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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기가 겁나는 시대입니다. 시민들이 떼죽음당하고 끔찍한 범죄들이 며칠을 멀다하고 터지고 있어요. 패러다임자체가 크게 변화하는 세계와 동떨어져서 한국 사회는 거꾸로 타들어가고 있기에 시민들은 불안합니다. 콘크리트 쏟아지는 강에 사는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참담하게 오늘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쇠고기 수입에서부터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에 맞닿아있는 문제들이지만 엉뚱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혀 시민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느꼈듯이 수유+너머 연구소의 고병권 철학자도 엄습하는 불길한 조짐에 거리로 나갑니다. 거기서 느낀 점을 책으로 냅니다. <추방과 탈주>[2009. 그린비]는 그 결과물로 삭막하다 못해 잔인해지는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관계자 외 출입금지!

민주주의(데모스크라시)는 민중이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사회제도를 뜻합니다. 하지만 이제 민중이 없는 지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민중을 추방하고 있지요. 이것은 민주주의가 몇 가지 제도나 장치들의 이름에 불과하며 통치기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럼 지금은 무엇일까요? 지은이는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고 밝혀요. 몇 몇 권력자들이나 시스템의 작동에 관여하고 있는 기술자들이 민주정이란 이름으로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시행하고 있다는 느낌이지요.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특정 분파가 민주주의를 장악하고 민주주의가 모두의 이득이 아닌, 특정 분파의 이익에만 복무한다는 거지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이 경향은 더 노골화되었지요. 현 정부의 정책들은 입안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어이, 물렀거라, MB대왕님 납신다,’를 외치며 철저히 시민들을 물리치고 계시죠.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과 공권력 사이에 매개나 조정을 하기보다는 명령이나 통보 형식을 띠며 시민들의 삶에 침투해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대부분 서민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공권력에 의해서 거부되고 있지요. 보통 서민이 정치에 참여할라치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이며 쫓아내기 일쑤지요. 시민들은 이제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결정으로 배제되고 있지요. ‘합의로부터 배제’되고 ‘합의를 통해 배제’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 그들은 같은 팀 릴레이 선수들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금융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구조조정을 완수한 것은 정권을 교체한 김대중 정부였고, 노무현 정부가 완수하지 못한 한미FTA 최종 비준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역시 정권을 교체한 이명박 정부다. 서로 당파는 다르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트랙 위에서 바통을 후임자에게 성공적으로 건네주었다. - 책에서

지은이의 따끔한 분석처럼, 네 개의 정부 두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음에도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숙성에는 어떤 단절도 없었어요. 단지 그것을 책임지는 관리자들만 바뀌었을 뿐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 정권에서 잘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노선 위를 마음껏 질주하고 있지요.

한 마디로 이번 정권교체는 노선의 교체라기보다는 속도의 교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요. 지난 정부가 슬슬 눈치를 보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불도저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요. 선진국과 방향이 많이 달라 한국에서 사는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괴로운 역주행’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정부는 열심히 달리고 있어요.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노무현대통령과 같이 걸어가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노무현대통령과 같이 걸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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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세력들은 ‘잃어버린 십 년’ 타령을 부르며 과거로 돌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듯 황당하게도 그들은 잃어버린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그들은 ‘잃어버린 십 년’동안 그들의 주머니는 더 불룩해졌고 얼굴은 기름기로 더 번들거렸지요. 그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었으나 십년 동안 생존의 위기로 몰린 수많은 민중들은 ‘살림살이 상실시킨 정권 타도’에 표를 몰아주지요.

그 결과는 현실에서 보시는 대로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활 기반의 상실’이 생겨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민중들은 이제 ‘삶 자체가 상실’하게 생겼습니다. 형식상 시민권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은 비국민들이 되어 존립 기반을 잃게 생겼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일원이지만 국민은 아닌 자들이죠.

부와 권력을 일부 집단에만 쏠리고 대중들은 주변으로 밀려나서 불안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끊임없이 추방되었지요. 각종 양극화 지표들이 잘 보여 주고 있듯이 1997년 이후 한국사회는 권력과 자본의 핵심을 장악한 소수의 세력과 그렇지 못한 대중들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국가의 주인에서 추방되어 희생당하는 내부난민들

권력과 자본을 장악하지 못한 대부분 서민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용산참사입니다. “국가의 설립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야수들”이라고 니체는 말해요. 말 그대로 공권력은 갑자기 들이닥쳐 삶을 파괴하지요. 용산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철거민들은 국민이 아닙니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공권력을 ‘늘 그렇게 해왔듯’ 장애물을 치워 버립니다. 사람이 죽어도 일 하다 실수한 것이기에 사과를 할 수 없는 겁니다.

모두의 이익이라며 몇 몇 예외를 희생시키는 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국민 모두가 살길’이라는 식의 얘기는 ‘제발 우리를 살려 달라’는 보통 서민들의 외침을 묵살해버립니다. 자기 나라 안에 있으면서 사실상 자신을 보호해줄 정부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내부난민’이라고 지은이는 부릅니다. 몇 푼을 쥐어주면서 평생 고기잡이를 한 어민들은 쫓아내자 “아,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라기보다는 국가에 빌붙어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였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고 추방당한 어부는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안타깝게도 추방당한 사람은 이 사회의 ‘예외’이며 그들의 희생은 가슴 아프지만 전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드셌지요. 하지만 이제 그 ‘예외’는 일상화가 되고 있고 희생은 대중화가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외’들을 몸으로 겪은 대중들은 자신도 언제 희생될지 몰라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면에서 보수주의가 되죠. 그들은 자기 삶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사태를 견딜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보수주의가 된다고 서민들에게 콩고물은 떨어지지 않지요. 도리어 먹음직스러운 콩고물이 되기 십상이죠. 지난 십여 년간 미적대던 중산층 붕괴는 이제 와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서 그들을 챙겨주지도 않죠. 우선 한국에서 복지국가라는 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었으니까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온 신자유주의는 잠복기간을 마쳤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드디어 사회 곳곳에서 발병을 일으켰고 시민들은 불행한 결과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앓기 시작했지요. 공권력이 ‘시장에 대한 개입’은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시장을 위한 개입’은 훨씬 더 강화되었습니다. 용역을 위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이 이를 말해줍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몸을 삽시간에 갉아먹는 질병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에 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분노가 거리에 쏟아집니다. 정부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보통 서민들은 원치 않은데 ‘국익’이란 이름으로 쇠고기를 수입하겠다고 했지요. 도대체 국익은 누구를 위한건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았던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촛불을 듭니다. 그들은 정부가 하는 일 때문에 불안해지고 가난해지는 사람들이지요. 작년 촛불시위는 왕따 당한 민중의 분노였습니다.

촛불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정부, 오로지 규제와 탄압

촛불들은 스스로 불안에 떨면서 동시에 권력자들을 불안케 했지요. 정부는 촛불을 이해할 능력이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기에 그저 광우병에 놀아나는 ‘멍청한 대중’으로 취급됩니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자세가 안 되어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정부는 대중들의 주장을 괴담으로 움직임을 난동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촛불을 든 대중은 힘이 있었고 정부는 촛불에 뎁니다. 데었으면 현실에 맞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정신을 차리고 시민들 눈높이로 자세를 낮춰야 하는데, 그들의 뇌회로는 다른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감시와 처벌, 통제하는 법을 계속 만들어 내려 합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면 국민 총생산이 1%올라갈 수 있다며 취임순간부터 법질서를 강조하였던 분답지요. 

군사정부 시절의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체포전담반, 시위진압 경찰은 면책하고 시위대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사법처리하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중들을 옭아매고 탄압만 하겠다는 위정자들의 인식능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규제 철폐와 정부 축소를 외치는 정부는 강력한 법치주의와 치안강화를 주장하는 걸까요.

바로 신자유주의가 퍼뜨린 불안 때문이죠. 안전을 욕구하는 건 불안하기 때문이죠. 안전보장은 이 시대에 고유한 불안과 맞닿아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을 탈규제 시켜주어 대중들을 시장의 무차별 폭력 속에 방치시키는 결과를 낳았지요. 그렇게 태어난 불안한 대중은 이제 관심 밖 난민이 되었지요. 정부는 그들의 복리나 안전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들을 치안관리대상으로 여깁니다. 용산철거민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대중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정부는 위협의 내용이 분명한 국방보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겨날지 모르는 내부 저항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안전보장개념이 중요해지는 거죠. 이명박 정부는 행정자치부의 이름을 행정안전부로 바꾸었습니다.

악은 무개념에서 나온다, 생각하라, 그리고 탈주하라!

IMF이후 보통명사처럼 널리 퍼진 구조조정은 현재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란 뜻입니다. 안정된 사회구조로 옮겨나는 과정에 고통스러운 때지만 이 기간은 잠깐에 지나지 않는 ‘예외시간’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착각이지요. 이미 예외성은 일상성이 되었고 구조조정은 하나의 구조가 되어 한국사회에 들어앉았고 서민들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늘 고통스럽고 불안한 겁니다.

판단중지, 잠시 생각을 멈춰봅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살아왔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인식과 삶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저 구조조정이 되어버린 나날을 보내면서 고통과 불안에만 시달릴 수 없습니다. 이제 스스로 자기 삶과 인식을 구조 조정해야 합니다. 구조조정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바꿔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경찰이 회견장을 둘러싸자 참가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경찰이 회견장을 둘러싸자 참가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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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라며 핑계를 대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주어진 대로 순종하다보면 언젠가 해뜰날도 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유대인 학살혐의로 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은 나쁜 생각에서가 아니라 생각 없음에서 나온다’며 호통을 치지요. 일출은 스스로 고통스런 새벽을 견뎌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겁니다.

대중들의 삶이 불안정에 시달릴 때 일부는 막대한 부를 긁어모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 한 몫 잡고 싶은 욕망에만 들떠 있어 자신을 포함하여 불안정에 시달리는 대다수 서민들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상반된 운명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전자에게 일어난 일과 후자에게 일어난 일이 동일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혼자 열심히 한다고 부자가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 책 제목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추방, 그것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추방당한 서민들과 추방위협에 시달리는 대중들은 현정부와 ‘저강도 내전상태’에 있는 겁니다. 탈주,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낌새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요동치며 죽음으로 내달리는 고장난 폭주열차입니다. 이에 시민들은 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 아프지만 다 잘 될 거야, 최면 걸며 자위하다가 강제추방 당할 건지 스스로 탈주를 할 건지 책은 묻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추방과 탈주

고병권 지음, 그린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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