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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에 의해 얼굴이 공개된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얼굴공개 사실을 알기전인 1일 오전 상록경찰서를 나설 때는 모자만 쓰고 있었으나, 이후 현장검증 때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얼굴 노출에 당황 일부 언론에 의해 얼굴이 공개된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얼굴공개 사실을 알기전인 1일 오전 상록경찰서를 나설 때는 모자만 쓰고 있었으나, 이후 현장검증 때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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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서남부 지역 여성 연쇄살인 피의자 강아무개씨의 이름과 얼굴 공개여부를 두고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언론사마다 공개다 비공개다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거나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 다수가 얼굴과 이름 공개에 찬성하고 있다.

공개에 찬성하는 이들은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예방, 추가 피해사실이나 범죄 전후 피의자 행적 증거 제보를 통한 진실 발견 등 공익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이들은 아무리 흉악범죄 피의자라도 기본적 인권이 지켜져야 하며, 법원의 판결에 의해 유죄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무죄추정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무엇보다 피의자의 가족 등 무고한 주위 사람에게 끼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고 다양한 주장이 자유로이 제기되는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이 문제를 '권리의 충돌(언론의 자유와 피의자의 인권)'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쪽이 '상대적으로 더 큰가'의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한 쪽이 옳거나 그른 흑백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나는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의견을 피력해 왔으며 <오마이뉴스>의 요청에 따라 그 의견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근거들을 밝히고자 한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이미 우리 사회는 '사회적 합의' 형성했다

우리 헌법 제21조는 언론의 자유를 천명하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알 권리를 기본 전제로 두고 있고 '주권재민'을 떠받드는 기둥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은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 '공론(公論)'이 형성되어야 한다.

선거와 정책, 외교 등 고차원적인 사실뿐 아니라 사회와 국민 다수에게 큰 영향과 파장을 끼친 반인륜적인 강력 흉악 사건의 발생, 수사 내용과 결과 역시 그 대상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도 무제한은 아니며, 국민의 알 권리가 불순한 관음증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허위의 사실로 혹은 부당하게 다른 권리, 즉 명예권, 사생활권, 재산권 등이 침해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의 대상이 된다. 피의자의 신원을 감춘 채 흉악 강력 범죄의 혐의사실만 보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얼굴과 실명을 밝히는 것이 '언론의 자유'에 해당하느냐 아니면 부당한 권리 침해에 해당하느냐,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냐 아니면 불순한 관음증이나 전근대적 돌팔매질에 해당하느냐이다. 그 답은 '공익'에 속하느냐 아니냐 일 것이다.

2004년 이전 지존파, 막가파, 온보현, 정두영, 김대두 등 흉악 범죄자의 얼굴이 예외 없이 공개되었을 때 그 누구도 피의자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소를 제기하지 않아 법적인 다툼이 전혀 없는 문제였고 판례도 없다. 우리 사회에 '흉악 강력 사건 피의자 얼굴 공개는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범죄보도와 공익] 강력 흉악 범죄 사건 피의자는 '공인'에 해당돼

흉악사건 피의자 얼굴공개 관련해서는 소 제기 사례나 판례가 없어 유사한 문제에 대해 알아보면, 범죄보도를 둘러싼 언론의 자유와 기본권의 충돌은 주로 '명예훼손'과 '초상권'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형법상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언론보도를 둘러싼 기본권 침해 문제는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 여부 공방으로 이어진다. 우리 판례의 태도는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으로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공익'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명확한 법규정은 없지만 우리 신문윤리강령 제16조에 '공익의 정의'가 내려져 있다. 1. 국가안전, 사회질서유지, 공공복리, 2. 공중보건, 안전, 환경보존, 3. 범죄의 폭로, 반사회적 범죄, 비윤리적 행위 방지, 4. 공중의 오도방지 등 네 가지 경우다. 흉악범의 얼굴과 신상공개는 3.과 4.에 해당한다. 초상권과 관련된 부분은 주로 ‘공인’이냐 여부와 관련된다. 역시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7조에 범죄사건 피의자의 사진은 본인의 동의 없이 촬영해서는 안 되지만, 공인인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공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판례는 없으나 대체로 공직자, 정치인, 사회 저명인사, 예능인과 유명 운동선수 등을 공인으로 보고 있으며 그 외 '사건, 사고, 재해 등으로 인해 강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인물'이 포함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며 강력 흉악 사건 피의자는 '국민 다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파장을 일으킨 자'로서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업적, 명성, 생활양식, 활동내용에 따라 일반인에게 그 행위, 사건, 인격에 정당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 직업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인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비추어 봐도 마찬가지다. 공인의 사생활권 제한에 대한 이론인 '권리포기(waiver)이론'에 입각해 보아도 대형사건의 피의자는 이미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내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사인이 누리는 사생활의 평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 실명·얼굴공개가 오히려 피의자에게 유리할 수 있어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법상의 기본원칙이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공개가 자동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피의자 실명과 얼굴공개는 피의자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공개로 인해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증인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굴과 실명 공개보다는 무고함을 주장하는 피의자의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인 것처럼 단정하는 보도,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나 추정을 과장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공정한 재판에 지장을 초래하는 보도가 문제다. 미국에서의 논의와 판례 역시 흉악 강력 사건의 재판 전 보도가 배심원에게 부당하게 유죄의 선입견을 갖게 만드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그 대책 역시 필요할 경우 법원이 언론에 '보도금지 명령(gag order)'을 내리거나, 배심원 적격심사(voir dire) 시 언론보도의 영향으로 선입견을 가진 자를 배제하거나, 기소측과 피고측 관계자들에게 언론접촉금지(prohibit access to media)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수정헌법 1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내는 미국 사법부의 최후 수단인 것이다. 왜 미국에서 연쇄살인, 아동 성폭행, 다중살인(조승희 경우가 비근한 예다) 등 강력 흉악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이 예외 없이 보도되는 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이다.

[피의자 가족의 인권]피해자의 권리·인권 돌보는 원칙 동일하게 적용해야

마지막으로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이 공개될 경우, 가족들이 큰 충격을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한다. 이미 그의 가족은 그가 국민 다수와 사회 전반의 관심의 초점이 된 강력 흉악 사건의 피의자가 된 것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얼굴과 실명이 공개되는지 여부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피해자의 권리와 인권을 이야기 할 때 피의자 인권옹호론자들은 '그건 별개 사안이고, 피의자에 대한 조치와 상관없이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피의자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근거와 논리로 강력 흉악 사건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공개를 찬성한다. 다만,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 공익 추구라는 본질과 한계에 부합하도록 그 대상과 방법에는 엄격한 기준과 윤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표창원 경찰대 교수가 보내온 글입니다.



태그:#경기서남부 연쇄살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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