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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임봉순 할머니 "뭘 자꾸 찍었싸~" "봉순이처럼 이쁘게 줌 웃어보랑께유"
 고 임봉순 할머니 "뭘 자꾸 찍었싸~" "봉순이처럼 이쁘게 줌 웃어보랑께유"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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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밤 내내 곰순이가 짖어댔습니다.

"그만 짖어 이 눔아!"

사랑방 문을 열고 몇 번이나 경고장을 날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녀석은 목이 쉬도록 한 시간 가까이 짖어댔습니다. 짖다가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짖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 이장님의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로 시작되는 마을 방송을 통해 녀석이 짖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젯밤 11시쯤에 유호성씨의 모친이 돌아가셨습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마당으로 나와 귀를 세웠습니다. 이장님은 세 차례 이상 반복해 말했습니다. 분명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네 '욕쟁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젯밤 곰순이 녀석이 평소와는 다른 유씨 할아버지네 집안 분위기를 감지했던 것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 이상 없어 보이셨는데…."

며칠 전 욕쟁이 할머니 집에 마실 다녀왔을 때 평소처럼 욕도 잘하고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고 합니다. 아내는 걸쭉한 욕설을 쏟아내는 욕쟁이 할머니를 좋아했습니다. 욕설을 함부로 툭툭 쏘아댔지만 속내가 훤히 보이는 욕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해치려는 욕설이 아니었습니다.

12년 전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욕쟁이 할머니네 집은 이웃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 사랑방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푸짐한 욕설만큼이나 인심도 푸짐했습니다. 양념을 아끼지 않는 맛있는 음식도 그랬지만 언제나 넉넉하게 음식을 마련해 이웃들과 나눴던 할머니였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네 집 앞에 경찰차가 서 있습니다. 경찰 둘이 보입니다. 무궁화 하나 달린 경찰과 '밥풀떼기' 셋 달린 경찰입니다. 내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무궁화 하나 달린 경찰이 허름한 내 몰골을 쓰윽 쳐다보더니 본체만체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캐묻습니다.

"할머니는 여기서 누워 계셨고, 할아버지는요?"
"나는 그 옆에 누워 잤쥬?"
"어떤 약을 드셨쥬? 이거 혈압약이라고 했나요?"

밥풀떼기 셋 달린 경찰은 약봉지를 떠들어 보면서 아랫방 윗방 여기 저기 둘러보고 연신 사진을 찍어댑니다. 아마 사망 경위서나 진단서 같은 것을 작성하려는 모양입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적당히 건넬 말이 없어 할아버지의 지팡이 쥔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삭정이처럼 뼈만 남은 할아버지의 손이 떨려옵니다.

"약 먹구 자살이라두 했나 싶어 저러나 비지?"
"그냥 어떻게 돌아가셨나 조사 하나 벼유…."
"벵원에 그렇게 가자구 해두 고집스럽게 버티더니…."

대충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무궁화 하나 달린 경찰이 밥풀떼기 셋 달린 경찰에게 묻습니다.

"몇 장 찍었어? 두 장은 찍어 놔야 돼."
"아 그람요, 세 장 찍었어요."

경찰이 경찰차에 타자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할아버지도 경찰차를 탑니다. 함께 따라온 며느리도 탑니다. 나는 공연히 개밥 얘기를 꺼냅니다.

"할아버지 이따가 찾아뵐께요, 개밥도 주고 할 테니께 집 걱정 마세요."

유씨 할아버지네 집에는 달랑 개 한 마리만 남았습니다. 외양간은 이미 오래 전 비워졌습니다. 집안이 텅 비었습니다. 대문을 닫아 놓고 돌아서는데 문득 대문간에서 소 방울, 워낭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할아버지네 철판 대문에 걸린 워낭이었습니다.

 유씨 할아버지네 대문에 걸어놓은 워낭. 우리동네 마지막 소가 차고 있던 것이다.
 유씨 할아버지네 대문에 걸어놓은 워낭. 우리동네 마지막 소가 차고 있던 것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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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 할아버지네는 우리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소를 길렀던 집이었습니다. 소에게 꼴을 베서 먹이고 여물을 먹였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 가득 여물을 쑤어 먹여가며 논이며 밭을 갈게 했습니다. 아마 5년 전쯤이었을 것입니다. 그 소가 새끼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 날, 평소 소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네기도 했던 욕쟁이 할머니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에이구 지랄하구, 송아지 낳다가 뒈져 뻐렸슈! 불쌍하지 지, 새깽이두 못 보구선, 어이구 불쌍한 우리 소, 말 못하는 짐승이라 말두 못하구, 지랄하구 월메나 힘들었것슈."

아마 소가 죽던 그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본래 다리를 절고 다녔던 할머니의 힘없는 다리에 힘이 더 빠져나기 시작했습니다. 대문 밖 출입이 줄어들면서 할머니는 구들장 신세를 지는 시간들이 늘어났고 급기야는 아예 걷지 못했습니다.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휠체어를 모셔놓고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후덕한 인심에 이끌려 뻔질나게 드나들던 이웃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버리다시피 했습니다.

"헤, 민우 아부지 왔슈! 지랄하구 수염이 허여졌네… 농사는 잘 돼가유, 헤, 민우 아부지는 만날 뭐가 고리 바뻐유, 고것두 농사라구… 민우 아부지 잠깐 놀다가."
"헤 참, 할머니두 민우가 아니라 인효라니께."

우리 집 큰 아이 인효 녀석을 꼬박꼬박 민우라 부르는 욕쟁이 할머니. 내가 마당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발목을 붙잡곤 했습니다. 우리 집 애들 커가는 얘기며 세상 얘기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다 세상 어지럽히는 못된 인간들 얘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지랄하구 자빠졌네, 개눔 새끼들!"을 반복했습니다.

"밖에 좀 나오시지?"
"에이 귀찮어, 세상이… 이런 빙신 꼴로 어딜 나가겠슈…."

할머니는 담장 너머에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사람이 그리워 현관문 앞에 고개를 내밀곤 했지만 좀처럼 밖으로 나서려 하질 않았습니다. 늦게 둔 외아들 결혼식장에도 가질 않겠다고 버티던 할머니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휠체어 탄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어머니가 결혼식장에 나오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착한 호성씨의 눈물어린 호소에 못 이겨 결혼식장에는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외출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에이 참, 섰지두 못하고 박박 겨 댕기믄서, 벵원엘 가자구 해두 안 가구."

유씨 할아버지는 병원조차 가지 않으려 했던 할머니를 안타까워했습니다. 고집불통 할머니는 '얼른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사는 게 금방여, 지랄허구 얼른 뒈져야 하는 디, 이러구 살믄 뭘 혀, 얼른 뒈져야 하는 디.."

평생 농사일에 파묻혀 고생고생 살다 세상 떠난 할머니의 이름은 임봉순. '봉순이'였습니다. 목줄이 풀려 동네방네 싸돌아다니는 우리 집 개, 곰순이 부르는 소리에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소리쳤습니다.

"왜 그려! 왜 자꾸 부르고 지랄여!"
"예?"
"왜 자꾸 내 이름 부르는 겨!"
"뭘요? 누굴 불러요. 곰순이 불렀는데."
"봉순아! 봉순아! 그랬잖어?"
"예~에? 아, 곰순이유 곰순이 불렀다니까요."
"그려? 내 이름이 봉순이여, 임. 봉. 순!"

10년 넘게 이웃해 살면서 우리는 그때서야 할머니의 이름이 임봉순. '봉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욕쟁이 할머니, 아니 '봉순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이름만큼이나 어여쁜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평생 가난을 이고 지고 살아왔던 '봉순이 할머니'에게도 분명 봄 꽃 소식에 설레는 가슴 안고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던 그런 아름다운 이팔청춘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쓸쓸합니다. 욕쟁이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더 이상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동네가 텅 빈 것 같습니다. 텅빈 동네 어딘가에서 욕쟁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자꾸만 메아리쳐 옵니다.

"내 이름이 봉순이여, 임.봉.순!"

이름 석자 알려진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세상이 온통 시끌벅적합니다. 온갖 누릴 것 다 누린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들이 세상을 다 바꿔 놓은 듯 떠들썩하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기 전이나 떠난 후나 세상 욕심은 장,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매년 봄 마다 한두 분씩 돌아가십니다. 평생 이름 석자 알리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흙에 묻혀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마을은 비워져 갑니다. 농촌이 사라져 갑니다. 세상이 달라져 갑니다.

 허물어져 가는 유씨 할아버지네 외양간 흙벽
 허물어져 가는 유씨 할아버지네 외양간 흙벽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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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욕쟁이 할머니'와의 인연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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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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