복지 예산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복지의 절대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 현실에 대한 진단이 다르다. 복지에 대한 진단이 달라지면 처방도 달라진다. 전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가장 시급한 처방은 식량을 보다 많이 확보하는 것일 수밖에 없지만, 식량이 충분하거나, 조금 부족한 정도라면 식량의 확보보다는 배급 체계의 효율적 개선이 가장 시급한 처방이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지에 대한 진단의 변화는 처방의 변화를 가져온다. 앞집에 사는 독거노인과 옆집에 사는 소녀가장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예전에는 복지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라고 보았다. 당연히 그 처방은 복지 공급의 절대적 확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진단이 달라졌다. 복지의 공급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앞집에 사는 독거노인과 옆집에 사는 소녀가장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로 '부정·중복 수급 등 비효율성'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 지금은 복지 공급의 확대보다는 부정 중복 수급을 막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이명박 정부의 복지 개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 첫 번째는 복지 체감도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고 두 번째는 복지의 부정·중복 수급 방지를 통한 효율성 제고다. 실제로 복지는 엄청나게 좋아졌는데 국민들이 알지 못하니 정부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첫 번째 복지 개혁의 내용이라면, 두 번째 복지 개혁의 내용은 복지 예산을 횡령하는 공무원을 때려잡고, 별 효과 없는(?) 복지 제공기관과 복지 서비스는 과감히 없애서 예산을 획기적으로 절약하는 것이다.

 

 

첫 번째 복지 개혁은 전자바우처를 통해 주로 진행된다. 아이사랑 바우처가 대표적인 예이다. 5세 아이의 맞벌이 부모가 월 32만 8천 원을 지불하고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낸다고 하자. 그 부모는 한숨을 쉬며 정부의 보육 정책 부재를 비판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꼬박 꼬박 걷어가는 세금이 아까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보육 정책을 변화시키거나 실질적인 보육 예산을 증가시키는 것보다는, 맞벌이 부모에게 '실제 보육료는 월 50만원인데 정부에서 17만 2천원을 매달 지원해서 월 32만 8천원으로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절실했다.

 

아이사랑 바우처가 도입되기 전에도 보육은 묵시적 바우처 방식으로 지원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 효과는 부모가 얼마나 지원받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 말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를 알려주기 위해 카드 수수료만 최대 400억에서 500억 원 정도(2008년 참여연대 추정)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본인이 보육료 지원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정확한 액수를 알려주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아이사랑 바우처가 복지 체감도를 제고하기 위한 대표적인 전시행정이라면, 요즘 신문지상에 종종 등장하는 공무원의 복지 예산 횡령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은,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부정·중복 수급방지를 통한 복지 시스템의 비효율성 개선의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복지공급은 충분한데도 앞집에 사는 독거노인과 옆집에 사는 소녀가장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충분히 하고 있는데 단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모를 뿐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복지 공급이 충분하면서도 앞집에 사는 독거노인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책임을 부정·중복 수급과 공무원 비리로 전가해 버린다. 우리의 복지 예산은 너무나 충분한데 부정·중복 수급이 있고 공무원들이 중간에서 횡령하고, 제공기관이 대충 대충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이 줄줄 새고 있기 때문에 앞집에 사는 독거노인과 옆집에 사는 소녀가장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줄줄 새는 복지 예산을 실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쓰여질 수 있도록 횡령을 막고 복지 개혁을 단행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확실히 해야할 일이 있다. 복지 체감도의 하락과 복지 비효율성, 복지 예산의 낭비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복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의 복지 예산은 보다 획기적으로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복지는 로또가 아니다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은 복지에 대해서 "예산은 많이 늘어났으나, 시스템은 옛날 것이므로 선진국 사례를 참고하여 개선해서 국민만족도를 제고"하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복지 공급은 이제 충분하니 스웨덴과 같은 복지 선진국의 복지 시스템을 도입하여 복지를 발전시키자는 주장이다.

 

사실 한국과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은 차이가 있다. 물론 후진적인 한국의 복지 시스템을 스웨덴 같은 복지 선진국의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다. 스웨덴과 한국의 GDP 차이는 무시한다 하더라도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의 차이는 거의 5배에서 6배까지 난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스웨덴의 선진적인 복지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스웨덴의 1/6밖에 안되는 복지 예산으로 스웨덴과 같은 복지 효과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지금보다 6배 이상의 복지 예산을 투입하여 스웨덴만큼 복지 예산을 늘린다면 아무리 후진적인 복지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복지 상황은 지금보다 월등히 나아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2008년 3월의 말처럼 '같은 재원으로 더 많은 대상자를 보호'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 방법을 밤 새워 찾아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복지행정체계를 개편한다고 하더라도 앞집에 사는 독거노인과 옆집에 사는 소녀가장의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복지는 로또복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가 로또복권이라면 한 큐에 대박을 쳐서 인생 역전시킬 수 있겠지만, 로또복권처럼 복지를 한 큐에 역전시킬 방법은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가 로또복권이 아닌 이상 심은 만큼 거둘 수밖에 없고, 투자한 만큼 회수할 수밖에 없다. 복지 예산을 증액한 만큼 복지 혜택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바로 그만큼만 삶의 질은 나아질 것이다. 복지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마술 지팡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직하게 자원과 인력을 장기적으로 쏟아붓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다.

덧붙이는 글 | * 이기사는 곽정숙의원실에서 진행한 연구용역보고서[현행바우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의 일부를 기사로 작성한 것입니다.

** 이기사는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복지체감도, #복지예산횡령, #복지예산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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