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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부녀자를 유인하는 현장검증을 하는 가운데, 모자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부녀자를 유인하는 현장검증을 하는 가운데, 모자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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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계획되어 있었다. 촘촘히 짜여져 있는 거미줄 위를 오르내리며 먹잇감이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날은 적당히 어둑하다. 그리고 조금 춥다. 혹은 삶에 지쳐서 혹은 너무 맑은 영혼을 가져서 눈앞의 죽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녀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먹히게 될 것. 누구라도 좋았다. 아무에게도 사적 감정은 없었으니까. 준비는 완벽했다. 원하던 대상이 걸려들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교활함과 냉정함. 다가올 쾌락에 대한 상상에 도취되어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그는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성공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을 그동안 왜 몰랐을까?'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다. 단, 현실 판단 능력이 존재한다는 조건하에서. 그들에게 세상의 모든 일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존재한다. 폭력은 물론이고 친절도 이기적인 목적을 향해 있다. 타인과 약속 또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만 지켜지는 바 이들에게 사회규범은 반드시 이행하여야만 하는 사회적 합의라기 보다는 최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길이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그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법과 치안의 사각지대를 포착하는 일에는 귀신이다. 범죄를 막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번번히 뚫리는 것도 그들의 사악한 재능에 기인하는 것이다.

강씨는 왜 연쇄살인범이 됐을까

법이 지켜줄 수 없는 어두운 경로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심이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 경로를 발견하면 쉽게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성욕을 제어할 수 없었던 강씨는 충동적으로 동거하고 결혼하지만 가정 생활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도 없었던 탓에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폭력과 외도가 난무했으리라. 세 번을 이혼했다.

그리고 네 번째 아내. 그녀는 정황이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그는 보험금 4억 8천만원을 탔다. 아내 죽음의 대가로 그에게 경제적 안정이 찾아왔다. 강은 아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여성에게 집착했다고 하지만 그말이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전형적인 환상적 거짓말(pseudologia fantastica)임은 에쿠스 승용차가 증언해주고 있었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그는 성에 대한 병적 집착증이 있는 것 같다.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통한 성의 해소는 그의 욕망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외도와 이혼이 반복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강의 주변에는 늘 여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여성을 유혹하고 매춘하는 일에는 당연히 돈이 들어갔다. 어느날 문득 승용차로 부녀자들을 유인하여 강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치안과 법망을 피해 쉽게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이 떠오르면 그 일에 열광적으로 빠져든다고 한다. 후회나 자책 또는 피해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처벌이 따른다 해도 그들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적이 없다. 그들은 입력된 정보에 따라 인륜 파괴적 행위를 하는 기계일 뿐이다.

사형집행만이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야산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실시한 가운데, 유가족들이 강모씨가 타고 있는 경찰호송차로 몰려가자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야산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실시한 가운데, 유가족들이 강모씨가 타고 있는 경찰호송차로 몰려가자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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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 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악한 마음이 발현되어지는 양상은 일률적이지 않다. 흉악범죄의 빈도는 사회통합에 반비례한다.

사회구성원간 결속이 강력할수록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는 줄어들게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문제는 사회 통합의 방식이다.

보수 논객들은 지난 십여년 동안 정부가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던 것이 강력 범죄가 기승 부리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사형집행으로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우고 외연을 명확히 긋는 것만이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사형집행 여부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사악한 자들을 극형으로 다스리는 심리적 혐오요법은 한계가 있다. 국가가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민국가에서 사형 집행은 신중을 기해야한다.

독재 정권에서 흉악 범죄가 적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사회의 건전성에 사태의 핵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흉악범죄의 원인과 대책을 개인에 둘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사이코 패스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같이 선량했던 시민들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는 '사이코 패스' 테스트가 더 큰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허탈하고 절망스럽다.

무고한 죽음보다 사이코패스 테스트에 더 관심

'사이코 패시'(psychopathy 정신병질)라는 용어는 1891년 Koch가 처음 명명했고 범죄자 중 타인에 대해 무감동하고 자제 능력과 윤리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런데 이 용어는 그들 범죄자들이 체질적 결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학설을 담고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유전적, 기질적, 환경적 요인 등을 비롯한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사이코 패스를 체질적 원인에 국한시키기 보다는 현대적 의미의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대체 가능한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이코 패스라는 용어가 기이하고 특이한,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죠커와 같은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 결과 우리들의 상상력은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연쇄 살인 사건으로부터 더 이상 사회적 차원의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든 전문 용어가 그러하듯 정신 의학적 용어 또한 사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범행 동기나 심리는 연쇄 살인범들마다 확연히 차이가 있다. 유영철과 지존파 일당들을 연쇄 살인으로 몰고 간 일련의 과정에서 첫 번째 고리는 좌절감이었다. 좌절감은 분노를 낳았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는 외부 세계를 향해 투사되어 피해 사고로 발전하고 사회로부터 그들은 점점 고립되어갔다. 고립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회와 소통은 완전히 차단되고 죽거나 죽이거나 두가지 선택만이 남게 된다. 그들에 있어서 타살 충동은 자살 충동과 동전 앞뒷면 관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듯 하였지만 내면은 불안으로 늘 가득차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달리 강씨의 범행 동기는 뚜렷이 쾌락을 지향하고 있다. 좌절감이나 분노의 표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삶의 고뇌에 대한 흔적은 단 한조각도 찾아볼 수 없었고 파멸에 이르기까지 추구되어진 성적 쾌락만이 존재할 뿐.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다른 연쇄 살인범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점은 살인마와 자상한 아버지의 완벽한 공존이다.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두 인격체가 한 인간에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 경악스럽다. 물론 유영철과 같은 일부 연쇄 살인범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에서 크게 멀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두 인격체가 통합성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일상은 항상 분노와 초조감으로 휩싸여있었다.

반면 강씨의 심리 구조는 나름대로 통합되어진 두 인격체가 상황에 따라 번갈아 기능하도록 되어있었다. 마치 매끄럽게 돌아가는 기계처럼. 새로운 유형의 다중인격이 출현한 듯 하다. 더욱 섬뜩한 일은 이질적인 두 역할 수행을 선택하고 조정해주는 기능을 완벽히 해내는 상위의 자아가 멀쩡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격을 이처럼 정교히 분리해버리기 때문에 살인의 순간 그는 살인의 행위자가 아니다. 살인마는 다만 구경꾼으로서 그 장면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관찰 자아(observing ego)가 이처럼 범죄 현장을 구경하고 감독하기 때문에 살인마는 영화속 살해장면을 실감나게 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범행 상황을 경험하게된다. 그가 쾌락의 극치를 경험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감당 불가능한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피해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작동하는 비현실감(derealization)과 이인증(depersonalization)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을 하기 위해 동원되다니! 정말 그는 고도로 진화된 살인마가 아닐 수 없다.

참신한 사회 윤리가 절실하다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이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39번 국도변에서 군포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를 살해 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이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39번 국도변에서 군포 노래방 도우미 배모씨를 살해 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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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사악한 살인마도 이 사회에서 생산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다른 살인 무기들이 이 순간에도 범죄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시급한 일은 그들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대책이겠지만 좀더 근본적 해결책은 오늘의 사태에 대한,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한 인간을 만들어낸 일을 우리 사회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위적 시대의 자화상이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일그러진 모습이었다면, 오늘 우리들은 주체 안팎에서 밀려드는 욕망들에 압도 당하고 있다. 억압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거인의 램프를 박차고 무한한 공간으로 자신의 욕망이 확산되어지는 것을 꿈꾸어왔다면, 욕망 무한 충족이 야기할 수 있는 파멸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시대 사람들은 때로 거인의 램프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파편화된 자아. 가부장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이다.

파편화된 자아를 묶어 줄 윤리의 부재가 극단적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 이번 사건이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약하지만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을 추상화하여 정신적 형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신적 형식의 중심에 윤리가 있다. 현재의 위기를 넘어 설 수 있는 참신한 사회 윤리가 절실하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조중근 기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특히 사회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태그:#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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