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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태어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죽게 되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덧없는 인생을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알기 위해 몸부림쳤다.’

 

누구나 한 번은 가졌을 법한, 나 또한 자주 했던 이 물음을 도법 스님이 쓴 글에서 다시 만난 건 나한테 행운이었을까? 지난해 11월, '생명평화 탁발순례' 일정으로 내가 사는 동네에 오신 도법 스님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스님이 쓴 책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을 샀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두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답답한 요즘이다. '이런 세상에서 왜 살아야 하나' 하는 한탄이 절로 일어나던 중, 책을 살 때 머리말에서 스치듯 읽은 저 글귀가 떠올랐다. 저런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분이라면, 왠지 내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줄 작은 실마리라도 안겨주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뒤늦게 읽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전국 곳곳을 돌며 해 오신 도법 스님. 세상 모든 이치에 달관했을 법한 그분도 저런 범상한 번뇌를 간직하던 때가 있었구나, 괜히 가깝게 느껴진다. 설법이 아닌, 살아 있는 목소리로 세상 이치를 알려주실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고.

 

"나는 왜 존재하는가. 아무도 나를 존재하도록 시킨 자가 없다. 생명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존재하고 싶어 존재할 뿐이다. (…)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 생명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주체적으로 진리의 길인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감사하는 삶만이 평화의 삶, 행복의 삶을 이룹니다. 진리의 길을 따라 섬김과 모심의 공동체 삶을 사는 것이 생명평화 인간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는 본래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명 공동체입니다. 세계가 마치 살아 있는 그물이라면 낱낱 존재들은 그물코와 같습니다. 너이면서 나이고 나이면서 너이며, 우주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우주인 영원과 무한의 존재가 내 생명입니다."

 

 

생명평화에 대한 스님 말씀을 '글'로 만나니 '목소리'로 들었을 때보다 더 잘 와 닿는다. 책에서 자주 강조되는 인드라망의 세계관, '낮춤, 비움, 나눔, 존중, 배려, 감사하는 삶'이라는 말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입으로 따라해 봤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잘 안 쓰는 말이지만, 정성스럽게 읊다보니 그 뜻 하나하나가 마음에 오롯이 새겨지는 듯하다.

 

생명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나의 존재 이유이며 사회적 역할이자, 내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완성시키는 일이라는 스님 말씀에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평화는 결코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산물이라는 말씀까지도. 

"너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를 상대로 한 나는 무한이 작은 자요, 무소유자요, 낮은 자입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 높고 귀하고 고마운 상대에 대한 섬김과 모심의 온전한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불일불이가 되게 하는 실천이 절입니다."
 
"누군가가 억울하게 고통을 달할 때 저절로 마음이 아픕니다. 너에 의지해서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작용하는 순수한 연민심이 바로 국가, 종교, 민족, 이념, 이해득실 따위의 인위적 질서에 오염되기 이전의 본래 내 생명의 참 모습입니다."

 

"생명의 진리로 보면 너를 사랑함을 통해서만 나를 사랑하는 길이 열립니다. 너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길은 있지 않습니다. 그 이치가 연기법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감격스러웠다. 내 오래된 물음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왜 다른 사람이 아플 때 나도 함께 아픈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 내 마음이 왜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한가? 동정심인가, 연민인가, 뜻 모를 관심일 뿐인가…."

 

이랜드 투쟁을 가까이 겪으면서, 아니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힘겹지만 정당한 싸움 들을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가져온 물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묻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일이며, 스스로도 아름답고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그리고 그 길이 바로 ‘진리’라는 걸 도법 스님 말씀을 따라가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별난 존재가 아니며, 딱히 심성이 여린 사람도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내 생명의 참 모습이, 다른 사람들 삶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드러난 것뿐이었다. 다만 그 참 모습을 알지 못한 채, 또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갖게 된 헛된 물음일 뿐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

 

 

"진리는 늘 현실에 살아 있습니다. 정체되는 순간, 절대화시키는 순간 진리는 왜곡되고 죽습니다. 진리가 현실에 살아 있게 하는 길은 분명합니다. 늘 주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하고 허심탄회하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이든, 예수님 말씀이든, 어떤 책의 내용이든 구체적 현실로 가져와서 사실과 진실에 직결시켜 검토해야 합니다. 내 삶의 행동이 되지 않는 나의 지식과 언어는 거짓이요 가짜이므로 붙잡고 살면 독이 됩니다."

 

도법 스님은 진리란 반드시 가야 하는 참된 길이며, 진리로 가는 길은 죽으나 사나 주체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함께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가치 의식과 삶의 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생명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고도. 과연 나는 얼마나 그 진리에, 생명평화의 길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을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충실하게 살면 저절로 주체적인 삶이 이루어집니다. 주체적으로 살면 언제나 삶이 참되기 때문입니다. 반생명 비인간적인 경쟁 논리를 벗어나 내가 살고 싶은 자유롭고 멋진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길이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을 달관하고 기꺼이 함께하는 자족의 삶을 살아가면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자족의 삶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문제를 낳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함께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

 

나는 어떤 상황, 어떤 대상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주체적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명평화를 받드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은 못하겠지만 그렇게 살고자 애쓰고 있다는 정도는 부끄럽지만 말해볼 수 있을 듯하다.
  
도법 스님은 수행이란 따르고 실현해야 할 존재의 궁극 된 진리와 가치를, 지금 여기 내 체질과 삶이 될 수 있도록 되풀이해서 수련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아는 것은 ‘지혜’이며, 그 정신에 일치하도록 실천하는 것은 ‘자비’라는 것도.

 

 

내 살아온 시간을 더듬어가며 책을 읽어가니, 내 존재와 삶이 궁극으로 좇아야 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다. 바로 너 없이 내가 없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이다. 비록 한참 얕긴 해도 그렇게 깨우친 지혜가 내 체질이 될 수 있도록 수행하는 길을, 앞으로는 더 정성껏, 올곧게 걸어가고 싶다. 용산 참사를 두고 어제(23일) 서울역에서 열린 범국민 추모대회, 추위를 무릅쓰고 다녀온 것도 작은 수행하나 치른 것으로 쳐줄 수 있으려나. 

 

아침에 텔레비전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떠서는, 용산 철거민 사태를 다루는 뉴스를 보며 하품보다 먼저 눈곱 사이로 눈물이 삐져나오는 나. 밥을 먹다가도 텔레비전에서 그 이야기만 나오면 숟가락 든 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리는 나. 남보다 추위도 많이 타고, 전경만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증세가 있으면서도 범국민 추모대회에 가겠다고 구를 정도로 두껍게 옷을 껴입고 결국 집을 나서는 나. 그냥 사람이었다. 생명평화를 바라는, 자연이 빚어준 생명체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을 지녔을 뿐인 사람. 그러고 보니 이번 용산 참사는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겉모습만 사람'인 자들이 '진짜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책에 담긴, 도법 스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시디를 들어본다. 이런 세상에서 왜 살아야 하나, 스스로 애절하게 던졌던 그 물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이 평화롭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선지 마음 저 끝이 사무친다. 코끝이 시큰해질 만큼. 아무래도 절을 해야 될라나 보다. 그대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무한이 작고 낮은 자로서, 너와 나를 온전히 '불일불이(不一不二)'되게 하는 온전한 실천인 그 '절'을. 용산 참사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이야기

도법 지음, 불광출판사(2008)


태그:#용산철거민, #도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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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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