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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슬로 시티(Slow city) 행사에 초대를 받아서

 

 슬로 시티 담양 창평 삼지천 마을

 

전라도 담양의 창평, 늘 가고 싶던 곳이다. 지난 여름 문화유산 해설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담양을 찾은 적이 있지만 당시는 메타세콰이어길과 인근의 소쇄원 정도만 보고 와 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2월 8일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창평에서 동제 및 민속놀이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는 것이다. 또 늘 우리를 가까운 친구로 대해 주는 ‘숲과 문화학교’ 강영란 선생님께서 차편까지 마련해 주면서 우리를 초대했으니 만사 제껴놓고 창평으로 달려갈 수밖에.

 

창평은 전남에 있는 4개의 슬로 시티 중 하나다. 정월 대보름을 맞아 우리의 세시풍속과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슬로 시티로서 이미지를 정립하기 위해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행사는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추억의 대보름 민속놀이체험 마당으로 진행된다.

 

 삼지천 마을 안내도

 

주 행사장은 창평면사무소 앞 삼지천 마을 광장이다. 그러나 행사는 삼지천 마을 전역에서 펼쳐진다. 마을 대동제, 대나무연 만들기, 불깡통 만들기, 달집태우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전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통쌀엿체험, 한옥과 담장이 있는 마을탐방, 녹색자전거 등 느림의 미학을 체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행사장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중간에 호남선 벌곡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내쳐 창평까지 달려갔다. 아침에 안개가 조금 끼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차츰 걷혔다. 창평 나들목을 나오니 시간 여유가 좀 있다. 우리는 고서면 후산 마을에 있는 명옥헌에 들르기로 한다. 명옥헌이 있는 후산마을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마을이다. 

 

명옥헌과 숲이 어우러진 후산 생태마을

 

 후산 생태마을 입구의 연못 실루엣

 

우리는 마을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명옥헌을 찾아 간다. 마을 입구에 벌써 노거수가 보인다. 길 오른쪽으로는 큰 연못이 만들어져 있는데 못가로 가지가 무성한 나무들이 연못에 자신의 모습을 드리우고 있다. 꼬불꼬불 마을길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으니 산 쪽으로 명옥헌 원림이 펼쳐진다.

 

명옥헌 앞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놓여있다. 네모난 연못에 둥근 인공 섬을 만든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지당(池塘)이다. 연못 주위에는 적송과 자미나무가 심어져 뛰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명옥헌으로 오르다 보니 주위에 배롱나무 군락이 보인다. 꽃이 피는 여름에는 장관일 것 같다.

 

 명옥헌 현판

 

이 연못은 명옥헌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아 만든 것으로 물 속에서 명옥헌의 실루엣을 볼 수가 있다. 오늘은 흐리고 약간의 안개가 있어 반영이 시원치는 않다. 명옥헌은 산자락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고 연못이 그 경사면 끝에 있다. 명옥헌(鳴玉軒)은 계류의 맑은 물소리가 옥구슬 같아 그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경관이 좋은 이곳 도장골(道藏谷)은 채소밭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예문관 검열을 지낸 오희도(吳希道: 1583-1623)가 이곳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명옥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명옥헌은 오희도의 넷째 아들인 오이정의 호인 장계(藏溪)를 따라 장계정(藏溪亭)이라 불리기도 한다. 정자가 처음 지어진 후 100여년이 지나 퇴락하자 후손인 오대경(吳大經)이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역사와 건축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명옥헌

 

 개방형 정자 명옥헌

 

명옥헌과 관련된 이야기는 정자에 걸려 있는 ‘명옥헌기’와 ‘장계고동기(藏溪古桐記)’에 잘 나타나 있다. ‘명옥헌기’를 쓴 사람은 정홍명(鄭弘溟: 1582-1650)이다. 그는 이곳 창평 출신으로 홍문관 대제학을 지내고 사후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또한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의 넷째 아들로 이곳 창평 사람이다.

 

‘명옥헌기’에 따르면 오희도가 “세속을 떠나 이곳 후산 언덕에 정원을 짓기로 마음먹고 몇 칸짜리 작은 집을 짓는다. 집 뒤에는 차가운 샘이 하나 있는데 울타리 옆으로 흘러가며 획획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 소리가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와 같아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계류가 흐르면서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깨끗하게 씻어 내려가니 시원하고 서늘한 기운만 찾아오더라.” (守志丘園 無求於世 迺於后山支麓 築數間小屋 屋後有一道寒泉 㶁㶁循籬以入 其聲如玉碎珠逬 令人聽之 不覺垢穢之消滌而淸涼之來襲也)

 

 정홍명이 쓴 명옥헌기

 '삼고'라는 편액

 

명옥헌(鳴玉軒)이라는 현판에는 낙관이 없어 쓴 사람을 알 수 없다. 계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지어질 때의 현판이라면 1613년이 된다. 정자의 다른 쪽에는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삼고란 삼고초려에서 나온 말이다. 대개 임금이나 제후가 인재를 구하기 위해 누추한 집을 세 번이나 찾아옴을 말한다. 그러므로 삼고를 당한 사람은 대개 지식이나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광해군 때 반정을 통해 인조가 된 능양군이 이곳 명옥헌으로 오희도를 3번이나 찾아왔기 때문에 삼고라는 편액이 붙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마을 은행나무 옆에 있는 인조대왕계마행이란 표지석이다. 계마행이란 인조대왕이 타고 온 말을 묶어두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명옥헌 뒤로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 지내던 사당인 도장사(道藏祠) 터가 있다. 현재는 도장사유허비만이 세워져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 본 연못

 

명옥헌 원림은 정자를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경관을 잘 이용한 전통적인 정원 양식이다. 명옥헌의 북쪽에 위치는 연못은 정자보다 6m쯤 낮다. 그래서 명옥헌에 앉아 내려다보는 연못이 아주 평안하고 여유롭다. 명옥헌은 가운데 방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문이 나 있고 그 밖에는 난간을 두른 마루가 둘러싸고 있다. 한마디로 사방으로 탁 트인 개방형 건축이다.

 

이를 건축학적으로 설명하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정자이다. 내부의 구성은 밖으로 퇴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방을 둔 중앙실형(中央室形)의 정자이다. 방에는 구들을 깔았고 천장은 단순한 평천장이다. 마루의 외곽으로는 안전을 위해 난간을 설치했다.

 

서글렁탕 집에서 만난 시들

 

 겨울의 메타세콰이어길

 

명옥헌을 떠나며 아쉬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본다. 차는 이제 60번 지방도를 따라 창평으로 향한다. 길가의 가로수가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여름의 메타세콰이어는 그렇게 시원하고 울창한데 겨울에는 좀 쓸쓸해 보인다. 시간이 벌써 점심이 가까웠다. 우리는 창평면 의항리에 있는 설렁탕집으로 향한다. 그 집의 상호는 ‘명가돌솥 서글렁탕’이다.

 

이 집을 운영하는 서명원씨가 창평문화연구회 회장이라고 해서 찾게 되었다. 주차장에 내리니 강영란 선생님이 벌써 와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반찬들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맛깔스런 남도 반찬이다. 때가 보름이니 나물 등 반찬이 아주 식욕을 돋운다.

 

 맛깔스런 반찬

 

나는 설렁탕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벽에 붙은 사진과 글들을 보게 되었다. 벽에 늘어뜨린 현수막에 이곳 담양을 노래한 아주 서정적인 시가 눈에 띈다. 채윤기 시인이 쓴 ‘담양에 오시면’이다. 시인 채윤기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 전남 지방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란다.

 

담양에 오시면,

깨끗한 공기가 당신을

반갑게 맞아줄 것입니다.

 

담양에 오시면,

아름다운 별이

당신의 지친 심장을

어루만져 줄 것입니다.

 

담양에 오시면,

사철 푸르른 대나무가

당신의 영혼을

푸르게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담양에 오시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담양사람들이

당신의 친구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담양에 오시면,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채윤기 시인의 '담양에 오시면'

 

이 시를 보니 설렁탕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조금 있다 서글렁탕이 나온다. 아침도 변변치 않게 먹어서인지 설렁탕 맛이 더욱 좋다. 음식의 맛은 미각뿐 아니라 후각과 시각 그리고 청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인가 보다. 시를 알고 문화를 사랑하는 주인장의 손에서 나오는 음식 맛이니 이야기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거기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더 더욱 얘기할 필요가 없다. 슬로 시티 창평의 첫 인상이다.  

덧붙이는 글 | 슬로 시티인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에서 개최된 대보름 동제(洞祭)에 참여하고 쓴 여행기이다. 이 행사는 전남도와 담양군, 전남 도립대학과 숲과 문화학교가 후원했다. 앞으로 5회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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