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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사람들은 더욱 오랜 삶을 영위하게 되었지만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연구 결과들을 내 놓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쉽게 해당 광고들을 볼 수 있고 연금저축 같은 금융 상품들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노년 연령층이 자주 찾는 곳을 꼽으라면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종묘를 들 수 있다. 가까이 위치한 탑골공원 주변으로 거의 매일 같이 상당수의 노년층이 낮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마땅히 노년층이 할 것도, 즐길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것이다. 한 번쯤이라도 종묘나 탑골공원 주변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그 풍경이 기억에 남을 만하다.

 

해당 지역을 연결하는 지하철역 내부도 늘 어르신들로 붐빈다. 그러다 보니 사회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위해 주변을 찾는 일이 많다. 그리고 가끔은 시국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얼룩무늬 군복과 전투화에 베레모를 멋지게 쓴 어르신들이 줄지어 앞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고 손을 들어올리기도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보니 이들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도 적지 않고 심지어 노래방 기계가 등장하기도 했다. 

 

낮 시간 종묘와 탑골공원은 자원봉사자와 어르신들, 집회현장의 확성기와 주변 노점상의 상인들로 소란스럽다.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노숙자와 같은 분들만은 아니다. 낡은 옷의 어르신들 만큼 양복을 차려입은 노년의 신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종묘나 주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현상들이 단순히 특정 연령층의 집중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종묘공원 주변에 설치된 담장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유교사당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동양의 파르테논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2001년에는 종묘 제례 및 종묘 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종묘정전은 국보 제227호이며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종묘는 주변 지역의 고층 건물 건축과 공원 내 소란과 무질서 행위로 인해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해제가 우려된 적도 있었다. 당시 여러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었다.

 

 

공원 관리처에서 2007년 4월부터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담장이 생기기 전 공원 내부 곳곳에는 각종 노점상들과 선정적인 화면의 노래방 기계들이 공원을 소란스럽게 했었다.

 

뜰 곳곳에 신문을 깔고 앉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였고 쓰레기와 질서문제가 심각했었기 때문이다. 또 사소한 다툼도 적지 않았다. 노점을 할 수 있을 만한 도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곳곳에 담장과 말뚝을 설치하고 위 사진에 보이는 안내문을 공고하자 공원 내부에서의 소란행위는 비교적 나아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낮 시간 종묘공원 앞을 찾은 기자는 당시 문제가 됐던 노점상이 담장 주변을 따라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든 기자를 보는 눈들이 편치 않아 자리를 옮기던 중 인도변에서 자리를 찾던 노점상인을 볼 수 있었다. 반대편, 탑골공원 방향으로 이어진 인도와 종로성당으로 이어진 길에도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면 인도변 곳곳에 자리 잡은 노점상들이 불을 밝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판매하는 물건들도 가지각색이다. 언뜻 봐서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육류나 각종 생선들을 안주삼아 파는 포장마차도 있고 커피나 전통차를 파는 노점상도 볼 수 있다. 또, 구두나 속옷, 외투, 돋보기 안경들을 파는 노점도 있고 건강식품이나 전화카드, 장식용 소품 등을 팔기도 한다.

 

점심시간을 갓 넘긴 낮 시간에도 공원 내에는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원 주변에 담장을 설치해 소란행위와 질서 유지는 해결했지만 공원주변에 모여들 수 밖에 없는 어르신들의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종묘공원을 내부를 돌아보며 살펴본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저 하릴없이 주변을 걷거나 자리에 앉아 한 곳을 응시하고 계셨었다. 신문과 같은 읽을 거리가 있거나 장기판이 있는 곳이라면 꽤 여럿의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예전처럼 젊은이가 보기에도 낯 뜨거운 영상이 나오는 노래방 기계가 소란스럽게 하지는 않았지만 장기판 주변에서 훈수 두는 소리만 들려오는 종묘가 그리 달갑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반드시 종묘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없어 보인다. 검정색 코트에 중절모를 쓰신 채 종묘에서 이야기 벗을 만났다는 한 어르신은 기자의 질문에 "벗이 있으니까.."라며 말을 흐리셨고, 옆에 계시던 어르신 역시 "동무들도 보고, 바람도 쏘이고 하지"라고 말씀을 하셨다.

 

 

현대사에 있어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던 어르신들인데, 은퇴 이후에 마땅히 누릴 것도 즐길 것도 없이 그저 매일 공원을 찾아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주변 사회 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주변의 어른신들을 대상으로 간식을 나누거나 무료 진료를 해드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르신들이 종묘 주변에 많이 계시기 때문에 시작되었지 단체의 활동 때문에 어르신들이 이곳에 모이신 것은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한국의 모습은 그리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종묘 주변에서 볼 때는 그렇다. 공원이다 보니 여름엔 더위에, 겨울엔 추위에 노출되어 있고 노점상의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한 음식들로 식사를 해결하거나 술 안주를 삼으신다.

 

다행이 최근에 서울시는 올해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414개 사업에서 2만3000개의 일자리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시는 실버취업박람회 개최와 고령자취업알선센터 운영, 서울 일자리 플러스센터 내 고령자취업 전담팀을 운영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실버 취업은 어르신들의 경제 자립 문제 해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료히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서 생활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종묘 주변이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환경도 중요하다. 공원 내에 더 많은 볼거리나 놀이거리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어르신들 스스로의 태도도 중요하다.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기 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은 찾아 열심히 일하고 사회의 어른으로써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누리시면 좋겠다.

 

어르신들을 지켜보는 젊은이들의 마음은 효를 다하지 못한 자식과 같은 송구스러움과 아직까지는 사회를 폭넓게 지지하지 못하는 경제력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무언가 해답을 찾아보고자 나선 취재였지만 뚜렷한 답은 없이 무거운 마음만 안고 공원을 나섰다.


태그:#종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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