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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라... 지금껏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처했다. 사회주의라... 나를 포함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겪고 보는 하루살이 같은 일상들 사이에서 '주의'라는 게, 특히 '사회주의'라는 게 뭔가 싶은 게 지금도 얼얼할 뿐이다. 나는 지금도 사회주의가 뭔지 아주 제대로 모른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거나 부지런해야 한다거나, 또는 정직해야 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지 못한 내 삶을 보면서는 늘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더 이상 누구 말을 듣지 않아도 반자동으로 ‘나는 왜 부지러한 개미가 되지 못하나’를 중얼거리게 된다. 그 생각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내 생각이 다다를 수 있는 전부인 것처럼.

 

그런데, 세상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거나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게 다는 아니라든가, 또는 네 자신과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만 보아서는 안 된다거나 하는 말들은 그다지 많이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주어진 세상과 그 틀에 최대한 맞추어 살아갈 것을 충고하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그 반대로 다른 세상을 꿈꾸라거나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들은 거의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왜, 왜 그러했을까.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는 세상, 사회주의가 꿈꾸는 세상이란다

 

<안녕! 사회주의>(메이데이 펴냄, 2009)를 읽어보겠다 집어든 뒤 26명에 달하는 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불쑥 내 맘에 찾아든 질문이 바로 내가 그간 들어온 말들, 내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것들이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마당에 무슨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사회를 고민하느냐고 핀잔한다면 그에 대해 딱히 반박할 공간이 많지는 않다. 내 작은 양심이 발동하는 순간인데, 그 양심이란 게 꼭 그렇게 순진한 용도에만 작동하는 건 아닌 듯하다.

 

내 작은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는 또 다른 때가 있다면, 그것은 땀 흘린 대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자기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법칙을 의문시하고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결국에는 혼자 발버둥치는 모양새로라도 분노를 토해낼 때 말이다. 그때 나는 이 사회와 그 가르침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서 느꼈던 양심과 뭔가 다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양심의 출현을 보게 된다.

 

평범한 많은 우리 이웃들이 그러하듯, 사회주의는 꽤 오랜 기간 ‘위험’이나 ‘시대착오’와 엇비슷한 말로 평가받곤 했다. 길고 긴 군사정권 시기를 훌쩍 벗어난 지금도 솔직히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는 친근히 여기고 잘 안다 여기면서도(정말 잘 알고 있을까? 그 깊은 속까지?) 사회주의는 잘 모른다고 하거나 친해질 일은 애써 피하곤 한다. 힘들고 울분 많은 세상에 살아도 당장 하루하루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이 늘 아쉬운 우리 이웃들 대부분은 자본주의 맹점이나 폐해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도 잠시라도 이를 들어줄 여유가 별로 없다.

 

좀 머리가 트여, 아니 이제야 지금 세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 실제 행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변 이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꾼다’라는 게 사회주의 관심자, 운동가들의 첫 출발점이라고 하더라도 그 생각이 싹을 틔우긴 참 힘들어보인다. 왜곡된 시각일지언정 사회주의에 대해 우리가 그간 들어온 평가, 반응들은 일단 현실이며 어딜 가나 비슷하다.

 

“내가 만난 사회주의는 이랬다. 너와 내가 편견 없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세상, 우리 중 누군가 부족해도 기다려 줄 수 있는 세상, 서로를 동등하고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 누구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세상… (중략)

 

그런데, 내가 만난 사회주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이 만난 사회주의는 너무나 복잡하고 때로는 너무나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공산당, 빨갱이, 괴물과도 같은 것들이 있는 공간, 게으른 인간들의 세상, 독재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부터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사회주의까지….”(<안녕! 사회주의>, 149~150)

 

솔직담백한 고백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백 마디 해석보다 더 설득력 있다

 

사회주의에 대해 백지상태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나 같은 이가 보기에 26명 글쓴이들이 보여준 현실 속 사회주의 이야기는 모두 알차보였다. 그런데 글 속에 비친 그들 마음은 누구랄 것 없이 다들 괴로운 마음이 주를 이루었다. 신자본주의 폐해를 곳곳에서 목도하는 지금, 그리고 촛불이 달군 2008년 한국 사회에 대한 기억이 여전한 지금 우리에게 사회주의자들 목소리가 새삼 다시 힘을 얻을 것 같은 이때에 왜 괴로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그건 사회주의를 추구해왔노라고 자부하는 여러 글쓴이들이 자신들을 자본주의가 압도하는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로 자인하는 것일까? 아니지, 그런 아닌 것 같다. 이 책이 말하는 ‘안녕’이 ‘Goodbye’가 아니라 ‘Hello’라는 것을 보아도 그건 아니지 싶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에 나름대로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제법 활동도 해왔을 그들이 이 책에 담을 글을 쓰면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주장은 강하고 설득력은 있었으나, 그것을 함께 나누어야 할 수많은 평범한 이웃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서툴렀거나 충분치 못해서인가. 그리고 그동안 받아온 복잡한 오해와 곡해들 때문이던가. 부족한 이해력을 감안하더라도, 고쳐 잡아 생각해 낸 이유들이 바로 그들이 맘에 둔 오랜 고민들과 맞닿아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누군가 또 이 책을 집어 들게 된다면, 그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심지어 경계하는 이들이라면, 평범하고 현실감 있고 구체적이고 친근한 체험과 설명이 사회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분명히 해주리라 생각한다. 사회주의에 관한 수많은 연구서, 보고서, 저서들이 넘쳐나도 이 책에 담긴 조금은 우울하면서 의외로 더욱 진솔해보이는 솔직담백한 고백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백 마디 해석과 주장보다 더 설득력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자신이 듣고 배우고 또는 체험해 온 사회주의 의미와 가치를 다음 세대인 자기 아이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너희들과 교육방송에서 함께 본 것처럼 지구의 한쪽에서는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서는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각종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 사회란다. 그렇단다. 전 세계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은 생산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생산물이 소수의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란다. (중략)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세상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적 야만을 넘어서는 인간다운 세상인 사회주의란다.”(같은 책, 383~384)

덧붙이는 글 | <안녕! 사회주의> 양규헌 외. 메이데이, 2009.

* 이 서평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하여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안녕! 사회주의 - 인간과 세계와 지구의 '안녕'을 바라는 26명의 꿈

양규헌 외 지음, 메이데이(2009)


태그:#안녕! 사회주의, #사회주의,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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