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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끼고 가는 길이 한폭의 그림같다.
▲ 보성강을 끼고 압록유원지 가는길 강을 끼고 가는 길이 한폭의 그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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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가 피안의 세계라는 것을 개도 알고 있을까

힘도 들고 여유좀 부려볼까 했더니 그럴 정도의 시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8시쯤 되어 길을 나선다. 태안사 들어가는 길엔 등산객인지 중년의 남자 한 사람이 배낭을 메고 간다. 개 두 마리는 연신 장난을 쳐가며 쫓아간다.

쉬어 가기에 알맞은 곳.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 능파각 쉬어 가기에 알맞은 곳.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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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까지의 진입로 옆으론 계곡이 죽 이어진다. 길은 포장이 안된 채 잘잘한 자갈돌이 깔려 있어 더 정겹다. 걷다보면 어느새 능파각. 능파각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겨울의 정적을 깬다. 여름이었으면 시원스러웠겠지만  인적도 없고 고즈넉한 한겨울의 태안사에선 썰렁하게 느껴진다. 우리 둘 말고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린 정말 피안의 세계에 온 것일까?

능파각에서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길. 동글동글하고 검은 돌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 예쁜 길 능파각에서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길. 동글동글하고 검은 돌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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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예쁜 길은 능파각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검고 굵직하고 매끌매끌한 돌들을 깔아 놓았다. 옆에 소나무숲길도 나타나고 흙길도 있다. 이 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길 때쯤 절에 들어서게 된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때 적인선사 혜철이 창건한 사찰로 구산선문 중에 동리산파의 본거지였다. 태안사 일주문 옆 부도밭에는 태안사를 중창한 광자대사 윤다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왼쪽으로는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로 다리를 내고 그 가운데 삼층석탑을 세운 것이 태안사만의 특징이다.

연못 안에 있는 3층 석탑은 태안사만의 특징인 듯.
▲ 태안사 안의 3층 석탑 연못 안에 있는 3층 석탑은 태안사만의 특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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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를 돌아보고 나와 오지리 기차마을로 가기 위해 삼거리에서 840번 길로 접어들었다. 곡성의 기차마을은 구례와 순천을 거쳐 여수로 향하는 17번 국도와 전라선 철길이다. 1933년 개통된 전라선은 복선화 공사를 거치면서 곡성과 압록의 13Km 구간이 폐선된 것을 멋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예전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닭이었지만 요즘엔 보기 힘들다. 장닭은 윤이 반짝반짝 나는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 컷 찰칵.
▲ 태안사 나와서 기차마을 가는 중에 본 닭들 예전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닭이었지만 요즘엔 보기 힘들다. 장닭은 윤이 반짝반짝 나는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 컷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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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증기기관차 모양을 본뜬 기차가 오곡면 오지리섬진강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 하루 3-4회 운영을 한다. 관객 수 1200만명을 넘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과 원빈이 위급한 전선으로 끌려가면서 생이별하던 장면을 바로 여기서 촬영했다고 한다.

노란 산수유꽃봉오리와 빨간 산수유 열매가 대조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 성급한 봄 노란 산수유꽃봉오리와 빨간 산수유 열매가 대조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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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섬진강변에 성급한 산수유는 꽃눈을 달았다 

그 기찻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태안사에서 원달재 넘어 태안삼거리에서 압록역까지는 보성강을 끼고 걷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걷는다. 물이 있는 풍경은 어디를 가도 멋지고 편안하다. 자궁속에 있었을 때의 본능 때문일까?  날씨까지 흐려서 더 몽롱하게 보였다. 압록유원지까진 식당도 없다.

저녁에 산 초코파이를 먹으며 걸었다. 얼떨결에 산 과자가 이렇게 유용한 식사대용이 될 줄이야. 초코파이도 에이스도 다 먹었는데 식당은 나타나지 않는다. 압록유원지에 도착한게 1시간 40여 분이나 되었다.

식당은 있으나 문 연 곳이 없다. 한군데 찾아 들어갔더니 백반은 안 되고 참게탕만 된단다. 30,000원. 좀 망설였다가 아침도 못 먹었으니 아점(아침겸 점심)으로 2끼분이라 생각하고 먹으며 다리도 좀 쉬자고 했다.

배불리 먹고 다시 나선다.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예성교를 건너 10번 군도를 타고 걷는다. 차가 가끔 다니긴 하지만 한갓지다. 섬진강변으론 산수유나무에 산수유가 그대로 달려 있다. 벚꽃나무와 매화나무가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다. 매화나무엔 이미 꽃눈을 달고 있었다. 봄이 되었을 때의 꽃길을 떠올려 본다.

매화나무 산수유 벚꽃핀 봄길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기찻길과 17번 국도와 섬진강이 나란히 따라간다.
▲ 세가지 길 기찻길과 17번 국도와 섬진강이 나란히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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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유원지에서 가정역까진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1시간 40여 분이나 걸렸다. 예쁜 역이 건너편에 보인다. 붉은색의 아담한(?) 다리 두가현수교를 건너면 가정역이다. 4량이 달려있는 꼬마기차가 보인다. 시간표를 보니 하루에 3번.

기차는 더 이상 달릴 것 같지 않아 철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엔 국도 17번이 달리고 17번 도로 옆에는 기찻길이 나 있는 것이다. 반대쪽엔 산길로 자전거길이 나 있다. 간혹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보인다.

섬진강 건너편에는 이곳이 심청이의 고향이라는 표식을 곳곳에 해놓았다.

기찻길옆에 오막살이는 안 보이고 예쁘장한 증기기관차만

기찻길이 7Km란다. 1시간 반이면 되겠지. 사진도 찍으면서 침목 사이를 한걸음으로 딛기엔 가깝고 침목 두 개를 건너뛰기엔 멀어서 애매했지만 재밌게 걸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곡성의 기차마을에 닿아야 하는데 안 보인다.

기차마을이라는 아치형 설치물이 보인다. 곡성역으로 가서 남은 일정을 결정해야겠다 싶어서 곡성역을 물어서 찾아갔다. 밤늦게까지도 서울 가는 기차가 있다 했는데 곡성역은 굳게 닫혀 있고 불도 꺼져 있었다.

알아 봤더니 기차마을의 세트였던 것이다. 진짜 곡성역은 거기서도 10여 분을 넘게 갔다. 곡성역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남원으로 해서 지리산 온천까지 가기엔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 같다. 딸이 버스터미널로 가면 값도 싸고 빠르지 않겠느냐며 가잔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탔다. 타자마자 물었더니 남원 가는 버스는 삼사십분마다 있단다. 버스타고 내려서 다시 갈아타고 지리산 온천에 가려면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드니 택시로 20,000원에 태워주겠단다. '낯선곳에서 밤길을? 누구한테 내생명을 맡기리?' 얼른 내려달라고 했다.

진행한 거리가 20m나 될까? 내리려는데 기본요금 2,500원을 내란다.

"바로 내렸는데 무슨 기본요금을요?"
"내가 서있던 자리에 다른 차가 서있으니 다른 차 뒤로 가면 영업에 손해인데 기본요금은 주셔야죠?"

허걱했다. 아저씨 얼굴을 보니 긴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얼른 3,000원을 꺼내서 거스름돈 주는데 안 받고 그냥 내렸다. 말 길게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친다. 그 짧은 시간에.

서울가는 KTX표를 끊었다. 익산까지는 새마을호로 이동해서 환승하는 거였다. 우리의 여행은 여기서 끝났다. 3일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틀반 동안 90여Km쯤 걸은 셈이다.

여행을 끝내고 바라본 곡성읍내 야경.
▲ 곡성읍내 여행을 끝내고 바라본 곡성읍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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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보다도 몸안에, 뼈속에 알알이 새겨진 여행같다. 힘든 만큼 기억에 남는 여행인가보다. 순천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딸의 말로는 순천에서 곡성까지의 길은 잊지 않을것 같단다.

"다음에 또 걸으래?"
"네"



태그:#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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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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