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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금관총에서 나온 새 모양 금관 장식, 국립 중앙 박물관이 가지고 있음
 경주 금관총에서 나온 새 모양 금관 장식, 국립 중앙 박물관이 가지고 있음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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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경주 박물관 등 한국 유명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신라 황금 유물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 100여 점이 이 '유라시아의 바람 신라에'라는 제목으로 시가켄에 있는 미호 뮤지엄에서 특별 전시되고 있습니다.

미호 뮤지엄은 중국계 프랑스 건축가 I.M. 페이가 도화 원기를 모티브로 건물을 설계하여 지었습니다. 건물 입구의 리셉션 건물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복숭아꽃이 핀 고개에 올라 동굴을 지나 계곡에 걸친 다리를 지나면 멀리 뮤지엄 본관의 지붕이 보입니다. 이렇게 500 미터를 걸어 본관에 들어가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미호 뮤지엄은 1997년 개관한 이래 꾸준히 관람객이 늘어 매년 12만 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습니다. 현재 소장품 규모도 일본 전국 사립 박물관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소장품은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으로 전시실을 나누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호 뮤지엄에서는 신라의 황금 관모, 황금 장신구를 중심으로 유리 제품, 귀면 기와, 말 장신구, 문인상, 뿔잔 등 100여 점을 특별전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 유물과 비슷한 모양을 지닌 이란, 중국, 이집트, 일본 등 각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유물을 비교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신라를 시라기라고 합니다. 이 말에 대해서 국문학자인 양주동 박사는 고가연구에서 일본서기에 신라성(新羅城)이라고 적힌 것을 일본사람들은 가나식 읽는 법으로 시라기로 읽는다고 하였습니다. 성(城) 자는 한국 고유어로 잣, 재, 디, 기 등으로 읽힙니다.

인류학자들은 신라를 시라기라고 하는 것은 시라(白)와 기(木)의 합성어로 보았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시라기인 백화나무, 자작나무를 잘 활용하였고,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신라 사람들을 하얀 나무 즉 자작나무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시라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두 의견은 신라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각각 의미가 있습니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상이 그려진 말다래(말 옆구리에 드리워 흙이 튀어 오르지 않게 하는 물건, 障泥)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작나무껍질은 질기고 기름기가 많아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질되지 않고 잘 보존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은 이 자작나무 껍질을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었다고 합니다. 이 자작나무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은 바이칼 호수 부근의 시베리아입니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초원지대는 유목민의 활동무대입니다.

이번 신라 특별전에 전시된 신라 유물은 신라 지역에서 신라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유물로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신라 사람들이 자신의 기술로 만든 것도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신라 사람들이 만들거나 유물 자체가 외국에서 들어 온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된 신라 유물의 일정한 특징은 소그드 족 유물과 비슷한 점입니다. 소그드 족은 현재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 부근을 중심으로 살던 이란계 민족입니다. 소그드 족, 소그디아나가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아케메네스 시대(BC. 6 세기)입니다. 그들은 처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유목과 농경에 주로 종사했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으로 동서 문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 무대에 등장합니다.

소그드인들은 교역 상인으로 활동하여 중국의 실크 제품, 인도의 후추, 페르시아의 은그릇 등을 교역 상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소그드인은 정착 소그드인과 교역 소그드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은 자체 문자를 가지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상호 협력하고 교역을 진행시켜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교역망을 형성하여 교역을 활성화시켜 성공하였습니다.

소그드족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다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성공한 상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문화를 바탕으로 고유의 상품을 만들어서 팔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세로짜기 비단 기법과 반대로 가로짜기 비단 기법을 사용하여 비단에 대담한 문양을 넣기도 했습니다.

성공한 소그드인들이 역사적인 전기를 맞이한 것은 안록산의 난이었습니다. 안록산은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공한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당나라 양귀비와 친한 사이였습니다. 안록산의 난이 실패한 뒤 중국에서는 대대적인 소그드인 숙청이 감행되어 소그드인은 역사에서 사라져 이란 등 이슬람 문명권에 흡수되고 맙니다.

신라 유물 가운데는 소그드인이 즐겨 사용했던 유물이 많습니다. 부산 동래 복천동에서 발굴된 마두식 각배(보물 598호, 동아대학교 소장)는 소그드 인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맹약할 때 사용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각배, 뿔잔은 신라 지역에서 오래된 것이 많이 발굴되는데 한 두 점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받침까지 같이 발굴된 것도 있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봉수형병(국보 193호, 새머리 모양 주전자, Oinocoe) 역시 소그드인이 즐겨 사용하던 주전자로 은이나 다른 금속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이 병은 페르시아, 로마 등으로 전해져 포도주를 마시는 주전자로 사용되었습니다.

경주지역 무덤의 석조 무인상들은 대부분 서역 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머리모양, 복장, 장신구 등은 소그드인과 비슷합니다. 특히 석인상 오른쪽 뒷면 허리에 새겨진 주머니(pochette)는 유목민족이 주로 사용하던 것으로 실제로 천이나 은으로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소그드인이 만든 비단은 가로짜기의 대담한 문양을 넣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원을 그리고 원 안에 동물이나 장식을 그려 넣습니다.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입수사자공작문석(立樹獅子孔雀文石) 역시 원 주위에 연주문을 그리고 원 중심에 나무와 공작 두 마리를 그리는 그림 등은 소그드인이 자주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신라 사람들은 금을 사용하여 금관을 만들거나 반지,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 다양한 장신구 등을 만들었습니다. 금을 사용하는 특별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금을 사용하는 세공 기술이나 금속으로 동물 상을 만드는 기술은 신라와 스키타이 계통의 문화가 가장 앞섰다고 합니다.

소그드인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한반도에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유물로 미루어 특히 신라와 소그드인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헌강왕조에는 처용가와 처용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전하는 처용무의 가면은 전형적인 서역 상인 소그드인이 아닌가 합니다. 처용무는 다섯 사람이 춤을 춥니다. 다섯 사람은 동서남북 중앙의 다섯을 말합니다. 방위에서 다섯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었다고 합니다. 유목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위입니다. 그래서 이 방위 개념이 처용무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역시 신라 사람들은 처음 유목 생활을 하다가 따뜻한 곳을 찾아 현재의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특별 전시를 위해 일본에 온 신라 황금 유물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들은 신라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신라 문화의 고향, 교류, 개성을 말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라의 찬란한 황금 문화는 신라에 그치지 않고 일본에도 교류를 통하여 직접 전해져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는 법] JR 오사카 역이나 JR 교토 역에서 비와꼬센(琵琶湖線) 신쾌속(新快速) 전차를 타고 이시야마(石山) 역에서 내리면 미호뮤지엄행 버스가 있습니다. 이시야마 역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쯤 걸립니다.

[참고문헌]
김달수 지음, 배석주 옮김,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대원사, 1995.
미호 뮤지엄 외 편저, 유라시아의 바람 신라에, 山川出版社, 2009.3
서정록 지음,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 학고재, 2001.
양주동, 고가연구, 박문출판사, 1957. 재판,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글을 읽다. 2008.5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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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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