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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 길가에 살짝 내려놓고 있는 책더미들이 헌책방임을 알려 줍니다.
 책방 앞. 길가에 살짝 내려놓고 있는 책더미들이 헌책방임을 알려 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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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네에서 헌책방이라는 곳

노래하는 백창우 님을 아주 가끔 만납니다. 아주 가끔 만나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으나 그냥 빙긋 웃으면서 좋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자기 꿈나라로 빠져들어 갑니다. 왜냐하면, 노래하는 백창우 님을 가끔가끔 마주치거나 만나는 곳은 헌책방이기 때문입니다. 반갑게 웃음으로 인사를 나눈 다음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찾아 책시렁에 얼굴을 박고 눈을 박고 마음을 박습니다.

예전에는 역사학자 한홍구 님을 헌책방에서 퍽 자주 스쳤습니다. 같은 날 같은 곳을 찾아가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뜻밖에도 한 주에 한 번씩 다 다른 곳에서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에 가면 만화를 그리는 조항리 님을 곧잘 만나곤 했고, 독립문에 있는 헌책방 〈골목책방〉에 가면 책마을에 오래 몸담으신 어르신을 두루 만나곤 했으며, 신촌에 있는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가면 요즈음 책마을에서 땀흘리고 애쓰는 분들을 틈틈이 만나곤 합니다.

찾아가는 헌책방마다 단골이 다르고, 갖추는 책이 다르며, 동네 느낌이 다릅니다. 흔히들, 서울이면 청계천(이제는 동묘 앞)에 가고, 인천이면 배다리에 가며, 부산이면 보수동에 가고, 광주에서는 계림동이고, 대전에서는 중앙동이고, 전주는 홍지서림 골목이고, 청주는 중앙로이며, 대구는 대구역 앞이고 했는데, 헌책방이 거리를 이루면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곳이 전국에 두어 곳이 남기는 했으나, 동네책방이 수없이 문을 닫고 사라져 가는 이즈음에는 헌책방이 거리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동네새책방만큼 동네헌책방도 수월하지 않아요. 그래도, 책을 보는 사람이 아예 사라지지 않은 터라, 달삯이 조금 눅은 동네 한갓진 곳에서 오래도록 뿌리를 내린 헌책방은 오늘 이때에도 꿋꿋하게 살림을 이어나갑니다. 동네 손님을 기다리고, 때때로 먼 나들이를 하며 찾아오는 단골을 기다립니다.

헌책방 〈혜성서림〉이 있는 혜화동에서 이곳까지 찾아오는 동네 손님은 그리 안 많다고 할 테지만, 또한 혜화동 옆에 있는 명륜동 대학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교재 아닌 마음밥을 찾아먹는 일이란 드물다고 할 테지만, 그래도 헌책방 〈혜성서림〉은 조용히 책손을 기다립니다. 동네 손님과 함께 대학생 손님을 기다립니다. 중고등학생 손님과 함께 어린 책손을 기다립니다. 나이든 뒤에도 책을 놓지 않는 손님과 함께 젊은 손님을 기다립니다. 돈벌이 일에만 바쁘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고, 애써 번 돈으로 마음을 푸지게 가꾸고파 하는 손님을 기다립니다.

 (2) 묵은 책을 뒤적이면서

때때로 살짝 쓰러져 있는 덩이를 보곤 합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똑같은 책이고, 모두들 우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때로 살짝 쓰러져 있는 덩이를 보곤 합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똑같은 책이고, 모두들 우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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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볼일이 있어 들를 때면, 꼭 그 둘레에 어느 헌책방이 있는가를 헤아립니다. 그 헌책방에 마지막으로 간 때가 언제인지를 짚으면서, 요사이 찾아가지 못한 곳을 먼저 들릅니다. 그러고 나서 볼일을 보고, 볼일을 일찍 마쳐 느긋한 겨를이 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다른 헌책방에 한 번 더 들르곤 합니다.

오늘은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 볼일이 있습니다. 길디긴 전철을 따라 서울에 와서 용산에서 내린 다음 자전거를 몹니다. 자전거한테는 마음을 기울여 주지 않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찻길을 또 한 번 느끼면서 종로3가 사진관에 들릅니다. 이마와 등판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한동안 쉬다가, 다시 자전거를 몰아 혜화동으로 갑니다. 책방 〈풀무질〉에 들르기 앞서 〈혜성서점〉으로 갑니다.

헌책방 〈혜성서점〉 앞길이며 둘레며 무척 조용합니다. 이곳은 동네가 참 조용합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보려고 두 다리로 바지런히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처음으로 걸어다니던 1994년이나 지금이나, 열 몇 해가 흘러갔음에도 그리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훨씬 앞선 예전과 요즈음도 거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발이라는 손길이 덜 뻗쳤다고 할는지 모르나, 굳이 개발 손길이 더 뻗치지 않아도 되는 한편, 지금 이대로도 사람들 살림살이가 괜찮고 동네 느낌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닐는지 생각해 봅니다. 조금만 걸어나가 혜화역 둘레가 되면 시끄럽고 복닥거리며 바글거리는데, 혜화역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호젓하면서 고즈넉한 골목길 삶터가 나오고. 부산스러움을 좋아한다면 혜화역으로 갈 노릇이고, 차분함을 즐긴다면 헌책방 〈혜성서점〉과 이 둘레 골목길 삶터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혜화역을 한복판으로 삼는 대학로에서도 차분함을 즐기고 싶다면, 그곳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책방 〈이음아트〉 나들이를 하면 되고요.

풍문여고 옛날 교지. 12호 교지입니다.
 풍문여고 옛날 교지. 12호 교지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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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아저씨한테 꾸벅 인사를 드리며 안부를 여쭙니다. 아저씨 나이도 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쉬는 날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책방 앞에서 맑은 햇살을 받으며 바깥쪽에 꽂힌 낡은 교지를 뒤적여 봅니다. 잘못 넘기면 바스라질 듯한 1950∼60년대에 나온 전주 남자중학교 《남중》, 영남중고등학교 《영남》, 풍문여자고등학교 《풍문》을 들춰봅니다. 그리 눈에 뜨이는 이름은 없고, 재미나게 읽을 만한 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묵은 책이요, 무어 읽을거리가 있겠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이 학교들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또 이무렵 이 학교를 다녔던 이름난 사람이 없다면, 구태여 이런 교지를 살펴볼 까닭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날 이 교지를 엮으면서 웃고 울었을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무렵 학교를 다니며 교지를 엮고 넘기고 뿌듯해 했을 사람들과, 그무렵 학교 문턱을 못 넘던 사람들을 함께 떠올려 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 엮은 교지를 떠올립니다. 지금 제 후배 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교지를 더는 안 엮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을 글도 읽을 글도 엮을 글도 나눌 글도 없다는 소리인가 싶어 서운했지만, 이보다 쓸쓸했습니다.

교지를 엮는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땅 고등학교 아이들로서는 딱히 남달리 새롭게 써서 실을 글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입시에 매여 있습니다. 자유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싱그러움을 뽐내지 못합니다. 빛나는 생각줄기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모두어 교지에 담기 어렵습니다. 교지를 엮는 뜻을 이어주던 선배가 없기도 했을 터이나, 교지를 엮는 뜻을 이어받는 후배도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는 중학교부터 입시지옥 굴레에 접어드니까요. 아니 초등학교도 입시지옥 굴레에 닿아 있으니까요.

전북 전주에 있는 남중에서 펴낸 교지 <남중>입니다. 전국 어느 곳이나 '남중'과 '남고'라고만 이름을 적는 학교가 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북 전주에 있는 남중에서 펴낸 교지 <남중>입니다. 전국 어느 곳이나 '남중'과 '남고'라고만 이름을 적는 학교가 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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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앞으로 몇 해가 더 가면, 제가 다닌 고등학교뿐 아니라 우리 나라 거의 모든 학교에서 교지를 아예 안 엮을는지 모릅니다. 몇 군데 학교에서 가까스로 이름만 이어나갈는지 모릅니다. 하기는, 요사이는 대학교에서도 교지를 잘 안 엮을 뿐더러 아주 얇고 가벼워지기까지 하는데, 고등학생 된 아이들이 무슨 교지를 엮거나 보려 할까 싶고, 교지를 들출 틈 하나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부질없는 생각이요, 쓸데없는 느낌이요, 하릴없는 몸부림인가 싶으면서도, 낯설고 물선 다른 학교 낡은 교지를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잡지 《서랑》(서울편집디자인스쿨) 1호(1992.여름)를 봅니다. 몇 호까지 냈을지 궁금한 잡지입니다. 책을 이야기하겠대서 '書'랑인 잡지라, 1990년대 첫머리 책마을 자취를 여러모로 더듬어 보게 됩니다. 이런 잡지도 있었네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한 쪽 두 쪽 넘기는데, 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꿈꾸지 않고 조촐하게 펴내던 잡지 흐름이 오늘날에는 얼마나 있는지 곰곰이 되새기게 됩니다. 잡지란 돈이 아닌 '너른 목소리'에 따라 내야 하지 않느냐고, 더 많은 독자가 아닌 더 너른 독자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한두 번 내고 끝이 아니라 열 백 천이라는 숫자를 하나하나 잇고 쌓으면서 우리 삶터와 생각이 골고루 살찔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책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책에서도 어린이책을 다루는 잡지, 청소년책을 다루는 잡지, 어른책을 다루는 잡지, 늘그막에 즐기는 책을 다루는 잡지, 동네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헌책방을 다루는 잡지, 도서관을 다루는 잡지, 책 유통을 다루는 잡지, 편집자 이야기를 싣는 잡지, 영업자 삶을 담는 잡지, 디자인과 인쇄를 말하는 잡지, 잘 팔리는 책을 알리는 잡지, 갈래에 따른 잡지, 1인출판을 보여주는 잡지, 번역을 북돋우는 잡지, 글쓰기를 이끄는 잡지, …… , 이 잡지가 있고 저 잡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고르고 너른 잡지가 저마다 제 목소리를 꾸밈없이 맑고 환하게 퍼뜨리면서 우리들 다 다른 꿈과 넋을 키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다 다른 헌책방에서 다 다른 헌책을 만나고, 다 다른 새책방에서 다 다른 새책을 만나며, 다 다른 도서관에서 다 다른 장서를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합니다.

 (3) 책 하나에는

장정일 님 산문모음 <생각>
 장정일 님 산문모음 <생각>
ⓒ 행복한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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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생각, 장정일 단상》(행복한책가게,2005)이라는 책을 봅니다. 장정일 님이 《독서일기》 말고 이러한 산문모음을 냈네, 하고 생각하면서 펼칩니다. 《공부》라는 산문모음도 있으나 《생각》이라고 책이름을 붙이다니 재미있으면서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 섣불리 붙일 수 있는 책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붙이기 어려운 책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책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가운데 '독서일기'란 이름을 함부로 내걸 수 없습니다. 아직 공부가 되지 않은 마당에 '공부'란 이름을 무턱대로 붙일 수 없습니다. 아직 깊고 널리 돌아보는 마음이 아니면서 '생각'이란 이름을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 몇 년 전, 김수영에 대해 10여 매의 산문을 써 달라는 어느 주간지의 기획 청탁을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원고청탁은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는 비장한 결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 청탁에 응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김수영에 대해 쓸 만큼 김수영에 대해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  (24∼25쪽)

차근차근 읽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원고청탁을 모두 손사래친다는 그 말은 말로만이 아닌 깊은 생각으로 돌아볼 일이 아니랴 싶습니다. 청탁을 하는 글 가운데에는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글이 있으나, 으레 글삯 몇 만 원쯤 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쓰며 먹고사는 사람으로서는 고마운 일감이요, 적잖이 보탬 되는 일거리이곤 합니다. 그렇지만 청탁글이란 '자기가 써 오는 글흐름과 어긋나'기 마련이고, '자기가 그동안 써 온 글하고 마찬가지인 글을 되풀이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청탁받은 글을 모은 산문모음을 내는 분들이 당신 책을 놓고 으레 '잡문을 모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느냐 싶은데, 아무리 '잡스러운 글'이라 할지라도 온힘을 쏟고 온마음을 바친 잡글은 '잡스러움'이 아닌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우리한테 베풀어 줍니다.

겹겹이 쌓인 책을 보면서, 이 책 하나하나 돌아보는 기쁨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겹겹이 쌓인 책을 보면서, 이 책 하나하나 돌아보는 기쁨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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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님은 '청탁받은 대로 글을 쓰자면, 정작 내가 쓰고픈 글을 쓸 겨를이 없어서 싫다'면서 손사래를 친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청탁글 때문에 제 글을 놓칩니다. 그 청탁 틀에 맞추고 시간에 쫓기면서 다른 '내 글'을 쓰는 흐름이나 느낌을 놓치게 됩니다. 그런데 청박받은 글을 애써 보내 주어도 막상 매체에 실을 때에는 이리 싹둑 저리 칼질을 하기 일쑤입니다. 제가 안 쓰는 말을 일부러 넣고, 제 글투를 뜯어고치기도 합니다. 저는 '사용(使用)'이라는 한자말을 안 쓰는데, 매체에 실린 제 글에는 어김없이 '쓰다'라는 토박이말이 '사용'이라는 한자말로 바뀝니다. 저는 '변화(變化)'라는 한자말을 안 쓰고 '바뀌다'라는 토박이말을 쓰는데에도, 매체에 실린 제 글에서 '바뀌다'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고령화 사회'니 '평생교육'이니 '웰빙'이니 하고 많은 말들을 하지만,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그것에 대해 준비시켜 주지 않는 '고령화 사회'나 '평생교육'이나 '웰빙'은 모두 쭉정이다 ..  (182쪽)

포장마차에서 동네 건달하고 싸울 뻔한 일, 집안에 든 도둑을 잡은 일, 택시타기를 싫어하는 까닭, 영화를 읽는 눈, 뒤쪽에 곁들인 시 몇 점, 자그맣고 빨간 옷을 입은 책에 요모조모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글쎄요, 감기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몸에는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런데, 선배나 나나 무슨 삼성맨도 아니고 현대인도 아닌데 감기에 걸려서 한 이틀 누워 있으면 안 되나요?(84쪽)" 하는 대목을 읽으며 피식 웃다가, 그래, 참 즐거운 책이구나 생각하면서 탁 덮고 책값을 셈합니다.

힘들면 쉬고, 아파도 쉬고, 외로워도 숨을 돌리면서 우리 삶을 돌아볼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기를 배었으니 쉬고, 아기를 낳아야 하니 쉬며, 아기를 돌보아야 하니 쉬어야 합니다. 참으로 먹고살기 팍팍하여 갓난쟁이를 등에 질끈 업고 길바닥장사를 나가야 하는 분들이 있으나, 여느 일터에서는 갓난쟁이가 갓난쟁이로 크고 어린이는 어린이로 클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느 일터가 아니라 하여도 한국땅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사람 된 권리로 어버이와 아이 모두 걱정이 없거나 덜한 가운데 살아갈 기틀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 21권을 보면 '노르웨이의 어프로치'를 특집으로 삼는데, 만화책 사이에 곁들인 말이라지만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이 신문 기사를 보면 유엔에서 국민이 풍요롭게 사는 나라의 랭킹이 나왔는데, 노르웨이가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어. 그런 노르웨이사람들의 오락이라면 자연과 접하는 것이라는군. 여가를 즐기기 위해 숲의 오두막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거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즐긴다고 하네.(64쪽)" 우리들은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 나라'일까요. 우리들은 '넉넉하게 꾸리는 삶'에 조금이나마 눈길을 두고 있을까요. 우리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터럭만큼이나마 눈길을 쏟고 있는가요. 경제성장률이나 국민소득 숫자에는 마음을 둘는지 몰라도,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이나 넉넉함이나 사랑스러움과 같은 데에는 마음을 하나도 안 두고 있지는 않나요.

.. 서정주의 시와 서정주의 삶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또 필자의 말처럼 석굴암을 부술 수 있듯이 한 번 발표된 시도 없앨 수 있는가? 내 생각에 서정주의 친일 이력과 역대 독재정권에 대한 추파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소위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고귀한 신분에 맞는 높은 도덕성'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때, 그의 허물에 사형 선고를 내릴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가 사라지는가? 탈레반이 무참히 파괴했던 저 아프간의 말없던 불상들처럼? 시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그의 반대자는 물론이고 그의 제자나 그의 예찬자 그리고 일반 시 애호가와 연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서정주의 죽음을 선언하고 합의하는 일이 왜 불가능한가? 우리는 그의 시가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해서, 그것도 실제의 죽음이 아니라, 고작 상징적인 죽음을 선고할 뿐인데! ..  (74∼75쪽)

문간 책들은 자리가 좁아 겹으로 꽂혀 있기도 합니다.
 문간 책들은 자리가 좁아 겹으로 꽂혀 있기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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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책 잘 보고 갑니다." 하는 인사말을 남기고 헌책방 〈혜성서점〉을 나섭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제 마음밭에 스며드는 책을 보았으며, 제 삶자락을 돌아보는 책을 넘겼고, 제가 걸어갈 길을 돌아보는 책을 만졌습니다.

책으로 조금씩 무거워지는 가방을 탁탁 두들기면서 자전거에 오릅니다. 오늘은 오늘만큼 책을 새로 장만하고, 오늘 장만한 만큼 내 마음을 북돋우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달려 〈풀무질〉에 닿은 다음, 볼일을 마치고 나서 인천으로 돌아갈 전철을 탈 용산역까지 되달리는 길까지 짜증스러운 일이 길에서 생겨납니다. 들이대는 자동차들, 갑자기 끼어드는 자동차들, ……. 싱긋 웃고 지나치자면 싱긋 웃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허허 웃고 잊자면 허허 웃고 잊을 수 있습니다만, 저 못난 자동차꾼들은 저한테뿐 아니라 다른 자전거꾼한테도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겠느냐 싶어 슬픕니다. 자전거꾼한테뿐 아니라 골목길 걷는 어르신과 어린이한테도 저러지 않을까 싶어 씁쓸합니다. 자동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갈 때에는 어떠할는지요. 자동차에 탈 때와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될까요?

용산역에 닿아 자전거 앞바퀴를 떼고 전철을 탑니다. 〈혜성서점〉과 〈풀무질〉에서 고른 책을 번갈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혜화동 〈혜성서점〉 / 02) 741-0143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헌책방, #혜성서점, #책, #책읽기,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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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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