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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3월 13일),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매화가 피어나고 있다.
▲ 매화 강릉(3월 13일),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매화가 피어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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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햇살 따스한 봄날이 이어졌습니다. 화창한 봄날 뒤, 12일 밤부터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봄비는 13일 오전까지 내내 이어졌습니다. 가뭄 끝에 온 비라 사진찍기 힘들다고 불평을 할 처지는 아닙니다.

12일 밤, 주문진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곳은 마치 유령도시를 보는 듯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시장은 텅 비었고, 점포들도 일찌감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봄비 내리는 밤, 항구의 밤은 참으로 쓸쓸하더군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계속 내리는 비에 밖에 나갈 생각을 못합니다. 숙소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산수유와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강원도에도 봄이 온 것입니다.

봄비가 제법 비답게 내려서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허난설헌 생가를 들렀다 근처 식당에서 초당순두부를 시켜먹고 아쉽지만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건만, 여긴 온통 눈천지

대관령 양떼목장(3월 13일), 하늘아래 첫 마을답다. 밤새 내린 봄비였지만, 이 곳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 자작나무 대관령 양떼목장(3월 13일), 하늘아래 첫 마을답다. 밤새 내린 봄비였지만, 이 곳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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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길로 갈까? 아니면 옛날길로 갈까?"  
"천천히 옛날길로 가자."

서울로 돌아오는 길, 대관령 옛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구불구불하지만 옛길이 주는 정겨움이 좋았습니다. 정상 부근이 가까워지면서 하얀 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종일 내린 봄비가 이곳엔 눈으로 내렸던 것입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하얀 눈으로 닾힌 산을 구경하던 중 '양떼목장'이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사진으로 접할 때마다 '한 번 가야지'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오게 될 줄이야.

온통 햐얀 눈밭이다. 자욱한 안개마져 하늘을 하얗게 물들였다.
▲ 양떼목장 온통 햐얀 눈밭이다. 자욱한 안개마져 하늘을 하얗게 물들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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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내린 눈에 양떼목장에 오던 봄이 잠시 쉬었습니다. 올 겨울 내내 겨울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온 것입니다.

대관령으로 올라오면서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침에 치적치적 내리는 봄비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오늘 날씨가 나쁘네" 했습니다. 그러다 대관령 옛길을 오르면서(그 곳에 눈이 쌓였는지도 모르는체) "날씨가 좋다, 나쁘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아까 한 말 수정해야겠다. 그냥 흐린날, 눈오는 날, 비오는 날, 화창한 날이 있을 뿐이지. 사람에 따라서 좋은 날, 나쁜 날은 따로 있겠지" 했습니다.

살색 크레파스가 없어야 하듯 비오고 흐리면 나쁜 날이고, 맑으면 좋은 날이고 하는 것도 없어야겠지요.

나무에 흰색 페인트 흩뿌려 놓았나

수묵화 혹은 파스텔화를 보는 듯했다. 봄 속에 들어있는 겨울이다.
▲ 양떼목장 수묵화 혹은 파스텔화를 보는 듯했다. 봄 속에 들어있는 겨울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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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목장 초입, 그곳에는 자작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는데 마치 나무에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은 듯 했습니다. 눈때문이 아니라 자작나무 껍데기 자체가 그렇게도 하얗습니다.

'불에 타들어갈 때 자작자작, 하얀 나뭇껍질에 쓴 연애편지….'

이런 생각을 하며 양떼목장을 둘러봅니다. 온통 흰눈 세상인데다가 안개까지 껴서 파스텔화 혹은 수묵화 같은 분위기입니다. 둘러보아도 온통 하얀 세상을 얼마만에 보는지 모릅니다.

"어제만 해도 눈이 다 녹았는데, 어젯밤 오늘 아침에 온 눈이 이렇게 쌓인 거죠."

마침 싸락싸락 내리던 싸락눈도 멈추어 걷기가 편합니다. 발목까지 푹푹 기분좋게 빠지는 눈, 봄기운으로 살짝 녹은 눈에 신발이며 양말이 흠뻑 젖었지만 하늘 아래 첫 마을이라는 그 곳도 포근하니 좋습니다.

그래도 곧 푸릇푸릇...봄이 오겠지요

앙상한 나무와 하얀 눈이 만든 세상도 아름답다.
▲ 양떼목장 앙상한 나무와 하얀 눈이 만든 세상도 아름답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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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겨울 속에 들어있는 봄'을 노래했는데 이젠 '봄 속에 들어있는 겨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랬습니다. 하얀 눈 세상이었지만 이미 봄 속에 들어있는 겨울입니다.

"내일 꽃샘추위가 온다는데, 그거 지나가면 이제 여기도 봄이 올 겁니다. 이미 봄꽃은 지난 주 부터 피기 시작했거든요. 잔디가 푸릇푸릇할 때 오시면 더 예쁩니다."

눈을 치우던 관리인이 시간 정말 잘 맞춰서 왔다며 어제만 해도 이런 풍경은 내년 겨울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봄비 내린 날, 함박눈이 내린 그곳에도 봄이 오겠지요.

덧붙이는 글 | '흰눈 내린 양떼목장 사진을 더 보시기 원하시는 분은 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를 방문하시면 기사에 제공되지 않은 사진 20여장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봄, #겨울, #양떼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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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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