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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중에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강제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이) 그러고도 남지'하고 혀를 차다 순간 아찔해집니다.

 

경찰이 밝힌 강제연행의 이유가 신고된 인원 수보다 많이 모였고, 기자회견 중 구호를 외쳤으니 불법 시위이며, 인도가 좁아 차도에 한두 발짝 내려왔으니 도로교통 방해 혐의라는 것입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기막혀 할 억지 이유지요. 

 

등록금 투쟁 대학생들 연행 소식에 '아찔한' 까닭

 

저도 지난해 가을, 태어나 처음으로 기자회견이란 데 참석했었습니다. 촛불유모차 수사 건 때문이었습니다. 신고된 인원보다 많이 모였다고 하니 저 학생들은 사전에 신고라도 했었나본데, 보통 기자회견은 신고없이도 가능하여 저는 사전신고도 없던 기자회견에 참석했었습니다.

 

기자회견장이었던 서울지방경찰청 앞 인도는 매우 좁아 어른이 두 줄로 서면 꽉찰 정도였습니다. 그때 저희는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어 간신히 인도에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조금만 사람이 더 많아 차도로 내려갔다면 저도 아기와 함께 연행 되었을까요?  

 

게다가 기자회견이 끝나고 어디 가서 밥을 먹을까 고민하다 다른 엄마들과 함께 일반시민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식당에 가려고 했더니, 못 들어가게 막아 아기 엄마들이 "배고파 배고파"라고 구호도 좀 외쳤더랬습니다. 이래저래 어제 연행되었던 대학생들과 '법적으로는'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한 셈이죠.

 

사람들 피해 도로로 간간이 내려오기도 했고, 구호도 외쳤으니까요. 또 취재왔던 기자분들은 분명 아스팔트에 계셨으니 다같이 한 무리로 파악해 도로교통방해로 연행이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통령에게 '공약을 지키라' 요구하다 연행되는 세상이니, 앞으로는 일반인도 없는 돈 털어 연예인처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하나 봅니다. 

 

정치 혐오, 그게 바로 노림수?

 

지난해 가을만 해도 우리가 기자회견 현장에서 연행될 수도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 학생들도 그랬을 테죠? 그러나 만약 이번 연행사건이 반년 전에만 일어났어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그래 요새 경찰이 하는 일이라면 그러고도 남지'라고 자조적으로 포기했을까요?

 

지금보다는 사회적으로 훨씬 큰 이슈가 되었을 듯합니다.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새 얼마나 많이 변해버렸는지 깨달으니, 그리고 저도 같은 이유로 연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 컵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서서히 물색이 변하듯 깨닫지 못하는 새 생각이 변한다는 비유를 들은 적 있는데 제가 딱 그짝입니다. 지난해부터 황당한 소식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이제 그런 소식 정도로는 놀라지 않을 만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자라났나 봅니다.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는 말에 비웃음이 먼저 나오게 된 지는 이미 오래이고, 억지스러운 무리한 법적용에 대한 분노도  더 이상 생기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러다 투표도 않고 정치사회 관련 이슈에는 더이상 눈길조차 주지않는 정치혐오론자가 되기 십상이겠습니다. 그게 결국 정권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일까요?

 

진보로 일컬어지는 언론에서 다루는 고발성 소식을 접해도 이렇게 무의식중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의도적인 왜곡 기사들만 접한다면 몇 년 뒤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하기도 두렵습니다. 이래서 독재정권은 언제나 언론부터 장악하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작년부터 YTN, MBC 등 언론에 관한 이슈들이 참 많았습니다. 새해벽두부터 KBS의 보신각 타종식 현장중계 왜곡 사건은 정부의 언론 장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줘 참 가슴 아팠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언론에 관한 소식들이 끊이지를 않았지요. 

 

<PD수첩> 소환 이유가 기가막혀

 

얼마 전에도 <PD수첩>의 작가, PD분들을 소환하고, 소환을 거부하자 납치에 버금가는 강제연행 작전을 펼쳤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저희 일을 (유모차부대 수사건) 다뤄주셨던 분들이라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가 기사를 보다보니, 소환 이유가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의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라고 해 기가 막혔습니다.

 

게다가 처음 그 사건을 맡았던 담당 검사님은 명예훼손이 성립되기 힘들다고 하다 결국 물러나셨다 하니 한층 더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검찰이 이 정도까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아무래도 작년의 촛불시위가 <PD수첩>에서 비롯되었다고 아직 착각하기 때문인듯합니다. 

 

사실 저는 광우병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내용 대부분을 보수언론으로 일컬어지는 신문에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알게 되었습니다. 먹거리의 안정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대부분의 주부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같은 경로를 통해 잘 알고 있던 내용이었을 겁니다.

 

정작 문제의 <PD수첩> 본방송은 보지도 못했지만, 동영상 스틸화면과 내용 요약을 인터넷에서 보니 제가 신문에서 보아 알고 있던 것에 비하면 방송이라 그런지 신문보다 훨씬 부드러운 내용이더군요. <PD수첩>보다 훨씬 과장되었던 그 기사들이 나왔던 신문사는 왜 조사하지 않는지 약간은 신기합니다. 또 한 번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드네요.

 

지난해 가을 멜라민 파동 그리고 최근 석면 탈크 파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정부는 왜 국민들이 광우병에 관해서만 대규모 촛불시위를 일으켰는지 그 이유와 차이에 대해 깨닫지 못할까요. 멜라민과 석면 탈크에 대해서는 전면 수입을 차단하는 등 발빠른 대처를 보였지만, 광우병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고 우기는 대응으로 일관했지요.

 

뿐인가요? 국민의 세금으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신문광고를 내는 촌극을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 학부형들에게 가정통신문까지도 돌렸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우리가 반발한 가장 큰 이유인데 왜 모를까요?

 

정운천 전 장관님, 오바마도 고발하실 겁니까

 

요새 보도되는 석면탈크 위험성 기사를 보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사실 꽤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다루는 언론을 욕하진 않습니다. 그게 언론이 원래 해야할 일이니까요. 국민 건강과 안전에 대한 조금의 위험이나 의혹이 있다면 밝혀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 말입니다. <PD수첩>도 그와 마찬가지로 꼭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PD수첩>에 대한 경찰의 조사내용을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습니다. 외국산 식품 수입통관에 관한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해당 부서 장차관의 명예훼손이라는 억지도 재미있지만, 의도적인 왜곡에 대한 억지가 특히 백미입니다. 다우너소가 광우병이 아닐 수도 있는데 광우병으로 인식되게끔 한 것이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것입니다.

 

방송 내용은 다우너 소도 도축유통되는 미국소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니 그것이 광우병이든 식중독이든 별반 차이가 없는데 농림부에서는 다우너소도 절대 안전하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도 다우너소의 위험성을 인정하며 식용으로 도축유통하지 말 것을 법제화한다고 하니, 안전한 미국소에 거짓 누명을 씌워 전직 농림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오바마 대통령도 곧 고소될 듯합니다. 

 

이 사건의 고소인인 정운천 전 장관님과 관련해 한 가지 기억이 더 떠오릅니다. 최근 캐나다가 미국산 소와 같은 조건인(사실은 미국보다 검역기준이 더 나은) 캐나다 소를 수입하지 않는다고 WTO에 한국을 제소했다는 소식이 있었지요. 작년 미국과 쇠고기 수입협상이 타결될 때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미리 경고 했었는데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네요.

 

전 장관님은 작년 5월 초 기자회견에서 "일본 중국 대만 등은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쇠고기를 허용한다는 입장"이라고 했었지요. 1년 가까이 지난 아직까지도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 자체를 수입하지 않고 일본은 20개월 미만만 허용하며, 타이완 홍콩은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한다고 하니 전 장관님을 대국민 사기죄로 고발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입니다. 

 

검찰의 압수수색, 거참 야릇하네

 

<PD수첩> 조사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체포작전, 원본 확보를 위한 MBC 압수수색 시도와 함께 방송작가의 통화내역, 이메일 압수수색 기사를 보고 참 '야릇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모차 부대 수사에 대한 <PD수첩>을 촬영하면서 주로 방송작가와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은 아는 만큼만 생각하게 된다고, 그 조사의 목적이 언론과 취재원에 대한 무언의 협박이라고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조사자료가 본방송이면 되었지 원본과 제작진의 소환, 기타 자료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반 년 전 경찰의 조사대상이 되면서 저도 말로만 듣던 짜맞추기 수사란 것이 무엇인가를 경험했습니다. 처음 경찰이 연락도 없이 집으로 찾아올 때만해도 아줌마들 겁 줘서 더이상 못 나오게 하려는 건가 보다 순진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조사를 받으면서 느낀 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억지로 꿰어맞추기 위해 명목상의 혐의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들을 반복하며 그 정답을 향해 답을 유도하더군요.

 

조사 당시엔 몰랐으나 몇 달 뒤 다른 사람에게 저의 사전지령(?)으로 인원을 동원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고 듣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과 저는 당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는 걸 경찰이 좋아하는 통화내역 추적을 해보면 금세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아마 PD, 작가들을 소환해 조사할 때도 이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만약 저희에 관한 방송 원본이 압수되어 그것이 조사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또다시 아찔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그것을 근거로 경찰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라도 하면 다른 나라에서 해외토픽에 나올지도 모를 일이군요. 우리나라가 이런 방향으로 더이상 유명(?)해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살림하는 아줌마도 느끼는 언론탄압은 그만! 

 

소비자의 정당한 불매운동을 처벌하면서까지 신문언론의 자유를 지켜주는 우리나라 검찰이 MBC에는 취재원 보호도 보장해주지 않으려 합니다. 굳이 <PD수첩>에 공개적으로 출석을 요구하고 수사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다른 모든 방송들을 위축시키기 위함이겠지요?

 

무죄추정원칙과 사생활 보호는 장자연 리스트의 신문사주에게나 통용되나 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이 언론탄압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수치감과 훼손된 명예는 어디에 고발해야 받아줄까요?

 

이런 검찰 조사들로 언론을 위축시키고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잠재워 얻을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결국 사법 기관의 위상 추락으로 인한 국민들의 법치주의 불신의 최대 피해자는 검·경찰이 될 터인데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조사 자체가 원칙도 없고 언론탄압으로만 보이는데 어떻게 명예훼손이 성립되는지 검찰에서 먼저 발표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겸사겸사 고소인의 이전 발언에 대한 근거도 조사하고 책임도 좀 물어주면 더 좋을 듯합니다. 또한 형평성을 위해 몇 년 전 같은 내용의 기사를 냈던 신문들도 소환하고 가택 압수수색해 주시고요.  

 

물론 이런 모든 것에 앞서 미국소가 100% 안전하다는 것이 대전제이니만치 그 안전성을 외쳐온 농림수산부와 청와대를 비롯한 검·경찰 등 모든 관공서 식당에 미국소를 사용해 최소한 그들은 그 안전성을 믿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먼저가 되어야겠지요?

 

동물나라 기자인 거북이의 입에 나뭇가지를 물려 새들이 붙잡고 하늘로 날아가게 한 후, 동물나라 왕은 언론자유를 발표했다는 10여 년 전 읽은 우화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온통 침울한 소식만 가득한 요새 그나마 검찰수사에 합심해 대응하는 MBC <PD수첩> 제작진의 소식은 가뭄 속 단비 같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아줌마도 언론탄압이라고 느낄 일을 누군들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역사가 기록할 것입니다. 설마 이런 일들이 10년이야 가겠습니까? 힘내십시오!


태그:#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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