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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부녀자를 유인하는 현장검증을 하는 가운데, 모자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부녀자를 유인하는 현장검증을 하는 가운데, 모자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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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한테 무슨 인권이 필요해! 경찰은 빨리 얼굴 공개해!"
"이제 곧 사형선고 받고 죽을 텐데, 인권은 무슨 인권이야!"

시민들의 반응은 격하고 험악했다. 경기서남부 일대에서 부녀자 7명을 연쇄 살인한 강모씨의 현장검증 분위기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강씨가 가는 현장마다 시민들은 모여들었고, 흉악범을 본 그들은 모두 '무관용 처벌'을 주장했다.

살벌한 분위기 "인권은 무슨 인권!"

경찰을 향해 "범인 모자 벗겨!"라는 외침은 지극히 온건한 반응에 속했다. 어떤 시민은 "저런 놈은 재판도 필요 없고 끌고 다니며 시민들의 돌팔매로 죽여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여기서 그냥 몽둥이로 처단하자"고 외쳤다.

한 마디로 흉악범에게는 인권 존중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이런 격앙된 반응은 강씨의 살인 재연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봤기 때문이겠지만, 이는 최근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 그 흐름을 같이 하는 것이다.

강씨의 연쇄살인이 세상에 알려진 뒤 많은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은 피의자 인권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른 다툼은 주로 강씨의 얼굴 공개를 여부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강씨 같은 살인범에게는 인권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는 쪽은 공개를, 흉악범에게도 보호받을 인권은 있다는 쪽은 비공개로 맞서고 있다. 

사건이 주는 충격 때문인지, 현재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여론을 인식한 탓인지 경찰도 피의자 얼굴 비공개를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경찰은 지난 1월 31일 사건 브리핑 때 "우리도 범인 얼굴을 공개하고 싶다"며 "욕하려면 경찰이 아닌 국가인권위를 비판하라"고 밝혔다. 그리고 1일 현장 검증에서는 강씨에게 마스크를 착용시키지 않고, 인권위의 권고가 아닌 국민 여론을 따랐다. 경찰은 현장에서 "우리도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죽을 짓을 저지른 죽일 놈에게는 인권도 없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야산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실시한 가운데, 오열하던 유가족들이 강모씨가 타고 있는 경찰호송차로 몰려가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야산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실시한 가운데, 오열하던 유가족들이 강모씨가 타고 있는 경찰호송차로 몰려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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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수 여론과 경찰은 강씨와 같이 '죽을 짓'을 저지른 '죽일 놈'에게는 인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그것이 공익을 위한 길이고, 선량한 다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라는 논리도 깔려 있다.

인권 보호는 근대 민주주의 기본이자 기초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천부인권설. 이 '설'은 말 그대로 성문법에 앞서 보장된 자연적 권리다.

우리 사회에 인권이란 개념이 통용되고, 그것이 사람 누구에게나 보장된 권리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60, 70년대는 개발과 경제의 논리에 밀렸고, 80년대는 독재에 의해 짓밟혔다. 그리고 여전히 용산 철거민 참사가 보여주듯 우리 사회에서 인권 사각지대는 여전히 널려 있다.

돌아보면 해방 이후 우리의 역사는 민주적 질서를 확장시켜온 지난한 과정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란, 이미 겪어서 알고 있듯 매우 피곤한 제도다. 대화와 토론, 그리고 수많은 타협을 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쳤어도 논란의 여지가 남는 게 바로 민주주의다. 하지만 인간은 그걸 선택했다.

인권 역시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쉽고 편안한 무엇이 아니다. 늘 타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인권은 바로 선다. 아,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은 절차인가.

이 죽일 놈의 인권, 피곤하고 답답해도...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야산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실시한 가운데,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1일 오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야산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현장검증을 실시한 가운데,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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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은 때로 '이 죽일 놈의 사랑'이라고 가슴을 치면서도 다시 사랑을 하듯, '이 죽일 놈의 인권'이 거슬리고 답답해도 다시 보듬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편안케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말대로 강씨는 '죽을 짓'을 저질렀다. 우리에게는 그를 처벌할 법이 있고, 그렇게 하면 된다. 그 '죽일 놈' 하나 때문에 우리의 인권을 죽이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원칙이 무너지면 여러 사람이 피곤해진다.

사실 강씨에게 희생된 사람은 여성이고 사회적 약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영철 사건 때도 그러했다. 사이코패스에게 희생된 그들은 노래방 도우미, 마사지 여성, 중국 동포, 노인들이었다. 인권 보호를 덜 받는 이들이 살인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끔찍한 일을 막아내는 건 인권의 물결을 더욱 흐르게 하는 것이다.

'죽일 놈' 하나 때문에 인권을 죽이지 말자. 피곤하고 답답하더라도 '이 죽일 놈의 인권'을 안고 가자. 그래야 살아남은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


태그:#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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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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