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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에 의해 얼굴이 공개된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얼굴공개 사실을 알기전인 1일 오전 상록경찰서를 나설 때는 모자만 쓰고 있었으나, 이후 현장검증 때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얼굴 노출에 당황 일부 언론에 의해 얼굴이 공개된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얼굴공개 사실을 알기전인 1일 오전 상록경찰서를 나설 때는 모자만 쓰고 있었으나, 이후 현장검증 때는 손을 들어 적극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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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인간으로서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 싶을 만큼 이번 연쇄살인은 실로 끔찍하고 잔혹하다. 범인에 대한 여론의 분노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비롯한, 계속되는 흉악범죄로 인해 과학수사, 형벌강화, 강력한 법집행, 심지어는 10년간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집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 의해 이번 사건 범죄자의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어 그에 관한 찬반 논란도 뜨겁다.

범죄자(엄밀히는 범죄혐의자)의 실명과 얼굴 공개의 정당성 여부는 공개로 인해 얻는 공익과 그로 인해 침해되는 범죄자의 기본적 인권 및 헌법원칙을 비교형량하여 전자가 월등하고 우월한가가 우선적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명과 얼굴의 공개가 그로 인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인가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범죄자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국민의 알권리, 범죄예방, 재범방지 등이 될 것이다.

공개로 인해 침해되는 범인의 기본적 인권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격권 등이 되겠고, 침해되는 헌법원리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될 것이다. 그에 부수하여 그의 가족이 입게 될 피해도 무시할 수 없고, 사실상 이중처벌이라는 비판도 따를 것이다.

실명과 얼굴 공개, 공익 실현 수단인가 고려해야

혹자는 이야기한다. 흉악범에게 보통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기본권을 인정해 주어야 하느냐, 그것이 오히려 사회정의에 반하지 않는가라고. 그리고 이번 범인의 경우 대부분의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있고 증거도 확보되어 유죄판결이 나올 것이 확실한 만큼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도 않는다고. 그리고 공개로 인해 범인이나 그 가족이 입게 될 피해를 어찌 무고하게 죽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받은 고통에 비교할 수 있겠냐고.

먼저 흉악범에게 보통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기본권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신체를 구속당한 상태에서 강제수사를 받고 있고, 아마도 중형이 선고될 것이며, 범죄의 중대성이나 범인의 반사회성으로 볼 때 감형이나 가석방 같은 혜택도 주어지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흉악범에 대한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만으로 범죄예방이나 재범방지의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다면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률을 개정해야 할 일이다. 지금 같이 감정이 격앙되고 흥분된 상황에서, 근거법률도 없이 섣불리 공개해서는 안된다.

현재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 중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와 법원의 열람명령이 확정된 자에 한해 신상정보를 등록하여 관리하고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청소년대상 성범죄의 중대성, 그로 인한 청소년의 심대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 높은 재범률 등을 고려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이 제도를 도입할 때에도 이 제도가 범죄자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격권을 침해하며 사실상의 2중 처벌이 아니냐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있었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대상 성범죄의 예방 및 재범방지라는 공익이 월등하고, 그러한 공익의 달성을 위해 신상정보 등록 및 열람제도가 매우 효율적이고 적합한 수단이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 입법화된 것이다.

청소년대상 성범죄자 외에 연쇄살인범같은 흉악범죄자에 대해서도 신상공개제도를 시행하려면 범죄자나 범죄의 특성, 피해의 정도, 얼굴과 실명공개로 인한 범죄예방 및 재범방지의 효과와 제도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충분하고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법률로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여 시행하면 된다. 이런 사회적 합의와 입법과정 없이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지난 31일 연쇄살인 용의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
 <조선일보>가 지난 31일 연쇄살인 용의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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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편승한 언론의 실명·얼굴 공개는 무책임한 자세

그리고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죄 있는 자에 준하여 취급함으로써 법률적, 사실적 측면에서 유형, 무형의 불이익- 유죄를 근거로 그에 대하여 사회적 비난 내지 기타 응보적 의미의 차별 취급을 가하는 것-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흔히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절차 내에서의 원칙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나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기타 일반 법생활영역에서의 기본권 제한과 같은 경우에도 적용된다(헌법재판소 판결). 따라서 유죄가 확실시된다는 이유만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예외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울러 법률적 근거 없이 신상공개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 남용으로 인한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항상 오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았더라도 사후(事後 또는 死後)에 그 재판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경우 훼손된 명예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또한 신상공개로 인해 그 가족들이 사실상 헌법이 금지하는 연좌제와 같은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불이익이 억울한 희생자나 유가족들의 고통보다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상공개로 범죄자 가족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해서 희생자나 유가족의 고통이 감해지는 것도 아니다.

흔히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사형제 같은 강력한 형벌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사형제 시행여부나 형벌의 정도와 범죄율간에는 의미있는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형제도나 과도한 형벌권을 행사하는 국가는 인권후진국이라는 국제적 비난만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범죄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므로, 범죄를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개혁없이, 강력한 형벌부과, 신상공개로 대처하는 것은 대증적 요법에 불과하다.

용산참사의 발생과 그 대처과정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권 들어 인권, 민주주의, 헌법적 가치 같은 것은 한갓 장식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 와중에 흉악범죄에 대한 대중의 즉흥적·감정적 분노에 기대어 인권과 헌법원칙이 또 다시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되는 오늘이다.

덧붙이는 글 | 유제성 기자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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