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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사퇴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전시청에 있는 민주평통자문회의 대전지역 사무소를 방문한 남재영 대전중구협의회 회장.
 4일 오전 사퇴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전시청에 있는 민주평통자문회의 대전지역 사무소를 방문한 남재영 대전중구협의회 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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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며 민주평통자문위원들이 집단으로 사퇴서를 제출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대전중구협의회 남재영 회장(빈들감리교회 목사)을 비롯한 자문위원, 간사 등 총 5명은 4일 오전 대전시청에 있는 민주평통 대전지역회의 사무실에 '자문위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사퇴서에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통감, 자문위원직에서 사임한다"고 사퇴이유를 밝혔다. 지난 1981년 민주평통 구성 이래 정부의 통일정책을 문제 삼아 자문위원들이 집단으로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비핵 개방 3000'은 잘못된 정책"

특히, 민주평통 대전중구협의회는 통일강연회와 캠페인 등 다양한 통일사업을 능동적으로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모범협의회'로 선정, 의장(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사퇴와 관련,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대화가 전면 중단되고, 교류와 협력의 자리엔 긴장과 대결 구도만 짙어지고 있다"면서 "정부가 벌여온 '비핵 개방 3000'정책을 통한 북한에 대한 압박은 창조적 실용주의가 아닌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그동안 초정파적 범국민적 차원에서 전향적인 통일정책이 필요하다고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수차례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달했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고집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현인택 현 통일부장관의 임명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통일부 폐지론자이고, '비핵 개방 3000'의 입안자를 통일부장관 자리에 앉힐 수 있느냐"면서 "지난 1년간의 활동을 통해 정부의 통일정책으로는 더 이상 남북 교류협력사업 지원은 물론 국민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사퇴이유를 설명했다.

타 지역에서도 집단 사퇴 움직임

남재영 민주평통중구협의회 회장은 "사퇴 후에도 평화통일을 위한 실천적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해 "남북경협과 인도주의적 대북 식량지원 등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펼쳐 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들의 집단사퇴는 지난 달 중구협의회 정기회의 석상에서 남 회장이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소회와 개인적인 이유로 사퇴의사를 표명한다"고 밝히면서 예고됐다. 남 회장이 개인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히자 뜻을 같이하는 자문위원들이 동참하게 된 것.

이날 함께 사퇴서를 제출하지 못한 몇몇 자문위원들도 사퇴의사가 있음이 확인됐고, 타 지역에서도 정부의 통일정책에 반발, 집단적인 사퇴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민주평통 규정에 따르면, 자문위원은 의장인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 사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편, 민주평통자문회의는 평화통일정책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헌법에 근거해 지난 1981년 창설됐으며, 전국 각 지역협의회와 해외협의회에 모두 1만67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민주평통 대전중구협의회 자문위원님들께 올립니다"
-남재영 회장이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사퇴 이유서 '요약'
저는 오늘 민주평통 대전중구협의회장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저는 민주평통 대전중구협의회장에 취임한 다음부터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 가운데 성심을 다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민족인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나름대로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평통협의회장직을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해 우수협의회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협의회장이 되고 난 다음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정책자문에 응하기도 하고 직접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기조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사실 우리는 민족분단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좋을 때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평통자문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두 아들에게는 이제 머잖아 남북의 철도가 놓이게 될 것이고, 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이제 우리 청소년들과 젊은이들 세대는 열차를 타고 실크로드를 따라서 세계로 나아가,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꿈을 더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평통 협의회장에 임명될 때만해도 그 날이 머잖아 올 걸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부터 남북관계는 우려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권 일 년 만에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사이의 상생 공영을 이야기하지만 실상 남북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어 이제는 언제 서해상에서 군사적인 충돌이 다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내와 남편이, 형제와 자매가, 사랑하는 혈육들이 서로 헤어져 살도록 강제하는 분단이야말로 가장 야만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이산가족은 무조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수년 전부터 북한의 형제들이 심각한 식량난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는 소식을 들어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좀 더 많이 가졌고 더 잘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쪼개어 그들을 돕는 것이 같은 민족의 도리이자 제가 믿고 있는 신앙의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난 다음 지난 한 해 동안 정부차원에서 북한의 인민들을 구휼하기 위하여 식량과 비료지원이 '전무'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이 정부의 민주평통자문위원으로 있다는 사실이 민족의 역사에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경제에 대해서는 전문식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상식으로는 최근 세계적인 경제난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경제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길은 남북의 경제협력만이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도 남북한이 고속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은 상식을 가진 이들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실용주의를 표방해온 이명박 정부로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남북관계를 그동안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동안 남북정부 당사자 간의 남북화해와 협력을 주제로는 공식회담이 전혀 열리지 못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평화통일에 대한 본질과 한계를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를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민족의 역사에 죄악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한 지난 10년은 남북관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통일의 기운이 드높았던 1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본격적으로 가동한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에 빠트렸고, 평화를 대결로 다시 환원시켜버린 과오를 범해왔습니다.

저는 이미 인수위시절부터 통일부를 폐지해야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평화통일정책에 당혹감과 우려를 가졌습니다만 그래도 통일부가 다시 존치되면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희망조차도 접고자 합니다.

협의회장직을 사임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에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북관계를 애초에 이정부가 트레드마크처럼 주장해온 실용주의로 돌아가 달라는 겁니다. 스스로 사로잡혀있는 낡은 이념의 틀을 깨고, 민족의 이익과 우리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열어나가는, 대북정책에서 전향적인 방향전환이 있기를 바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지금 이명박 정부는 차마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사퇴를 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더 평화적으로 전진시켜줄 것을 기대하며, 사퇴 이후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과 남북평화통일정책이 대결구도를 종식하고 화해협력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중구협의회 자문위원 여러분!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다 다 채우지 못하고 남은 과제를 여러분들에게 다 맡기고 뜻을 같이한 몇 분들이 함께 떠나는 점에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2009년 3월 4일
민주평통 대전중구협의회장 직을 떠나면서
남재영 드림


태그:#민주평통,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재영, #이명박 정부 통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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