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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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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강씨의 사형선고는 당연한 수순일까.

'경기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흉악범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하자는 주장과 함께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세다. 이 참에 사형이 확정된 기결수들에 대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번 사건은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판결 결과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너무 성급한 결론은 잠시 접어두자.

실제 법원에서 흉악범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나고 있을까. 법원의 판결을 자세히 보면, 사형제도를 보는 사법부의 경향을 알 수 있다.

영생교·사망보험금 노린 모녀 살인 등 사형 선고

[사례①]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생교 사건'. 이 사건은 종교와 교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에서 발생했다. A씨를 비롯한 일부 신봉자들이 영생교에서 이탈하거나 교주를 비방하는 사람을 무차별하게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이다. 범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것만 해도 1년여 동안 6명을 숨지게 했다. 유족들은 10년간 피해자들의 행방을 찾았으나 유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사례②] 40대의 B씨는 살인, 사체은닉,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내연녀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자 피해자의 목을 졸라 죽인 후, 사체를 야산에 매장했다. 그는 몇 달 후 맥주를 마시다가 술집 주인이 국제전화를 오래한다고 타박하자, 말다툼 끝에 가스버너로 머리와 온 몸을 때려서 피해자를 숨지게 했다. 이틀 후에는 친구의 딸(11살)을 성폭행한 후, 피해자가 아버지에게 알리겠다고 하자 승용차에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사례③] 60대 어부 C씨는 자신의 배로 여행객 남녀를 태우고 바다로 갔다. 그는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해 남자를 물에 빠뜨려 살해한 후 저항하는 여성마저도 익사케 하였다. 며칠 후에도 어부는 같은 수법으로 다시 젊은 여성 2명을 성폭행하려다 이를 피하려던 피해자들을 모두 물에 빠뜨려 살해하는 2차 범행을 저질렀다.

[사례④] 동네 선후배 사이인 D씨 등 4명은 돈이 필요해 범죄를 모의했다. 먼저, 그들은 한 동네에 사는 여인이 남편의 교통사고 사망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고 납치를 감행했다. D씨 등은 다시 피해자의 딸을 인질로 잡아놓고 돈 1억원을 찾아오게 했다. 돈을 손에 쥔 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녀를 차례로 살해했다.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D씨 등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복동생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졸라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모두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사건들이다. 위의 사례 중 A씨, B씨는 사형이 확정되었고, C씨, D씨는 1심의 사형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 상태이다.

법원은 "사형이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죄형의 균형, 사회방위 및 범죄의 일반예방적 견지에서 피고인을 영원히 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지 않을 수 없다"(수원지방법원 2003고합 391 판결 등)는 취지로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 "사형은 문명국가의 예외적 형벌...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허용"

사형을 둘러싼 법원의 판례는 일관되게 정립되어 있다.

대법원은 사형이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2001도6425, 2005도 4178 판결 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한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정은 어떤 것일까. 조금 길지만 판결문을 더 보자.

"사형을 선고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음을 명확하게 밝힌 후 비로소 사형의 선택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다소 장황하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사형은 한 번 선고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니 심사숙고하란 뜻이다.

"판사에게 인간의 생명 박탈권 주었다 하여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이같은 기준으로 하급심의 사형판결이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바뀌기도 한다.

E씨의 재판이 그런 사례이다. E씨는 7개월간 강간 살인 3회, 강도·강간 등 10회의 범죄를  저질러서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상고했고, 대법원은 E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20대의 젊은 나이이고 범행을 자백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점과 피고인의 성장환경 등을 보면, 주관적인 양형요소인 성행과 환경, 지능, 재범의 위험성 등을 심사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여 사형 선고를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밝혀 보았어야 한다"(2003도 924)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양형이 부당하다면서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고 결국 E씨는 무기징역의 형을 받았다.

흉악 살인범에 대해 법원이 고심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경우도 있다.

20대의 두 강도는 손님으로 위장하여 술집을 털기로 했다. 범행 기회를 엿보던 두 사람은 손님이 끊긴 새벽녘에 금품을 훔치기 위해 술집 여주인을 과도로 살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대전지법 2008고합68)에서 "함부로 남의 생을 접어버린 피고인들의 행위는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신의 권력을 탐한 것으로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률이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하는 사형을 과할 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허여하였다 하여 함부로 피고인들을 재단할 수는 없고, 피해자 유족들이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이라며 종신형에 처하여 줄 것을 원하고 있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형수의 얘기를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한 장면
 사형수의 얘기를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한 장면
ⓒ LJ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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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생명 해치고도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초라한 몸부림에 허탈"

작년 12월에도 강도살인과 강간을 저지른 사건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결(부산지법 2008고합 143)이 있었다.

판결은 최근 사형제 폐지 논쟁이 있음을 거론하면서 "피고인의 생명이 중하다면, 그래서 극형을 선고할 수 없다면, 피고인이 자행한 무분별하고 잔인한 수법의 범행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생명은 어쩌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사형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남의 생명은 해하고도 자신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그리하여 살아남고자 하는 한 인간의 나약하고 초라한 몸부림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은 부디 개과천선하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며, 비록 구금된 상태로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사라져야

이렇듯 흉악범에 대해 재판을 맡아서 사형 선고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판사들의 심리적 고뇌와 갈등도 상당하다고 한다.

어느 판사는 "같이 근무했던 부장판사는 사형을 선고한 이후 지인들의 결혼 주례를 서거나 경사를 직접 주관하는 일을 일체 삼가고 있다"며 "사형선고 경험이 있는 다른 판사들도 평생 마음의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을 통해 볼 때 법원은 대체적으로 사형제가 극히 예외적이나마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생명을 박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흉악 범죄를 당한 피해자 쪽과 가해자 쪽의 처지와 심정은 다를 것이다. 또한 대중의 여론과 판결을 선고하는 판사의 입장도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쓰레기같은 시간이 누구에게는 삶의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공지영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에서)

<우리나라 사형제도의 현황>
"생명과 공공 이익 보호 위해 필요악"... 97년 이후 사형집행은 중단
우리나라 사형 집행은 형법에 따라 교도소에서 교수형을 행하는 방법을 취한다. 군형법은 총살형을 인정한다. 사형은 법무부장관의 명령이 있어야 집행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사형집행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제도는 있으나 집행은 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다. 현재 사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58명으로 나타났다.

사형제를 없애는 나라가 늘어나면서 사형의 야만성을 거론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반면,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예방과 응보를 위해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는 등 사형제 존폐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대해 '필요악'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사형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서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위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현재 형법에는 살인, 강간 살인, 강도살인, 방화치사 등 인명을 빼앗는 범죄와 내란, 내란목적 살인, 간첩죄, 반란, 이적죄 등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범죄에 사형이 있다. 특별법인 국가보안법, 폭력행위 등 처벌법,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등에도 사형이 규정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시작으로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법이 소수 전문가들과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들의 것, 대중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연재기사가 법은 만만하고 알면 편한 것이라고 여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일반 시민들도 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태그:#사형, #법원, #사형제,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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